언젠가 어떤 사람의 눈 속에서...
센터를 찾은 젊은 여자는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첫째, 둘째, 셋째 아이 모두 아빠가 다르다고 했다.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여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아이 아빠랑은 연락이 안되네요.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어요.
제가... 한심하시죠?
저도 그래요.
초등학교 3학년 땐가 그래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사촌 오빠가 자전거를 태워줄테니 나한테 오라고 했어요.
가서 오빠 뒤에 앉았는데
오빠가 치마 밑으로 손을 넣었어요.
그걸 아빠가 봤는데
저를 창녀 보듯 했어요.
그때부터였어요.
...막 살기로 한 게.”
그 변태 새끼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놓았어야 했었지만
아빠는 자신의 딸을 수치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의 눈 속에서
여자는 창녀로 발견되었다.
그것이 여자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아이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모의 눈을 통해 확인한다.
부모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은
평생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나를 왕자로 정의내리면
왕자처럼
나를 거지로 정의내리면
거지처럼 살게 된다.
여자는 자신을 정의내린대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부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아이는
세상 속에서 죄인처럼 살아간다.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며 도전하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했던 예언의 말들은
정확하게 아이의 미래에 성취된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남자들.
남자들의 눈 속에서 그녀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사랑에 빠졌던 순간에는
남자들이 여자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비춰줬을 테니까.
그러나 환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들에게 버려졌고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했을 뿐이다.
상담실에서 내가 하는 치료의 가장 근복적인 목표는
내담자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비춰진 거짓된 자신의 정체성을 부셔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사랑스런 그대.
믿기 어렵겠지만
당신은 사랑스럽다.
여태껏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그대는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버리지 않는 그대.
주변에선 아이를 지우라고 하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대.
그런 그대는 사랑스럽다.
여자에게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나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막 살지 마세요. 당신은 소중하고 귀해요.”
“그런...가요?”
“이걸 믿지 않으면 당신의 삶은 변화될 수 없어요.”
“노력해볼게요.”
“현실은 우리가 믿은 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부모가 보는 눈으로 자신을 보면 안돼요.”
“...”
“그 빌어먹을 새끼는 어떻게 조져버릴지 생각하시고요.”
“감사합니다... 요즘 삼촌이 너무 그리워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삼촌이 저를 너무 이뻐해주셨어요. 돌아가실 때 제 이름을 부르셨대요.”
지금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 여자는
삼촌의 눈 속에서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런 아이였을까.
“삼촌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당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믿어야 해요.”
“...”
우리 모두는 언젠가 어떤 사람의 눈 속에서
그토록 귀한 사람으로 비춰졌었다.
당신은 소중하고 귀하다.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그것이 붙잡아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