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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올해의 가족

by 수성







눈을 뜬 숲 속의 (아니아니,, ) 모텔의 나탈리 공주가 기지개를 펴며 환하게 웃는다. 도시로 간다는 희망이 나탈리에게 딥슬립과 맑은 아침을 선물한 듯 하다.


희망이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다.


캠핑카 반납시간은 11시, 반납시간을 오버하면 시간당 50불의 추가요금을 내야한다. LA 도심의 트래픽을 생각하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지만, 반납시간이 늦어져 추가요금을 내더라도 우리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급하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니까..








헤스페리아(Hesperia) - 캠핑카 렌탈 업체


100 miles (161km) / 예상소요시간 : 2시간 20분



* 캠핑카를 반납하고, LA공항으로 가야한다.

(렌탈업체에서 공항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LA공항(LAX) – 샌디에고(San Diego)


125 miles (201km) / 예상소요시간 : 2시간 40분






[08:10 am]


나탈리가 구름이 아침을 챙기는 동안, 나는 짐을 하나 둘 옮겨 실었다.


다행히 전날 뭉태기로 버린 덕분에 차 안은 정리할 게 없었고, 기름만을 가득 채운 후, 반납을 하면 된다. 시간이 애매한 우리는 가는길에 아침을 먹기로 하고, 점심은 건너띄기로 했다.

“도시여자!! 도시입성 준비됐나?”

“오예~~~~~~ 구름이도 준비됐나요?”


“고고~~”


“샌디에고 가서 맛난 저녁 묵자~~~”


“도시로~~ 출바알~~~~~~~”








[09:30 am]


아침부터 차들로 북적이는 맥도날드. 나탈리가 주문을 하러 들어가고 난 후, 운좋게 전망 좋은 자리에서 차가 한 대 빠졌다. 차 앞으로 확트인 시야는 도시로 향하는 내 마음까지 시원하게 열어주는 것 같았다.








맥모닝 세트 두 개..

9일간 함께한 캠핑카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캠핑카를 몰고 여행한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9일의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러플린에서 본 노부부의 모습이다.


분명 한 시대를 살았고, 한 평생 열심히 일했을테고, 자식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케어했을 것이며, 뜻대로 되는 일과,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수많은 일들과 시간을 버텨내고, 세월이 흘러 일선에서 물러나, 손을 잡고 여행을 다니는 노부부.


각각의 삶이 다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 순 없지만, 그들의 흘러간 세월이 얼마나 빨랐을까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시간도 금방 흐를 것이란게 느껴졌다.


다시 오지 않을 짧은 우리의 시간..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몇 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찰나를 더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11:45 am]


LA 트래픽은 역시! 역시나다. 서둘러 출발했음에도 반납시간을 오버했으니..


‘RETURN’ 라인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렸다. 분명 저기 앞에 보이는데서 차를 받아 출발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납이라니.. 우당탕탕 해치웠던 어제의 일은 차 상태를 둘러보던 청년이 건네준 페이퍼 한 장으로 모든 게 정리됐다. 페이퍼를 데스크에 내라는 밝은 청년.


9일간 안전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준 캠핑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 본네트에 손을 올렸다..



(앗!!! 뜨거!!!!!!! C !!!!!)


“잘 지내!! 그동안 고마웠어!!”








(구름이는 안가고 거기 있을 예정인가..?)


나탈리에게 페이퍼 전달을 부탁하고는 캠핑카에서 내린 짐들을 택시에 옮겨 실었다.


“며칠 점검하고, 이상없으면 보증금 돌려준대!”

“안돌려주기만 해봐라!!ㅋㅋㅋㅋ”







역시 남이 운전하는 차가 제일 편하다.






구름이도 나와는 다르지만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탱크를 타다가 부드러운 차를 탔으니 그럴만도 했다.








[01:40 pm]


이제 막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렌트카를 받은 것처럼 나탈리에게 말했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고생했어! 이제 샌디에고 가서 좀 쉬자!!“

“구름이도 고생했어. 가서 좀 쉬자!“


그걸 받아주는 고마운 나탈리..



대지를 누비고 다닐 때와는 달리 샌디에고를 향하는 길은 외곽순환로를 달리는 것 같이 친근했고, 구름이는 자기 자리에서 이내 잠들었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음악을 틀고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나탈리..


“노래 좋으네.. 이 노래 뭐야?“

“Hero!“

“히어로? 누구 노래야?“

“패밀리 오브 더 이어“

“패밀리.. 머?“

“Family of the Year“


트여있는 맑은 하늘과 화창한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차에 울려퍼지는 노래,, 기분이 한층 업(up) 되었다.


“이름 희한하네.. 올해의 가족!?“


캠핑카에서는 블루투스가 되지 않아 AUX 선을 연결해서 음악을 들어야 했고, 우렁찬 엔진소리때문에 이동중엔 조용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가능했다.


세상엔 종종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그 당연함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소중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때,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지나쳤던 것들을 반성하게 된다.


(차에서 조용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샌디에고 숙소를 고를 때 크게 여섯가지에 중점을 두었다.


1. 치안이 좋은 곳

2. 조용한 곳

3. 아침마다 구름이를 산책시킬 만한 곳

4. 빨래가 되는 곳

5. 관광할 곳과 동선이 너무 멀지 않은 곳

6. 주차가 가능한 곳






[04:23 pm]

“우와~ 숙소 되게 조타!!”


(내가 예약한 곳이니까, 세뇌시키는중.. )


우선 1,3,5번을 베이스로 지역을 정한 후, 숙소를 검색 했었고,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도그비치” 였다. 그 다음 주차가 가능하고, 빨래가 되는 곳을 찾아야 했다. 9일간의 자연인 옷을 빨아야 했고, 도심에서는 호텔에 투숙해도 주차비를 따로 받거나 아예 주차가 가능하지 않은 곳들이 있기 때문에 꼭 체크를 해야했다.


근처엔 걸어서 다닐만한 레스토랑과 마트가 꽤나 있었고, 이제 몰아가기만 하면 된다.


“우와~~~ 숙소 옴총 조은데?! 구름아 숙소 엄청 좋지? 나탈리 어때? 없는게 없네!!”









2중으로 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측엔 소파, 정면에는 벽걸이 TV가 걸려있고, 중앙으로 바(bar) 형식의 주방이 자리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좌측과 우측이 부엌과 거실로 분리되는 형태였다.


싱크대 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집을 환하게 밝혀주었고, 거실 창가엔 예쁜 테이블보를 깔아논 원형 식탁과 꽃병에 와인까지.. 부엌 한 켠엔 세탁기와 건조기가, 각종 서랍엔 조리할 수 있는 재료들과 세택새제, 그리고 여성용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뒷마당엔 프라이빗하게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예쁜 공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자연인 생활을 오래한 탓에 야외 바베큐를 사용하지 않았다. 호스트의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지며 감사했다.


정리를 끝내고, 구름이 식사도 마쳤다. 나탈리는 이제 빨래를 돌려놓고 나가기만 하면 된단다.


집에서 빨래 담당은 나탈리다. 결혼을 하고 나탈리에게 혼난 일 중 하나가 빨래였다. 나는 빨래를 한꺼번에 넣고 돌리는데, 나탈리는 속옷 따로, 겉옷 따로, 수건 따로 전부 나눠서 돌린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손이 더 가는 일이지만, 나탈리는 기꺼이 그 수고를 감수한다.


이후 빨래는 자연스럽게 나탈리의 영역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세탁바구니에 옷을 함부로 던져 놓았다간 큰 일이 벌어지니 잘 분리해서 놔야한다. 그리고 나는 빨래와 관련한 그 어떤것도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는건 내몫.. 오ㅐ 지??)






[05:40 pm]

“오빠! 일단 이 앞에 장보러 갔다오자!”

“저녁 먹고 들어올 때 장보는거 아니고?”

“아니! 장 보고, 집에 와서 놓고 나갈 건데!?”

“왜 와따리가따리 일을 두 번 하지?”


캠핑카로 매일 이동해야 했던 때는 늘 긴장의 연속이라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정착을 하고 안정감이 생겼는지 잡생각이 들며 예민해졌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


그렇게 보면 적당한 긴장을 하며 산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몇분 걸리지 않는 간단한 빨래거리를 돌려놓고, 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에 넣고, 메인 빨래를 돌리고 나가면 된단다. 나탈리는 다 계획이 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된다. 와이프 말을 들으면 그게 다 맞다. 그런 것이다. 그럴거다. 아니아니 그럴 것 같다가 아니고 그렇다.


집 근처 마트(Target)에 장을 보러 왔다. ‘No Pets’라고 표시되어있는 대형마트나 Food store 에서도 모기장이 닫힌 가마를 대동해 납시면, 입구에 서있는 보안요원(Security Guard) 조차도 구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놔.. 이럴줄 알았으면 그랜드캐년 셔틀버스도 타보는 건데... )







[07:00 pm]


메인 빨래를 2차로 돌려놓고, 10여분을 걸어 오션비치에 도착했다. 스테이크에 와인이 땡겨 찾아온 레스토랑.. 이틀을 움직인 것 같은 하루였기에 코로 먹어도 맛있을 것 같고, 귀로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르는 동안 나탈리는 와인을 잔에 가득 따랐다.

“오빠! 우리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자!”

“조아써!! 건배!!”


와인을 마시며 마주 앉은 나탈리의 손을 잡았는데,,


전기가 찌리릿!!!!!

어랏!!?








{12년 전 어느 밤}



따르르릉~~

핸드폰이 울렸다.

“오~ 안녕하세요?!”

“오빠! 머하세요?”

“저 야근중이에요”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는 양에 차지 않았는지, 집에 들어가기전 나에게 전화를 해본거였다.


“언제 퇴근하세요?”

“곧 해야죠. 근데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렇게 늦은 시간에 만나 우리는 술을 한 잔, 두 잔.... 마셨고, 취기가 오른 나탈리가 나에게 윙크를 했을 때, 홀라당 넘어가 덥석 손을 잡은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전기가 찌리릿~~~!!!!!!!






찌리릿~~~!!!!!!!


모든 게 낯설어서 였을까? 샌디에고의 한 레스토랑에 마주 앉은 나탈리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며, 전기가 통했나보다.


12년전 그날 밤, 통했던 전기는 어느 날부터 오지 않았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모든 게 변한다. 나탈리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변하기는 마찬가지다. 늘 ‘초심’이라는걸 생각해보지만, 완벽하게 처음과 같을 순 없다.


연애 초반 나는 나탈리의 시크함이 좋았다. 먼가 쉬운 여자는 싫었달까? 투덜대며 튕기는 모습마저 귀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시크함 때문에 좋아했던 내가 그 시크함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말을 예쁘게 하지 않아 싫었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다.


한 친구가 생각났다. 만난지 얼마안된 여친이 술을 잘 마신다며, 술친구가 생겨 너무 좋다는 그 친구는 시간이 지나고 말이 바꼈다.


“허구헌날 술이다 야! 알콜중독도 아니고.. “


이럴 땐 둘 중 하나다.

포기하거나 극복하거나!


포기는 헤어지면 끝나는 거지만, 극복은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함이 소중함이라는 생각으로 전환될 때, 그때부터가 극복의 시작이다.


사랑은 서로가 노력해야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12년전 본능에 이끌려 키워진 사랑이 설레임이었다면, 지금의 사랑은 포근함과 안정이다. 그때의 사랑과 지금 사랑의 결이 다르다면 다르지만, 그때의 사랑도 좋았고, 지금의 사랑도 좋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서 걸어가는 나탈리와 구름이..


내 우주의 중력이 되어주는 사람. 서로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낯선 이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를 생각해주는, 나탈리를 보고 있으니 일상에서 때때로 짜증났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버렸다. 그리고 옆에 쫄랑쫄랑 옴마를 따라가는 귀여운 구름이..


나탈리의 소중함을 당연함으로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있을 때 잘해야겠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소중한 사람!

그리고 소중한 딸래미까지..



“나탈리! 여기가 무인도인데, 우리 둘 뿐이면 서로 진짜 소중하겠지?”


“왜 둘 뿐이야? 구름이도 델꼬와!!” 


...........................




(기 . 승 . 전 . 9름......)








[09:00 pm]


집으로 돌아와 씻고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나오는 나탈리에게 말했다.


“아까 낮에 틀어줬던 음악 다시 한번 틀어죠.. ” 

“어떤거?” 

“Hero” 

“그 노래 좋았나보네.. ” 

“응! 좋더라! 그룹 이름도 맘에 들고.. 올해의 가족!” 

“좋았다니 다행이네!” 

“응.. 올해의 가족은 우리다! 우리!! ㅎㅎ 그룹 이름 참 맘에 드네.. ” 



나탈리는 음악을 틀고 옆에 앉았다.


“오빠! 그때 생각나?” 



연애 초창기 시절 얘기를 꺼내는 나탈리.

나탈리는 내가 남자로 보여서 만난 건 아니라고 했다.


(먼 봉창 두들기는 소리여??)



“오빤 큰 어른 같았어. 고민을 말하면 잘 들어주고, 방향도 제시해주고, 만나고 있으면 편하고 좋았거든!”

(그게 남자로 보인거거등요... 나 참.... )



사귀고 한 3년간은 내가 불편했다고 한다.


“3년이나 불편했다고? 어쩐지 일주일내내 삼겹살만 먹어도 아무말 없이 잘 먹는다 했더만, 불편해서 그랬다는거야?”

“너어~ 무 불편했지!”

“잘 먹는 여자라 기특했구만..”

“나 그때 인생 최대 몸무게 찍었어.. 알아?”

“그때 옴총 기여웠는데!? 다시 좀 찌면 안될까?”

“시러!!”



가만 생각해보니, 나탈리가 나에게 가장 천사였던 시기가 그 불편했던 3년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탈리! 조금만 불편해하면 안되겠니?)





젭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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