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는 혼자 사색하는걸 좋아하고, 과묵해서 말하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다.
(도둑이 들어도 안짖을꺼라는건 함정.. )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든 나가든 쳐다보는 일은 거의 없고, 기분 내킬 때만 꼬리를 한두 번 흔들고 가버리는 아이.. 뽀뽀를 하려고 하면 얼굴을 돌려버리고, 듣기 싫은 건 못 알아듣는 척, 먼 곳을 바라보는 그런 아이..
아침부터 간식을 드셨나,, 내 앞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린다. 이럴때면 그간 쌩깠던 일들이 한순간에 녹아 내린다.
(이래서 딸바보가 되는건가... ㅎㅎㅎㅎ)
봄에 태어난 구름이.
긴 겨울 얼어붙은 마음에, 한순간 사랑을 싹트게 하는 봄 같은 아이다.
“오빠! 일어나!!”
“.......... 응??”
꿈이다..
껌딱지는 엄마 옆에 붙어있다..
현실이란...
러플린(Laughlin) – 헤스페리아(Hesperia)
210 miles (338km) / 예상소요시간 : 4시간
내일 오전까지 LA에 위치한 캠핑카 업체에 도착하려면, 오늘 최대한 LA와 가까운 곳까지 이동해야한다. 시간과 동선, 거리로 봤을 때, 헤스페리아(Hesperia)가 최적의 선택지였다.
모하비 국립보호지역을 중앙에 두고 북쪽으로 갈지, 남쪽으로 갈지를 고민하다 결국 북쪽 루트를 선택한 이유는 남쪽 40번 도로가 마땅히 식사할 곳도, 주유소도 없을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쪽 루트의 단점은 도로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는 것..
163번도로 - 95번도로 - 164번도로 - 15번도로
[10:00 am]
“러플린 안녕~~~”
“잘있어~”
이곳에선 핸들을 고정해두면 몇 시간이고 알아서 갈법한, 끝이 보이지 않는 ‘일자형’ 도로를 여러 번 만나게 되는데, 그 길을 달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었다.
이 부분의 음과 가사만 생각난다.
“나탈리! 이 노래가 뭐였드라?”
검색을 해보더니 나탈리가 말했다.
“엄마찾아삼만리?”
“아...!! 기억난다!!”
“그거 엄마 찾아가는 얘길텐데.. ”
“마자! 마르코라는 애가 엄마 찾아가는 건데,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얘기래.”
“그러고 보면 만화가 꼭 애들만을 위한 건 아닌거 같아.”
“그치! 다 어른이 그리는거니까!”
“어른이 되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고 멋진거 같아. 나이를 들수록 감정이 조금씩 메말라가고 지쳐가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동심을 계속 일으키는 거자나.. ”
“그러니까 사는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게 동심이던 뭐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인거지!”
“나도 나탈리 말에 100% 동의해! 그리고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진짜 중요하고..”
“마자!!”
얘길하며 가는동안 아기자기한 마을도 만나고, 끝이 안보일 만큼 긴 기차도 만났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도 제자리에 서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은 땅덩이가 얼마나 광활한지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164번 도로에서 ‘일자형’ 도로를 다시 만났다. 지금까지 몇번을 만나도 지나쳤던 건 캠핑카를 정차할 만한 곳이 없어서였는데, 이곳엔 넓은 갓길(shoulder)이 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세상 모든 소리가 사라진듯한 고요와 적막이 감돌았다. 바람조차 숨을 죽였고, 파리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은 마치 생명이 닿지 않은 또다른 차원 같았다.
외계 행성에 착륙한 느낌..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 어떤 주파수를 감지한걸까? 평소 말없는 구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노옵!! 놉!”
(머가 안된다고 하는걸까..?)
말문이 트인 구름이를 보고 우린 한참을 웃었다.
“일루와봐! 구름아!!”
“오빠!! 옹덩이 뜨거워! 빨리 찍어!!”
“하나아~~ 두우울~~ 둘반~~”
“아! 빨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가도가도 끝없는 삼만리다...
(구름이는 목소리를 찾았고, 마르코는 거기서 엄마라도 찾지.. 난 여기서 멀 찾냐..... )
[01:10 pm]
여행 이튿날,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에 들렀던 마을 베이커(Baker)
15번 도로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주유도 해야 하고, 늦은 점심도 먹어야 한다.
(베이커에 있는 주유소들은 모두 비쌈... )
내가 헤스페리아에 갈 만큼만 기름을 채우는 사이, 나탈리는 주유소 옆에 붙어있는 서브웨이에 들어갔다.
“쟨 또 저기서 머하는거여..!?”
(... 설마,, 지 얼굴 쳐다보고 있는건 아니겠지..??)
“껌딱지!! 야! 껌딱!!”
몇번을 부르니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는데,,
“놉!”
(평소에 '안돼' 라는 말을 내가 자주 했나...? .. 음.. 꼭 복수하는 것 같다.... )
내일은 캠핑카를 반납하는 날이라, 차 내부 정리와 청수, 오수를 모두 비워 반납해야 한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반납하는 옵션도 있었지만, 추가비용을 내야해서 선택하지 않았다.
청수와 오수는 내일 아침 캠프를 뜨기 전에 비우면 되지만, 가져갈 짐과 버릴 짐을 구분하고, 캠핑카 안에 펼쳐논 물건들을 정리하는 건 오늘밤 미리 해놔야 내일이 편하다.
마지막 저녁은 간단하게 치킨을 포장해 먹기로 하고, 핸드폰으로 미국식과 한국식 치킨집 링크를 보냈더니, 검색을 해보던 나탈리가 말했다.
“한국 치킨 먹자 오빠!”
“오오~ 빠른 선택 감사합니다!!”
캠프에 입성하면, 1차 짐정리를 끝내고 치맥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다.
1시간 40분을 달려 도착한 치킨집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요~!”
30분쯤 걸린단 말에 근처 마트(Stater Bros.)로 향한 우리..
“나 구름이랑 저기 좀 다녀올테니까, 오빠가 마트에 가서 맥주 좀 사다죠!”
“응? 어디?”
나탈리가 가르킨 곳은..
애완동물용품점 (Kahoots Feed & Pet)
머릿속에 퍼즐 조각이 하나 둘 맞춰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몇분의 검색으로 한국 치킨집을 선택한 것도, 베이커에서 오는내내 구름이와 귓속말을 속삭이며 키득키득대던 순간도, 나탈리의 사막질주가 처음으로 신나고 행복해 보였던 점도... 모두가 아주 치밀하게 계획 되어진 것이어따...
양념반 후라이드반은 애초에 관심도 없었으리..
쇼핑을 마치고 문어 친구를 만나 신난 구름이와 내일이면 도시여자의 세상이 될 샌디에고..
모녀의 표정이 양껏 밝아 보였다..
(소름돋는 나탈ㄹㅣ...... )
[04:40 pm]
“차에 있어! 들어가서 체크인 하고 올께!”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밖으로 나오니,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Can I help you?”
(도와드릴까요?)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건네시는 할아버지.. 이곳 관리인이신가보다..
“Yes, can I check in here?”
(네, 체크인 할 수 있나요?)
잠시만 기다리라며 사무실로 들어가셨다가 나오시는 할아버지, 앞뒤 설명없이 따라오라고 하신다.
‘어디서 왔냐? 한국에서 왔다고? 내가 젊었을 때 한국 용산에서 군생활을 했었다. 여기서 한국사람을 보다니, 반갑구먼.. ’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며 길을 걷던 할아버지는 또다시 기다리라며, 왠 캠핑카를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신문 모서리를 찢은 작은 종이를 내게 주셨다.
찢어진 신문 쪼가리엔 전화번호가 적혀있었고, 그쪽으로 전화해서 물어보라는 할아버지... 그때 알았다. 이분이 이곳 관리인이 아니라는것을…
시간은 5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주 돌아버리겟구만..... )
전화를 걸어도, 다시 걸어도 자동응답기로 넘어간다. 전화를 안받는다고 하자, 그럼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하시는 할아버지...
그간 말 상대가 없어서 외로우셨는지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시는데, 나는 받아줄 여력이 없다. 나탈리를 불러 할아버지 대화상대로 붙여놓고는 다른 캠핑장들을 검색 후, 전화를 돌렸지만, 사무실이 5시에 마감한다는 똑같은 메시지의 자동응답기만 돌아갈 뿐이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며, 내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머가 일케 되는 일이 없냐.... )
[05:06 pm]
누굴 탓하랴...
예약도 없이, 전화로 확인도 없이, 그냥 온 내 탓이지. 무작정 될 거라는 기대감..
삶에서도 이러한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는데, 그걸 알면서도 그랬다니.. 더 늦기전에 다른 곳으로 떠야겠다. 자동응답기는 돌아가더라도 관리인이 있을순 있으니까...
지금 상황은 7.3 규모의 강진과 맘먹는 수준이다. 동공을 흔들리고, 세상이 흔들렸다..
(호랑이 굴에 잡혀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된다..
6.1 miles, 네비게이션상으로 11분!!
자동응답기가 돌아가는 가장 가까운 캠핑장까지의 거리와 시간이다.
“나탈리!!!”
나탈리를 태우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백미러를 보니 우리가 캠프를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며 혼잣말을 하시던 할아버지..
(건강히 지내세요.. )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정신ㅇ르 차리자! 정신을 ㅊㅏrㅣ자...)
이렇게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수 있을까?
시간이 이렇게 빠르다고 느껴질 수가 있을까?
견뎌야한다...
이겨내야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도착한 캠핑장의 게이트는 열려 있었고, 차를 몰아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나탈리! 차에 있어! 갔다올께!”
(OMG!!)
[CLOSED]
굳게 닫혀있는 문..
창문에 적힌 번호는 자동응답기만 돌아간다...
이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미 늦었다..
대책이 없다...
차에 앉아 있는 나탈리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차량 뒤쪽 담벼락에 붙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 캠프 내, 안전을 위해 게이트를 수시로 닫습니다 -
(왓ㄷㅓ!!!!!!!!)
게이트까지 닫히면 꼼짝없이 갇힌다..
(하나씩 하나씩 생각해보자!! 하나씩.. 하나씩.... )
길이 일방통행같이 되어 있어 한 바퀴를 돌아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캠프를 한바퀴 도는데, 사이트 군데군데가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탈리! 우리 여기 정박하자!”
한 바퀴를 돌고, 꺼낸 첫 마디였다.
“괜찮을까?”
“내일 나갈 때 사정을 얘기하고, 돈을 내면 되니까!”
괜찮고 말고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무조건 정박을 해야한다. 다시 한 바퀴를 돌며 만만한 빈자리를 정하고는 나탈리와 구름이를 먼저 내려주었다.
“산책하고 와! 내가 연결해놀께!!”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옆 캠핑카에서 엄마와 딸이 문을 열고 나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아! 깜짝이야... )
여긴 미국이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아무 반응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녀.
(어디서 많이 보던 모녀 모습이다.... )
차에서 연결호스 2개와 전기선을 꺼낸다음, 전기부터 연결하기 위해 전기박스를 찾았다.
(갓데밋!!!!!)
전기박스가 자물쇠로 잠겨있다. 장비들을 꺼내기 전 미리 봤다면 어땠을까...??
(아오!!!! 후회할 시간도 사치다.. )
잠겨있는 박스를 보고 나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도를 연결해야 하는 수도박스도 닫혀 있다. 조급해지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말은 지금을 두고 한 말이겠지...
눈인사를 쌩까고 들어간 모녀가 창가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점점 무서워진다..
두려움이란 먹구름은 뭉개뭉개 피어올라 내 마음을 뒤덮고 있었다.
(나탈리랑 구름이는 어디있지..?)
저멀리 산책을 즐기고 있는 모녀..
모든 건 혼자 결정해야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빠르게 결정하고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 그 순간, 열려있는 오수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다 비우자..)
(게이트가 닫히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오수 파이프를 연결하고 오수가 빠져나가는 동안, 차 안으로 들어가 버려야 할 물건들을 한쪽에 모으기 시작했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오수가 꿀렁꿀렁 빨려나가고, 심장은 벌렁벌렁 두근 거렸다.
선과 파이프를 차에 던져 넣고, 사무실 근처에 있던 쓰레기장으로 재빠르게 차를 몰았다.
캠핑의 마지막 날 아침, 나탈리와 여유로운 모닝커피 한 잔과 함께 지나간 일정을 추억하며, 차근차근 정리하려했던 내 계획은 그저 꿈이었고, 지금이 눈 앞에 펼쳐진 냉혹한 현실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이불과 월마트에서 산 베개, 식기류들,, 한국으로 가져가야할 것과 버릴 것, 솎아내고 정리하고 머하고 생각할 시간없이 뭉태기로 집어 쓰레기장에 던져버렸다.
(이제 게이트가 닫혀있으면 정말 HELL이다.. )
“나탈리! 타!!”
서킷 위를 질주하는 레이싱카가 된 캠핑카..
나탈리가 숨을 삼키는 순간, 비명을 지르는 타이어가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코너를 돌았을 때, 눈 앞의 게이트는 활짝 열려 있었다.
“신이시여... ”
(...... 꼭 이럴때만 신을 찾음.. )
짧고 강렬했던 그 몇분의 긴장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차를 옆에 세우고 숨을 돌리는데,,
“오빠! 여기 가보자!”
산책을 즐기는 줄만 알았던 나탈리는 구름이를 산책시키며, 내일 이동 동선에 맞게 숙소를 찾아본 것이다. 운전을 하기 전에는 동선 개념이 없어서 여행을 가면, 가고 싶은 곳들이 동서남북으로 찢어져 있었는데, 운전을 시작한 후 동선을 파악하는 나탈리다..
나대던 심장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나탈리가 검색해둔 몇 곳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부터 들러보기로 했다. 단, 애견동반 가능 여부는 앱에 나와 있지 않아, 직접 가서 물어봐야 했다.
모텔 입구에 도착해 나탈리를 내려주었는데, 몇분 뒤, 입구쪽에서 걸어나오는 나탈리..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는데,,
방(room) 키(key)겠지..??
(그럴거야! 마자! 그렇다고 해죠... 제발!!)
[06:40 pm]
키를 넣고 방문을 열고는 x 씹은 표정으로 변해버린 나탈리의 얼굴..
(본인이 잡은 곳이라 아무말도 하지 않음ㅋㅋㅋㅋ)
“해 떨어지기 전에 방을 잡은 게 어디냐.. ”
(나의 대사는 이게 최선임... ㅋㅋㅋ)
이 모텔은 여행객이 머무는 숙소라기보다, 장기 투숙을 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1층 끝, 비상구 바로 옆.. 멋모르고 찾아온 이방인에게나 배정하는 방 같았다.
밤새 비상구 문은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복도를 오가는 발자국 소리와 옆방 TV 소리, 창밖의 대화와 지나가는 차들의 경적까지 뒤엉켜 귀를 괴롭혔다. 심지어 방문 아래로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까지 보이는 방..
“띠잉~~~~~~!!”
전자레인지가 멈추자 문을 열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꺼냈다. 캠핑카의 마지막 저녁은 결국 모텔 식탁 위로 대체되었고, 어쨋거나 저쨋거나 일단은 먹어야 산다.
“오빠! 일단 먹자요!!”
치킨집에서 받은 위생용 장갑이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젓가락도 포크도 없다.
벽을 나란히 바라보고 앉은 우리..
“그래도 치킨에 맥주가 빠질 수 있나.. ”
내일은 자연인의 생활을 마치고 도시여자의 본거지로 돌아가는 날.. 그나마 그게 나탈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려니 하며 맥주를 땄다.
“도시여자를 위해!! 건배!!”
“건배!!”
“진짜 식겁했다.. 오늘... ”
“고생했어. 오빠!!”
“어쩜 이러케 계획대로 안되냐.. ”
“계획대로 안되긴.. 계획은 했지. 명확하게 체크를 안해서 그런거지!”
나탈리의 말에 뜨끔했다. 맞는 말이었다. 캠핑장 몇 곳을 찾아두긴 했지만, 미리 연락해 확인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 애초에 계획이 없던 건 아니었다.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같다. 살다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태반이지만, 그 중 상당수는 준비를 온전하게 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일테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기대감만으로 안일하게 살아온 건 아닐까 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반면, 구름이 셀프 목욕부터 한국 치킨집, 애완동물 용품점까지 계획한대로 해내는 나탈리가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나탈리는 어떻게 계획한대로 샥샥샥 다 되냐?”
“계획한대로라니.. ”
“계획한대로 다 된거잖아!”
“계획은 오빠가 했고, 난 그냥 오빠가 차려논 식탁에 숟가락만 올린건데, 머.. ”
그렇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막상 계획을 짠 나는 굉장히 허술했던 것과는 달리, 나탈리는 내가 짜놓은 동선 안에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준비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후, 온전하고 유연하게 대처한 나탈리의 저 태도.. 나도 배워야겠다.
“오늘 고생 많았어. 오빠!”
“고마워! 나탈리도 수고 많았어!”
“응! 고마워. 근데 밖에 시끄러워서 오늘 잘 못자는거 아닌가 몰라?”
“못자긴 왜 못자? 그냥 신경끄고 자면 되지!”
“구름아, 잘자!”
“딸램아! 오늘 아빠 심신이 지쳤는데, 같이 꼬옥~ 껴안고 잘테야?”
“놉!!”
(시러요!!)
- RV캠핑장에 대하여 뒤늦게 알게 된 사실
미국에 있는 RV 캠핑장 중에는 일반 게스트를 위한 캠핑장이 아닌, 레지던스 형식으로 운영하는 RV 파크가 많다. 이런 곳들은 장기 거주 형태로 이루어지고, 캠핑카를 장기로 임대해 사는 사람들과 자신의 캠핑카를 장기로 정박해놓고는 세컨홈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은 나 같은 일반 여행객은 받지 않는다.
오늘 찾아간 두 곳은 모두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