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엔 주변 공사장의 시끌벅쩍한 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 예전 같으면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이불속으로 다시 몸을 숨겼겠지만, 이제는 그 소리마저 공주의 하루를 여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소음은 낯선 아침을 깨우고, 나도 모르게 하루의 리듬에 맞춰 일어난다. 이제는 이 도시의 분주한 하루가 그 소리로 시작된다는 사실에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때로 위로가 된다.
어릴 적 ‘호서극장’이라는 제법 큰 영화관이 있었다.
그곳은 내 추억의 창고와 같은 곳이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도 자주 들렀던 곳 그 어두운 극장 안에서 마주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유년의 풍경이 되어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거대한 스크린 너머의 세상은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서극장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보았던 영화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상영 중이다. 이제는 그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다면 상실은 아닌 듯하다.
시간이 흘러 ‘신관동’에 새로운 영화관이 들어섰고,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주 영화를 보진 않지만 여전히 영화는 나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야 영화’가 사라진 것도 큰 이유다.
‘미션 임파서블(파이널 레코닝)’ 같은 영화는 꼭 밤늦게, 그 조용한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데, 이젠 밤 9시 이후의 상영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두운 극장에서 톰 크루즈의 거침없는 액션과 숨 막히는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지만, 아쉬움만이 스크린 너머에 남는다. 그래도 영화관에서 느끼던 그 짜릿한 감각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마치 어제 본 영화처럼.
요즘 내가 사는 이 공주라는 도시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커피숍을 운영할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고요한 아침의 정적도 이제는 공사 소리와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묻혀간다. 예전엔 맛집 몇 곳과 조용한 주택가가 어우러진 평온한 동네였지만, 이제는 커피숍과 게스트하우스가 곳곳에 들어섰다.
거리엔 활기가 가득 차다. 조금 더 북적이고, 조금 더 낯선 풍경이 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공주는 숨 쉬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나도 나이를 먹고, 도시도 변해간다. 하지만 그 시절 영화에서 느꼈던 막연한 설렘과 그리움,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작고 아담한 것들에 대한 애착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자라온 공주의 정서가 내 안에 조용히 뿌리내린 탓인 것 같다.
학창 시절, 학교 앞 뽕나무 밭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아련함을 품은 채로 변하지 않은 골모도 있다. 오래된 주택의 담장 위의 교복 입은 캐릭터들과 담장에 품고 있는 흑백 그림은 왠지 정겹다. 봉황동 주변에는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디저트 레스토랑, 경양식 집이 하나둘 생겨난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부모와 아이, 할머니가 제민천을 따라 산책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공주는 인위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도시가 아니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옛것을 고스란히 지키려는 듯....
드라마 촬영지로 등장하는 공주의 골목과 풍경은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을 보여주는 듯하고, 골목길 속을 떠 도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아낙네들의 수다소리가 사람들을 이 도시로 이끌고 머물게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공사장의 드릴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해가 떠오르며 시작되는 소음 속에서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를 걷는다. 청소년문화센터, 우체국 옆 자그마한 골목들, 어쩐지 토이스토리 속 작은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거리들은 내가 사랑해 온 공주의 모습이다.
시간이 흘러도 어떤 감정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작은 것에 담긴 따뜻함과 오래된 도시의 정서는 내 안에서 여전히 선명하다. 공주의 아침은 오늘도 시끌벅적한 소리로 시작된다.
그 소리마저 사랑하게 된다.
그 변화 속에서도 내 기억 속 ‘작고 아담한’ 공주는 여전히 따뜻하게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