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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Nov 29. 2023

친정의 김장날

힐링하는 날

지난 주말 친정에 김장이 있었는데, 이번 김장은 공교롭게도 우리 자매 셋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귀한 막내아들‘을 제외하고 부모님에겐 출가한 자식들이 다 모인 셈이다. 따로 입을 맞춘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러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자매 셋이 2박 3일을 내리 친정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자식들이 많으면 많은 대로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다. 명절에는 더 모이기가 쉽지 않은 게 각자의 가정이 있고, 딸들에겐 우선 챙겨야 할 시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딸들이 2박 3일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일이 정말로 어렵고 귀한 일이라는 뜻이다. 언니는 이제 애들이 좀 컸고,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기에 가능했다면 나는 순전히 시댁과 남편의 배려 덕분에 가능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여동생만 다소 자유로운 편이었다.


이렇게 온 딸들이 다 집에 오니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했다. 그러니까 실로 오랜만에 딸자식들이 함께 하면서 과거 우리 가족들이 그랬듯이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에겐 이미 새로운 가정이 생겼지만, 과거의 추억이 깃든 우리집과 우리 부모님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된 거지만 이렇게 옛가족이 다시 모여 허물없는 과거의 생활을 재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나에게 친정은 점점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어른의 의무(육아와 살림)를 조금 벗어던지고 응석도 부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친정에 가면 뭐가 먹고 싶은지 얘기하고, 뭐가 요즘 힘든지를 얘기하게 된다. 엄마의 집밥은 어느샌가 소울푸드가 되었고, 그래서 친정에서 며칠 쉬고 오면 나의 영혼도 어느 정도 충만해면서 다시 현재 나의 의무를 다할 힘을 얻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자매들이 다 함께 모여 서로 담소를 나누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나이가 차고,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룬 우리들이 나누는 대화는 자식부터 시작해서 남편, 그리고 다시 옛날 얘기들로 돌아왔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미래의 계획들을 지지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나이를 먹는 것이란 좀 더 성숙해지고 좀 더 배려를 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나는 자매들이 어느덧 과거의 철부지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다.


사실 엄마가 김장을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점점 노쇠하고,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그녀가 매년 하던 일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게 된 것이다. 그때 우리 자식들은 거의 집을 떠난 상태였고, 이런저런 개인사로 친정에 오지 못했었다. 그래도 엄마는 정성스레 김장을 해서 자식들에게 김치를 보내 주셨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그러니까 ‘친정’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엄마가 되고, 친정엄마의 밥이 소울푸드가 되면서 친정의 김장일을 조금씩 돕게 됐다. 겨울이 접어드는 길목에 하는 김장을 연로한 친정부모 두 분이서 하기에는 역시 무리이다. 나는 나름 돕는다 하고 가지만 사실 나 자신이 힐링을 하고 오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매년 돌아오는 김장날이 마냥 수고스럽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물론 남편은 동상이몽일 수도…)


이번엔 자매들이 모여 더욱 특별했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서로에 대한 연대감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들이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장성한 자식으로서 부모를 보살피고자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철이 든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효“라는 개념으로 환원시키기는 힘든 것 같다. 우리에겐 아직 부모님에게 서운하고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들도 얼마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정에 대한 ‘살뜰한 애정’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과거의 내가 부모님에게 거의 일방적인 애정을 받은 거라면, 이젠 서로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애정이 된 것이다. 이렇게 내리사랑은 치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친정의 김장날이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의 김치는 할머니의 김치가 그랬던 것처럼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의 소울푸드가 하나 사라진 것이 매우 아쉬울 것 같다. 그래서 올해의 친정 김치도 더 소중하게, 맛있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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