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학상 수상
요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내가 그녀의 책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문학에 깊이 빠져본 적은 없었다.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뭔가 철학적이거나 심오한 이야기는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작가의 이름은 늘 내 주변에서 들려왔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소년이 온다"로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생생히 그려냈을 때, 사람들은 늘 그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도 조금 의아했다. ‘정말?’하고 되묻게 되는 순간. 고은 시인이 한때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 건 아직 먼 이야기로만 느껴져서였을까. 그런데 수상의 이유를 듣고 나니,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의 문학 세계는 깊고도 아프다. 그녀는 역사 속 비극을 마주하고, 그 안에 깃든 인간의 고통과 연약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상처를 끌어내어 다시 보게 하는 작가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낸다. 단순한 사건 서술이 아닌,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감정, 억울함,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흔들렸는지에 집중한다. 그런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상처가 남는다. 하지만 그 상처가 어떤 치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되니까.
사실 나는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에는 그 독특한 설정에 당황했다. 고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그 선택을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로 그리지 않았다. 그것은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존재를 지켜내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가부장제와 폭력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방어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문득 내가 세상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런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건 어쩌면 시간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 비극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울리는 인간성의 울림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전 세계 독자들이 그녀의 책을 읽고 울고,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이제 한국 작가가 받은 노벨문학상이라는 사실이 주는 의미도 크다. 세계 문학에서 한국 문학이 인정받았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직면하고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요즘 서점에 가면 한강 작가의 책들이 모두 품절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책을 찾고 있다. 나도 덩달아 그녀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을 다시 손에 들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녀가 말하고자 한 것들을 더 깊이 이해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녀가 수상 소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둘러싼 삶의 연약함을 더 예리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책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녀가 추천했던 음악을 들어보기로 했다. AKMU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그녀가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감정이 궁금해졌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 “어떻게 내가 / 어떻게 너를 /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라는 가사가 나올 때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저릿해졌다. 그녀가 그 노래에서 느꼈던 슬픔과도 닮은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이별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 이별 속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아마 한강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나는 그녀의 책을 다시 기다리며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