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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Jan 11. 2024

나무꾼에게 길을 묻다

 곳간 털린 다람쥐는 어떡해

'하늘이 구릿구릿하니 비가 올려나' 눅눅한 기세에 눌려 허리가 비명을 지르고 몸이 찌뿌드드할 때면 

한 번씩 생각나는 것이 나무 땐 뜨끈뜨끈한 구들방에 드러누워 몸을 지지던 풍경이다.

약골이셨던 엄마는 쩔쩔 끓는 아랫목을 유독 사랑하셨다. 

우리는 뜨거워서 펄쩍펄쩍 놀라며 발 델까 무서워 '요'를 켜켜이 깔았지만, 

엄마는 심한 갈증 때문인지 요 한 장 깔지 않은 체 불덩이 그대로를 온몸으로 들이켜셨다.

나도 엄마를 닮아가는 건지 요즘 난방은 편하기는 하나 뭔가 시원찮다.



2001년 2월까지 친정집은 아궁이에 군불을 지퍼 겨울을 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향의 겨울 산에는 땔감을 구하는 동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 일과처럼 온 동네 아이들이 산을 헤매며 땔감을 주워, 

한아름씩 새끼줄로 동여매어 머리에 이고, 지게로 져 나를 때 

우리 아버지 자식들에게 엄하게는 했어도 땔감을 구해오라고 밖으로 내몬 적은 없었다.

 아버지 덕에 등 따시게 자랐다. 

아버지는 매일 한 두 번씩 바지게에 나무를 한가득 지고 와서는 작대기로 대문을 쾅쾅 두드렸셨다.


 밥 해 먹어야지, 소죽 끓여야지, 세숫물 데워야지, 아궁이마다 군불 때야지, 장작이 왜 그렇게 빨리 닳던지. 

마루밑, 처마밑에도, 뒤양간에도, 담을 둘러치며 미리미리 비축해 둔 장작들이 왜 그리 금세 사라지던지, 

자고 일어나면 텅 텅 비워 있는 빈자리에 다시 채워 넣기 바빴다. 

작은 방 옆 뒤주 앞에서는 시렁시렁 톱질소리, '흠, 흠' 기합이 잔뜩 든 장작 패는 도끼질 소리가 연일 났었다. 

도끼질 한 방에 쩍 쩍 갈라지던 나무둥치, 아버지가 도끼를 하늘 높이 들었다 내리쳐 나무를 퍽 퍽 패 놓으면, 

사방팔방 흩어진 장작을 모아 모아 간조로미 장작더미를 쌓는 것은 우리들 몫이었다. 

착착 포개어져 장작탑이 되어 있다, 나무의 마름 정도에 따라 차례대로 줄을 지어 아궁이로 향했다. 


소죽 끓인다고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땔 때면 얼굴이 석양빛보다 더 붉게 뜨겁게 타올랐다.

가마솥은 왜 이리 더디게 끓어오르는지, 

기다림에 지쳐 불작대기를 솥뚜껑을 탕탕 내리치며 장단을 맞추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김이 볼록볼록 거품을 물며 수줍게 새어 나온다.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멀지 않았기에 장작을 끌어 와 마지막 한번 더 박차를 가해주면, 

얌전한 솥뚜껑 갑자기 돌변하여 덜컹덜컹 들썩거리며 허여멀건한 김을 사정없이 뿜어내었다.

아궁이문 앞에 터실터실한 손을 부채처럼 펼쳐서 가만히 두고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불꽃이 피어오르게 하여 '누가 누가 오래 버티나' 내기를 하며 불의 심판을 받기도 하고, 

탁 탁 탁탁 불꽃을 튀기며 온몸을 정열적으로 불사르는 시뻘건 나무를 감상하며 말없이 불멍을 즐기곤 했다.


 저녁때가 다가오면, 엄마가 딸 중에서 내가 제일 잘한다고 치켜세우며 시키던 일이 있었다.

소죽 끓인 아궁이의 남은 숯불에 김을 굽는 일이었는데 겨울 밥상에 자주 오르던 김구이는 항상 내 몫이었다.

소금기름장을 쓱쓱 쓱쓱 발라서 석쇠에 2장씩 포개어, 

숯불이 빨갛게 달구어져 있는 아궁이 속으로 거침없이 팔을 뻗어 손을 쭉 밀어 넣는다.

'1-2-3' 머릿속으로 초를 잰다.

손은 아뜨뜨 빨갛게 구워지고,  

김은 자자작 소리를 내며 오그라들듯 부풀어 바싹바싹하고도 고소한 김구이가 되었다.

타다 남은 숯불과 잿더미에 파묻어 두었다가 얼굴이며 손이며 시커멓게 재를 묻혀가며 먹던 군고구마.

밥 지은 가마솥에 밥을 푼 뒤, 눌어붙은 누룽지에 쌀뜨물을 넣고 팔팔 끓여 먹던 구수한 숭늉,

뽀야무리한 국물에 호로록호로록 추위를 다 물리 것 같은 온기로 밥보다는 누룽지탕을 찾았더랬다. 

들기름에 달달 볶은 김장 김치에 국수 넣고 밥 넣고 끓인 김치밥국,

가마솥에 누룽지 빡빡 긁어 설탕을 뿌려 주던 달달한 엄마표 간식까지

나무는 작살이 나도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맛있는 먹거리에 열광하며 살았다.



입이 자꾸 궁금해지고 출출함이 깊어가던 어느 겨울밤에, 

엄마는 땅에 묻어 아껴 둔 밤을 꺼내 삶아와서는 옛날이야기 방송을 시작하셨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무서운 줄 알고 있던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마을로 내려와 이 집 저 집 기웃기웃하며 먹잇감을 찾다,

'여기 곶감 있다'는 소리에 울음을 뚝 그치는 아이를 보고 줄행랑을 쳤다는 시절의 겨울 이렇다.

한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단 말이지.

땔감으로 적당한 것들을 도끼로 추리며 한참을 나무를 하고 있는데 알밤 한 톨이 떽떼굴 굴러 나왔지. 

나무꾼 '이렇게 귀한 밤은 엄마 갖다 드려야지' 하며 냉큼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무를 하였지.

조금 지나니 또 밤 한 톨이 떼구루루 굴러 나왔지. 

이번에는 '밤 좋아하는 막냇동생 갖다 줘야지' 하면서 껍질에 묻은 흙을 쓱쓱 털어내고는 주머니에 넣어뒀지.

그러고는 지체 없이 계속 나무를 하였지.

얼마나 지났을까?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나무꾼 주머니에 넣어둔 밤 꺼내 먹지는 않았지. 

밤 한번 쳐다보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참고 또 참았지.

해 넘어가기 전에 얼른얼른 한 바지게 채울 요량에 나무꾼은 서둘러 도끼질을 하였지.

그러던 중 나무꾼의 발치에 토실토실하고 반질반질한 알밤이 툭 차였지.

얼른 밤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서 한 발짝 떼는데 앙증맞은 알밤이 또 한 톨 보이는 것이야. 

'이야! 오늘 참 재수가 좋구나!' 생각했지.

 내친김에 '어디 또 알밤 떨어진 게 없나'하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주변을 둘러보았지. 

야트막한 언덕배기 밑에 주먹만 한 구멍이 보이는 것이야.

나무꾼 그 구멍을 도끼로 파헤쳐 깊숙하게 파 보았지. 

그랬더니!~ 갑자기!~ 도토리와 알밤이 와르르르 쏟아져 내렸지. 

그곳이 말이다, 겨우내 먹으려고 모아둔 다람쥐 식량창고였던 거지.

나무도 하고 밤도 얻고, 나무꾼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며 싱글벙글 콧노래가 절로 나왔지. 

나무꾼 바지게에 밤을 한가득 실어 집으로 가져가 식구들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다.


나무꾼이 처음부터 밤을 보고 제 입으로 가져갔으면 그 많은 밤을 발견할 수는 있었겠나.

자신 보다 집에 있는 식구들을 먼저 생각하니 복을 받은 거라.

너희들도 항상 식구들 먼저 생각하며 우애 있게 살거라."



어릴 적 엄마에게서 들은 옛날이야기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이야기다. 

나무꾼에게 곳간을 털려버린 다람쥐가 가엽기도 하였지만,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나무꾼 이야기는 향후 나의 생활신조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맛있는 음식을 보면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아이들 앞에서 가족끼리는 콩 한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요즘 얘들 이해 불가한 얘기를 자주 했더니,

우리 아들 초등1학년 때, 

선생님에게 받은 콩 만한 곰젤리 가족들과 나눠 먹는다며 집으로 가져와서는 내 입에 한 알 넣어주었다.

4인 가족 한 개씩 먹고 나니 남는 것도 없는 젤리 한 봉지를 집에 오자마자 헝겁지겁 꺼내 놓던 우리 아들, 

친구들은 받자마자 다 먹었지만, 혼자서 먹고 싶은 것 꾹 참고 책가방에 넣어 왔다니 얼마나 기특하던지.

애 키우는 맛이 있었다!!!


그나저나, 손발이 다 닳도록 산속을 헤매고 다니며, 도토리며 알밤을 한알 두 알 주워 까짓것 모아 두었더니,

옛날에는 나무꾼한테 털리고 요즈음은 등산객들에게 빼앗긴다고 하니, 

다람쥐의 겨울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기가 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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