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유롭게 모든 것에게서 해방되었다
어느덧, 뜨개질 공방은 오픈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픈할 당시에 비가 왔던 것처럼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장님, 그거 아세요? 오늘 벌써 사장님이 이 공방을 오픈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에요!! “
“하하.. 그렇네..”
“이야! 벌써 1주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그.. 그러게 “
유리는 사실 1주년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딱히 관심도, 성취감도 없었다.
“음.. 혹시 오늘 예약 몇 명이지?”
“앗 오늘… 총 3명 있습니다! 어? 한 분은 처음 오시는 분 같아요.. 김옥순? 뭔가 연세가 많으신 분 같은데..”
“아 그럼 그분 혹시 몇 시니?”
“어… 오전 9시.. 앗 지금이네! 얼른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수지와 유리는 재빠르게 손님을 맞이하러 준비했다.
띠링
공방의 문이 열렸다. 유리의 예측대로 손님은 최소 70세는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어서 오세요! ‘마음을 뜨다’ 공방입니다!” 유리는 최대한 크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여기가.. 뜨개질 공방 마지.. 지?”
“예! 어서 오세요! “ 유리도 힘찬 젊은이가 되어보려 노력했다.
“아이고.. 허리야.. 어이! 거기 아르바이트생 나 좀 잡아줘 봐.”
“네… 하하..”
김옥순 씨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거의 30분가량 무슨 작품을 만들지 고민했다. 그녀는 어딘가 아파 보이고, 피곤해 보였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수지는 그 모습을 눈치채고
“어.. 저기 김옥순 씨, 혹시 힘드시면 천천히 앉았다 고르셔도 좋아요. 어.. 아니면 제가 골라드려도 될까요?”
사실 수지도 나이가 많은 손님은 처음이라 많이 어색했다. 1년 동안 별별 이상한 손님을 많이 보았지만, 나이 많은 손님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자네, 내가 힘들어 보이나?”
“네.. 네? 어.. 그게 아니라…”
“선생양반, 이거로 해도 되겠나?”
김옥순 씨가 고른 것은 꽃모양의 컵받침이었다.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촘촘히 해야 해서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어르신들한테는.
“어… 그건 말이죠.. 옥순 씨한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거로 해보겠네.”
“엄.. 눈이 안보이시면 더욱더 다른 작품 고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생각보다 촘촘하고 꼼꼼하게 빈틈없이 해야 하거든요.”
”사람의 인생은 짧지 않나? 그냥 이 늙은이 원하는 데로 해주게. “
김옥순 씨는 작은 컵받침에 꽂혔는지 그것을 하겠다고 우겼다. ‘고집이 세신 분인가 보네..’라고 수지는 생각했다. 공방을 1년째 여니 손님의 성격을 분석하는 직업병이 생겼다. 수지는 이제 10분이면 그 사람의 성격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베타랑이었다.
그렇게 수지는 꽃모양의 컵받침의 재료를 준비했다. 김옥순 씨는 어떻게 이 공방을 찾아왔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매우 창백하고 아파 보였다. 당분간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살짝 올라간 눈썹, 찌푸려진 미간, 새하얀 얼굴, 진한 팔자주름이 그녀의 표정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지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시작했다.
대략 15분가량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많이 편찮으신지 입을 열었다.
“콜록, 콜록, 자네.. 나는 오늘 뜨개질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네.”
“네..?”
“아니지, 내 인생의 젊은 시절에 뜨개질을 죽도록 많이 해봐서, 이제 죽을 때가 되니 다시 생각난 거야. 사실, 이 가게가 고민상담을 잘해준다고 유명하다고 그러디. 선생양반, 나는 이제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네. 인생을 오래 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네. 몸이 너무 아파서 그만 약을 많이 쓰다 보니 이제 모르핀 중독..?이라는 병이 생겼다더군. 하하.. 이제 난 정말 가망이 없다네. 아니, 난 사실 죽기 싫은 게 아니라, 어떻게 이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네. 사랑스러운 자식들, 아름다운 자연, 나의 일상을 모두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지만, 한편으론 나의 지독한 약에 해방될 수 있어 너무 기쁘다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일까? “
“김옥순 씨, 김옥순 씨는 용감한 사람이에요.”
“용감한 사람..?”
“네,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해방될 수 있다는 기쁨을 아는 것. 그것이 김옥순 씨의 마지막 목표인 겁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모든 상황에서 해방된다는 기쁨을 느껴보세요. 그러면 김옥순 씨는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인생을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그건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목표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그러니 꼭 그 목표를 이루시길 바라요.”
“허허, 자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고만 ㅎㅎ 나는 이제 그만 가보겠네. “
“어엇! 잠시만요! 그.. 이거 작품 놓고 가셨어요!” 유리가 소리쳤다.
“허허, 그건 자네 가게에 전시해 놓게. 나는 이제 필요가 없다네. 내가 선생양반에게 주는 선물이라네.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네.”
그녀는 가게를 나왔다. 그녀가 만든 꽃모양 컵받침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장인처럼.
그 후로 몇 주 뒤, 예약을 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부스스한 머리, 빨갛게 부어오른 눈과 코, 그리고 창백한 입술이 유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엇.. 혹시 예약하셨나요? “
“아니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예약ㅈ..”
“뜨개질하러 온 거 아니에요. 몇 주 전에 우리 어머님이 다녀가셨죠?”
“아.. 혹시 김옥순 씨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이제 돌아가셨고요.. 흑…”
그의 부은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우리 어머니께서 이 공방을 다녀온 뒤부터 매우 밝아지셨어요.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분 얘기만 하셨고요. 흑.. 그래서 이제 병이 다 나으셨나 싶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흑흑..”
그때 수지가 등장했다.
“아드님, 괜찮아요. 어머니께서는 바람과 같이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셨을 거예요. 제가 그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꽤 용감하신 분이더라고요.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셨고, 해방감을 느끼시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세상의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돌아가셨을 테니까요.”
그리고 수지는 생각했다. ‘김옥순 씨는 마지막 목표를 이루셨길 바래요. 부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