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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드로잉 Jul 26. 2023

epi.9 하이디의 베이커리 - (2)

하이디의 실체

띠링

수지는 정말 오랜만에 가게에 손님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공방을 운영하기에 바빠, 남의 가게를 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하이디의 베이커리’입니다.”

수지는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에는 별모양의 조명이 반짝이고 있었고 붉은 벽지가 가게를 둘러싸고 있었다. 붉은 벽지가 사실 촌스러운 인테리어 중 하나였지만 촌스러운 감성이 하이디라는 이름이랑 잘 어울렸다.

진열대에 있는 빵은 꽤 실망스러웠다. 빵은 점점 식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고, 빵의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초라한 빵 옆에서 명품백과 명품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명품전시관인지, 빵집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이유는 들어와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손님이 이렇게 가게를 차렸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서 하나쯤은 사주기로 결심했다.

“이 소보루빵 얼마예요?”

“6 천 원이요.” 그녀의 말투는 빵집 분위기에 맞지 않게 매우 차가웠다.

‘6 천 원이면 너무 비싼데… 그래도 내 손님이었으니까.‘

“엄.. 소보루빵 하나 주세요.”

그녀는 포장을 하기 싫은 듯하더니 수지에게 던지듯이 건네주었다. 그녀의 태도는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수지는 항상 모든 것을 꾹 참아왔기 때문에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신 수지는 그녀에게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하이디 씨는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

“뭐라고요?”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어요. 쉬운 질문이잖아요.”

“나름 좋아하죠? 근데 그게 왜 궁금하죠?”

“아, 그렇군요. 그런데 하이디 씨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저기요, 그쪽이 내가 기분이 좋은지 안 좋은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내 이름이 하이디인 건 어떻게 알고요?”

“사실, 기억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이디 씨가 갔던 공방, 제 공방이에요. 제가 하이디에게 뜨개질을 알려드렸었고요.”

“아…?”

“가게 운영하는 거 많이 힘들죠? 저도 해봐서 아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하이디 씨는 이걸 극복하리라 믿어요. 저는 이제 제 가게로 가볼게요.”

“잠.. 잠시만요!” 그녀가 수지를 붙잡았다.

“잠깐만 얘기하고 가요..”

수지는 차분하게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수지 씨, 저는 진짜 제가 관종처럼 보여요. 저는 과시를 하더라도 엄청나게 해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저 명품들 팔면 몇 천은 나올 텐데, 못 팔고 있어요. 저것들 마저 팔면 내가 너무 초라하고 못나서. 저것들 외에는 내가 잘났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게 없어요. 솔직히 제 이름, 하이디도 본명 아니에요. 제 이름은…“

그녀는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 수지는 안쓰러운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제 이름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너무 낯설어요… 흑흑.. 아.. 그거 아세요? 제가 유명한 뜨개질 공방을 차린 수지 씨 보고 베이커리 차린 거? 흑흑… 전 이러다가 평생 남만 따라 하고, 가짜로 살다가 죽을 것 같아요..”

“하이디 씨, 왜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세요?”

“네..? 그야 당연히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니까요.”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삶.. 과연 좋을까요..?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지만 난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사실 행복을 위해 살아가지만, 행복하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못난 거지요. 하이디 씨, 하이디 씨가 할만한 행복한 것을 해보세요. 그러면 아마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귀찮아질 거예요. 아마 이런 생각이 들겠죠. ‘굳이 내가 증명해야 할까? 내가 행복한데!’ 행복하다는 것 자체가 잘난 거니까요. “

“아.. 수지 씨 너무 고마워요. 진짜 왜 유명한지 알 것 같네요. 진짜 인생 2회 차 아니에요?”

“고마워요, 하이디 씨. 저는 하이디 씨 이름이 너무 이쁜 것 같아요. 그냥 그거 본명 하면 안 돼요?”

“하핳 그럴까요? 근데, 저 행복해지려면 명품 팔아야겠지요..? “

“명품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팔지 마세요. 만약 과시하게 되어 행복하다면 파는 것이 너무 좋고요.”

“하하 명품 그 자체가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하이디 씨, 너무 즐거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ㅎ”

수지는 또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아마 이게 그녀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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