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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OH Oct 21. 2024

1989년 2월

 허순여는 큰 주인님의 관심 밖이었다. 뱃속에 들어선 아이는 얼마 안 가 유산이 되고 말았다. 이제 허순여는 새로 들어온 여자들을 큰 주인님에게 이끌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허순여는 천권순이 그랬듯이 여자를 넘겼으나 그녀가 천권순과 다른 점은 울고 나오는 여자들을 꼭 안아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허순여는 당신의 주인은 몸뚱아리가 아니고 당신 자신이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나도 한때 선택받은 자였다고 말해주었다. 이제 당신도 선택받은 것을 감사히 여기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남편 김영욱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허순여가 밤마다 여자들을 넘겨주고 와서 옆에 누우면, 김영욱은 무슨 벌레라도 보듯이 흘깃 쳐다보고는 다른 방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허순여는 답답했다. 저 사람은 또 뭐가 불만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주인님의 경일에 대한 총애는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경일은 학교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경일은 시험을 봐서 들어가야만 하는 대흥 고등학교에서도 늘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와서도 법당에서 경일은 큰 주인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수년간 무엇을 배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껄껄 웃는 큰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리면 허순여는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자신이 그때 희생을 해서 우리 아들이 더욱 큰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감사하고 기쁠 따름이었다. 학동면에서 계속 살았다면 이런 행복은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큰 주인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이제 막 열일곱이 되었을까 말까 한 어린 여자였다. 큰 주인님은 점점 더 어린 여자를 찾았다. 자신의 가르침을 받기에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허순여는 그날도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나이인 그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법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벌벌 떠는 여자애가 불쌍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 한고비를 넘기면 그녀도 축복에 감사할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더 큰 행복이 올테니 조금만 참아라, 아가야 하면서 허순여는 그녀를 달래었다.   

   

 소녀가 들어가자마자 법당에서는 소란이 났다. 살려달라고 하는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영욱이 쇠스랑을 들고 나왔다.     


“제발, 이제, 그만, 그만 좀 하십시오, 큰 주인님! 여기서 더 하시면 제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김영욱의 외침에 다들 놀라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김영욱은 쇠스랑을 들더니 법당 안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이어 우당탕 큰 소리가 나더니 큰 주인님이 벌게진 얼굴로 법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김, 영, 욱 주인! 이 사람, 미쳤나? 감히 나에게! 당신의 아직도 그 미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군! 미련한 사람 같으니! 육신이 주인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지?”     


“그, 그런 당신은 왜 육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오! 당신이 하는 것은 겁탈이야, 겁탈! 그것도 어린 딸 같은 애한테 도대체 무슨 짓이오!”     


“하하하. 이런 천치 같은 놈을 보았나. 김 주인, 잘 들으시오, 나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야! 너야말로 이 어린 여자의 몸을 탐하고 있구나! 네가 갖고 싶은 게냐? 나는, 이 나는 말이야! 이렇게 해도 하나도 미혹이 없어!”     


 말을 하며 큰 주인은 우악스럽게 소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소녀는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이봐, 김 주인! 당신은 이 육체의 매혹스러움에 흔들리고 있지? 이건 말이야, 하나의 테스트야 테스트! 나의 굳건한 마음의 평정이 흔들리는지 안 흔들리는지 나는 매일 밤 나 자신을 강하게 밀어붙여 시험하고 있을 뿐이야! 너 같은 놈이 이런 깊은 뜻을 알 리가 있을까만은…. 거두어주었더니, 이 버러지 같은 놈, 아들놈 봐서 오늘은 그냥 넘어갈 테니 저리 꺼져!”     


 큰 주인은 다시 소녀의 손을 이끌고 법당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김영욱은 쇠스랑으로 큰 주인을 내리찍었다. 으아아악! 피가 튀었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갔다. 김영욱은 이놈, 이놈, 니가 내 인생을 망쳤어하면서 몇 번이고 큰 주인을 내리찍었다. 큰 주인은 누구 이놈 잡으라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제야 주위에 있던 장정 몇 명이 김영욱을 잡으러 법당으로 뛰어올랐다.     


“오면, 오면 다 죽여버릴 거야!” 


 김영욱은 갑자기 품에서 식칼을 꺼내 들었다. 큰 주인을 비롯한 장정들이 모두 헉하고 숨을 마셨다. 김영욱은 겁에 질린 큰 주인의 뒤로 돌아가 목을 조였다.      


“이런, 이 짐승 같은 놈! 사람들을 속이고 또 속이고도 모자라…. 너로 인해 여기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똑똑히 봐! 자, 너는 네가 주인이라면서, 육체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지? 어때, 지금은 겁이 나나? 지금도 마음의 평정이 유지되느냔 말이야!”     


 큰 주인은 헉헉 숨을 들이쉬면서도 위엄스럽게 말하였다.     


“나…, 나는 너희 같은 놈들과 달라. 나는 큰.주.인이야!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야, 나는 나의 주인이다! 너 같은 놈은 두렵지 않아! 나의 마음은 고요하다, 응, 고요하고말고!”     


 김영욱은 갑자기 크하하하 웃더니 식칼로 큰 주인을 찔렀다. 찌르고 또 찔렀다. 피가 솟구쳐 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쳤다. 큰 주인은 김영욱을 보면서 내가 이럴 수는 없는데, 너 같은 놈에게 이렇게 허망하게 갈 사람은 아닌데, 나는 큰 주인이라며 소리를 질렀으나 곧 입에서도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러져가는 눈빛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영욱은 이제 식칼을 든 채 허순여를 찾았다. 


 도망가자, 도망가야 해! 빨리 경일이를 데리고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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