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수월했다. 큰 주인은 허순여의 아들 경일이를 매우 귀여워하였다. 경일이가 다른 애들보다 총기가 넘친다고 하면서 큰 주인은 매일 한 시간씩 경일을 따로 불러 가르침을 주는 시간을 마련할 정도였다. 순여는 언젠가 경일에게 도대체 그 시간에 무엇을 배우느냐고 살짝 물어본 적이 있었다. 경일은 주인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주인님의 말씀이라니? 허순여는 그날 밤 남편 김영욱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저는 못 배워서 잘 모르겠지만 큰 주인님이 우리 경일이를 엄청 예뻐해 주세요. 또 매일 한 시간씩 말씀도 가르쳐주신대요. 우리 경일이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좀 똑똑한가 봐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영욱은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바라보았다. 허순여는 남편이 좋아하는 건지, 별로라고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큰 주인님 옆에서 시중을 드는 천권순이 허순여를 불렀다. 경일이가 더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머니인 허순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순여는 영문을 몰라 그냥 천권순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천권순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경일이는 선택받은 사람이라 더 쉽게 그 기회가 왔으며 아들이 이렇게 선택받게 된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인 허순여가 책임감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허순여는 자기 보고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천권순은 모든 것은 큰 주인님의 지도를 따르면 된다고 하고는 오늘 밤 10시에 자기가 부르면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허순여는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남편은 열 시가 다 되도록 도무지 오지를 않았다. 결국 허순여는 경일을 재우고 천권순이 부르는 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천권순은 허순여에게 이 자리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닌데, 당신은 아들 복이 많다고 하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큰 주인이 거처하는 법당이었다. 천권순은 주인님께 인사를 하고는 허순여를 손짓하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허순여는 겁이 났다. 이 야밤에, 나 혼자 왜 큰 주인님을 뵙는 걸까. 내일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일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큰 주인님이 앉아있었다. 그는 허순여를 손짓으로 불렀다. 허순여는 쭈뼛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벌써 5년이 넘었나? 생각보다 오래되었군. 당신 아들 경일이는 나를 이을 새로운 큰 주인이 될 것이야. 내가 그렇게 키우고 있고, 경일이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지. 그러나 지금 속도로는 너무 느려. 어쩔 수 없이 지름길을 택해야 해. 세상에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거든. 모두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말이야. 지금처럼 하면 시간이 없어. 그래서 허 주인님, 내가 당신에게 큰 은혜를 내리는 거야. 나를 통해서 당신에게 가르침이 가고, 아들인 경일이가 자연스레 이 가르침을 빠르게 습득하게 되는 것이야. 경일을 위해, 준비되었나?
허순여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경일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큰 주인님은 곧바로 허순여의 치마를 벗기는 것이었다. 허순여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덜덜 떨면서 큰 주인을 밀치려 하였다. 그러나 큰 주인은 우악스럽게 허순여를 잡아 눕히고는 다시 말하였다.
허 주인님, 아들을 위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안 되었나? 내가 오랜 시간을 걸려 얻은 깨달음을 당신에게만 주겠다는데, 왜 이리 어리석지? 당신은 선택받은 거야, 나에게! 허 주인님이 이러면 김 주인님과 경일이는 무엇이 되지? 지금 그깟 당신 몸뚱아리가 아까운 거야? 당신은 몸뚱아리가 당신 주인인가? 이렇게 하찮은 몸뚱아리에 왜 이리 연연하는 것이야! 더 큰 뜻을 좀 살필 줄 알아야지, 당신의 주인은 누구야? 바로 당신이지, 지금까지 여기서 배운 것이 그것 아닌가? 당신의 주인은, 이, 몸뚱아리가 아니고, 바로 당신 자.신.이야! 정신 차리란 말이야!
큰 주인은 허순여의 뺨을 냅다 갈기고는 다시 허순여의 몸을 짓눌렀다. 허순여는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큰 주인은 다시 허순여를 때렸다. 그러고는 귓가에 대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여기 온 사람 중에 정말 빨리 선택을 받은 거야. 내일 봐봐. 다 너를 질투하는 선망의 눈길을 받게 될 것이니까, 어리석구나, 허순여. 그러나 내가 너를 깨닫게 해 주겠다. 너는 오늘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
허순여는 숨죽여 울며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잘 인식이 되지 않았고 그저 무섭고 싫기만 할 뿐이었다. 모두가 존경하는 큰 주인님, 모두가 우러르는 큰 주인님이라 감히 대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큰 주인은 옷을 추스르더니 허순여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지금 주인의식이 결여되어 있어. 흥이 도무지 나질 않아. 에잇, 아직 멀었군, 감사한 줄 모르고…. 당장 나가!
허순여는 후다닥 옷을 챙겨 나왔다. 울음이 터져 나왔으나 또 끌려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주먹을 입에 넣고 틀어막으면서 참았다. 경일이에게 가야 한다, 남편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달려 자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갔다. 문 앞에 남편이 서 있었다.
“여, 여보…. 아, 아, 저는, 저는…. 흐흐흑, 어흐흐흐!”
눈물을 삼키는 허순여를 남편 김영욱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냅다 허순여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거칠게 순여를 안았다. 남편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이 되자 허순여는 지난밤 있었던 일이 꿈만 같았다. 내가 악몽을 꾼 것이겠지. 그러나 자신을 보는 천권순의 눈에서 허순여는 지난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천궈순은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허순여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도, 다음날 밤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삼 개월이 지나서야 허순여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입덧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