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허투루 쓰거나 의미 없이 흘려보내면 불안이 최대치로 상승하는 편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비싸고 긴 시간을 투자했던 삽질 하나가 있다.
29~30살로 넘어가던 해, 외항사 승무원이었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된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력직 승무원 면접을 보았지만 나를 뽑아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는 이직하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보자'라는 결심을 하고 꾸역꾸역 찾아보니 유일하게 찾아낸 키워드가 '마사지'였다.
정확하게는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수동과 능동의 차이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삽질의 시작이었는지 알지 못한 채 학원 원장님과 상담 후 바로 귀국하게 되었다.
나를 일사천리 귀국하게 만든 상담 내용은 이렇다. 마사지와 피부미용의 실무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건국대 미용 대학원에 진학한다. 2010년까지만 해도 실무와 학벌을 다 갖춘 사람이 많지 않아 대학원을 졸업하면 교수되기가 수월하니 2년간 직접 마사지사로 실무를 익힌 후 학교를 졸업하고 '교수가 된다'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마사지받는 것을 워낙 좋아했고 공부하는 건 취미이자 일상이었기 때문에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남들은 미국 이민을 가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는데 나는 반대로 귀국하며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루즈하게 비행기 타고 놀러 다니던 일상도 빠빠이군,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배워서 교수님 되어야지!'
한국에 들어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바짝 긴장되었다. '이게 진짜 나지, 뭐든 최선을 다하자' 하는 생각으로 수백만 원 하던 미용학원을 결제했다. 처음 몇 달은 꽤 흥미로웠다.
'무작정 박박 힘주며 문지르는 게 마사지가 아니다, 인체에 대한 이론을 습득한 후 필요한 부위를 정확히 짚어줘야한다.' 마사지 학원에서 해부학과 피부에 대한 이론수업을 가르치니 '여기 찐이다' 라며 이 일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사지 실습을 시작하며 나의 미래는 잿빛으로 바뀌었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마사지를 받는 것은 너무 좋았지만, 남의 몸을 마사지하는 게 죽기보다 싫을 줄은.
최종 목표는 교수였지만 남을 가르치려면 현장 경력은 필수이다. 간호사도 병원 경력이 있어야 하듯 말이다. 이미 수개월간 몇백만 원을 투자했고 호서대학교 화장품생명공학부에 등록도 해서 관둘 수도 없었다.
'참자, 2년만 경험 쌓으면 현장 경험은 충분하잖아.'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었던가? 2년은 고사하고 남을 마사지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은 단 2초도 견딜 수 없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낯빛이 누렇게 떠 보는 사람마다 몸은 괜찮은지 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달리는 차를 보며 생각했다.
'뛰어들까?'
이 일을 하겠다고 들인 돈은 총 천만 원이었다. 땅을 파면 10십원도 안나오는데... 피같은 돈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학원을 졸업했다. 다이어트업계에서 몇 개월 근무한 시간까지 총 1년을 삽질했지만 결국 퇴사해버리고 말았다.
1년에 천만 원의 삽질을 해본 결과는 '좋아하는 일을 꼭 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돈을 벌어 좋아하는 그 일은 댓가없이 즐기자'였다.
어떠한 활동이 '삽질이었다'라고 기억되려면 4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1. 공들인 시간이 흐지부지 사라지는 경험
2. 그 시간 동안 들였던 노력을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현재의 모습
3. 차라리 그 시간에 여행이라도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4.‘그래도 겪어보니 많은 걸 배우지 않았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굳이 겪어야 했을까?’라고 툭 튀어나와 버리는 진심
내 경험은 1번 2번에 해당한다. 3,4번은 '혹시나 해봤던 길을 가보고 직접 확인했으니 다시는 그쪽으로 한눈팔지 말자'라는 값진 경험을 얻었으니 후회는 없다. 또한 굳이 겪어보지 않으면 미련이 남기 때문에 나에게는 꼭 필요했었던 삽질이었다.
결론, 어떠한 경험도 헛되지 않다. 실패도 삽질도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