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아보아요
코로나 때 유독 많아진 콘텐츠가 있다.
YouTube의 수많은 패션, 화장품, 가전 가구 등 상품리뷰,
이런 체형은 이렇게 입으면 폭망! 실패 없이 00 고르는 법.
이런 제목의 콘텐츠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나 대신' 누군가의 선택을 보면서 내가 할 선택을 고민한다.
심지어는 게임조차도 직접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스트리머가 하는 게임을 지켜보며 중계를 하는 VJ의 콘텐츠를 보며 댓글을 다는 콘텐츠가 인기.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소비하는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반복해서 이런 제목들을 접하다 보니 묘하게 반발심이 든다.
심지어 알고리즘이라는 것은 '네가 이거 좋아할 것 같아서 내가 골라놨어!'를 시전 하며 비슷한 맥락의 콘텐츠를 전시한다.
한참 유행하는 MBTI, 퍼스널컬러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이는데,
자신을 자신이 아닌 외부의 '전문적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규정해 주는 것에 안도를 느낀다고 해야 할까.
사실 MBTI의 목적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이지,
0000 유형이니까 XXX 하게 행동한다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런 건 검사제작의 목적 자체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런 류의 콘텐츠들이 폭발적으로 각광받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이래저래 고민해 봤을 때, 아마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시간과 비용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당연히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어 지겠다.
물건을 사기 전에, 크던 작던 선택을 하기 전에 주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대혼란의 시대에서 자신을 좀 더 명료하게 알아보고 싶은 것도,
규정 지음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타인과의 갈등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은 이렇게 하라/ 하지 말아라'라는 주제에 묘한 반항심이 생긴다.
타인이 나의 선택에 초장부터 관여하는 것에 개인적인 거부감이 큰 성향도 이유겠지마는,
이 묘한 거슬림의 원인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10대~20대들의 저는 잘하는 게 없어요.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의 주제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릿할 정도로 슬퍼진다.
잘 기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두 가지를 유연함과 행동력으로 보고 있는데,
아직 전두엽이 말랑거릴 때, 아동기 청소년기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은 자아의 확장일 것이다.
흥미가 가는 것을 시작해 보고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면서 다양한 자기 모습을 알아차린다.
즉 자기 분석과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
자기 이해가 되어야 자기 수용을 하고
자기를 수용하면 자율적 동기에 의한 선택과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
이후에 고민을 실질적 수행,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즉, 어려서부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 등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수다.
다양한 시행착오는 자아를 확장시키고 수행의 시작을 두렵지 않게 만든다.
좌절상황을 인내할 수 있게 하고 마침내 선택의 다음 장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지 않는 바지를 입을 수도, 바가지 머리를 할 수도,
씨꺼먼 립스틱을 발라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게 조롱거리나 실패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옵션을 하나 더 넓히는 것이지 않을까.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제는 AI, 알고리즘이 될 수도)이 알려주는 한계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제약을 거는 것은 결국 자신이 된다. 행동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잠시 시간 때울 콘텐츠 하나 선택하는 것이, 바지 하나 티셔츠 하나 사는 것 정도는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수준의, 비중이 큰 경험은 아니다.
잘못 고른다 해서 실패도 아니다. 취향의 경험치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뿐.
그럼에도 이런 시행착오를 겁내어한다면
대체 우리 삶에 펼쳐지는 수많은 선택들이 주는 불안에 어떻게 압도되지 않을 수 있을까.
실제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내 행동을 누가 정한 지도 모르는 유형에 가둬 버리면
수없이 부딪히는 좌절을 어떻게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냥, 그냥, 했으면 좋겠다. 머리는 실패하면 기르면 된다.
옷은 당근 하거나 버리거나 누구 주면 된다.
해보고 싶은 것은 사부작 시작을 해볼 수 있다.
작은 것부터, 타인이나 콘텐츠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걸 좀 해봤으면 좋겠다.
특히 어린 친구들일수록.
너무 겁먹지 말고, 거창하고 멋진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저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
시도 자체가 훌륭한 경험의 결과이며 나를 확장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작은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고 시행을 해보는 것은
곧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에 아주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MBTI 도 그렇고, 이런 대부분은
하나의 유행거리로 서로 물어보며 즐길 거리겠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 생각한다.
재밌는 놀이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것도 꼰대가 되고 있다는 증거겠지.
그럼에도 나는,
범람하는 '나 대신 선택 및 규정해 주는 것'의 소용돌이가 몹시 걱정되고 불편하다.
그 연장선으로 결국 자기 효능감과 주체성의 부재로 인한 적응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더욱 그러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