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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펜 설아 Aug 22. 2023

한국, 캐나다, 프랑스인들의 온도 차이

불 같은 한국인들, 따스한 캐나다인들, 차가운 프랑스인들?

이전 글에서 적어 본 차별이 유래하는 점은 선입견이 아닐까? 모순적이게도 선입견의 본질 자체는 공평할 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 모든 이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 캐나다인, 프랑스인들에 대한 선입견 중 셋이 평행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온도 차이인 듯하다 - 따듯하고 똘똘 뭉칠 때 보면 불 같이 활활 타오르는 한국인들, 상냥하고 친절해 따스하다는 캐나다인들, 콧대가 높고 개인주의가 강해 차갑다는 프랑스인들. 다음은 그런 선입견들에 비교했을 때 내가 느낀 그들의 실제 온도이다.




이미지 출처: Mathew Schwartz / Unsplash


한국 출생임에도 내가 경험해 온 한국인들은 어쩌면 다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캐나다로 이민 전, 만 열 살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을 때엔 또래 친구들과 교류하고 가족의 보호 속에서 살았으며,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이 나 같은 1.5세대 이민자이거나 영어공부와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목적으로 캐나다에 온 유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기도 했지만 소위 '외국물' 먹은 한국인이기도 했고, 동시에 (대부분은) 캐나다인이었다. 그럼에도 가족들과 한국인 친구들, 토론토 내 한국인 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건 한국인의 따스하며 때로는 불 같기도 한 온도였다. 정이라는 문화에 묻어나는 따스함은 물론이고, 예를 들면 월드컵 때마다 한인타운 길거리와 도로를 붉은색으로 가득히 채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한국을 응원한다거나 박근혜 정부를 몰아낼 때 함께 촛불 시위를 한다거나 하는 그런 뜨거움을 알게 됐다.


물론 한국인들의 불 같은 성향은 민족주의와 연관되어 있기에 그에 대한 단점도 존재할 수 있다. 단결하고 함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예를 하나 들자면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해야 하고 함께 놀고 뭉쳐야 해, 하는 내가 고등학교 내에서 느꼈던 부담감이라던지. 또한 불같기 때문에 그만큼 차갑게도 보일지 모르겠다 - 집단, 또는 사회가 지정한 악의 시각에서 본 그들의 분노와 엄격함은 무서울 정도로 냉철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Naassom Azevedo / Unsplash


캐나다에서 자라며 내가 배운 캐나다인스러움은 상냥함이었다.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미소를 띠고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얘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캐나다의 문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렌치 캐나디안들이나 First Nations 원주민들을 제외한 영어권 캐나다인들에게 '민족성'이란 건 마치 빈 상자 같기 때문에 이런 작고 큰 문화적 코드들이 그 상자를 채운다. 동네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도중,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심지어 공원에 혼자 앉아 있기만 해도 모르는 이가 말을 거는 건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온도는 대체로 따스하다고 느낀다.


캐나다인들과 가벼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항상 그만큼 쉬운 건 아니다. 형식적인 따스함의 단계를 넘어 곁을 내주는 건 때때론 별개의 얘기라는 말이기도 하다. 비관주의적으로 본다면 그들의 상냥함은 껍질뿐이다,라고도 느낄 수 있을지도. 또한 한국인들과 프랑스인들에 비하면 캐나다인들은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밋밋하기 때문에 그들의 온도는 미지근하게 보일 수도 있다. 투표 참여율과 일상에서 오고 가는 정치 이야기를 고려해 보았을 때 더욱이 그렇다.




이미지 출처: Mat Napo / Unsplash


나는 어느 정도 프랑스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프랑스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나 미디어를 통해 내 머릿속에 각인된 그들의 이미지는 차갑고 도도하다, 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살며 알게 된 프랑스인들은 달랐다.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얘기를 나누는 문화는 아닐지라도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기만 해도 이런 면이 있다) 조금만 통했다 싶으면 프랑스인들의 집에 초대받거나 그들의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을 만나게 되는 건 흔한, 따듯한 면이 있는 문화라고 느낀다. 가까운 이들에겐 참 허물없이 잘해주고 가까이서 챙겨 주는 게 프랑스인들 같다. 또한 워낙 정치에 대한 이야기, 파업, 그리고 데모를 거의 취미처럼(?) 하는 문화라 어느 면에서 보면 불 같기도 하다.


첫인상으로만 판단한다면 외국인들에게 프랑스인들은 분명 차가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내에서 거주하는 파리지앙들은 좁디좁은 길들을 걷고 수시로 문제가 끊기지 않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바쁜 하루 일과 중 마주치는,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이 고마우면서도 정신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생활 속에 오고 가는 얘기 중 때때로 쓰이는 날카로운 톤에 뜨끔하거나 초조해지는 순간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 특히 정치나 역사 관련이라면. 개인의 표현 자유에 큰 중요성을 주는 그들이기에 그렇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난 '한국인이지만 외국인, ' 캐나다에선 '캐나다인이지만 외국인, ' 또 프랑스에선 '프랑스인이지만 외국인'이다. 그 시각들과 나의 온도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세 나라와 문화권의 온도 차, 그 사이에서 나는 무슨 온도일까? 아마도 차갑지는 않을 것이다. 따듯하다고 느꼈던 세 문화권의 온도가 나에게도 묻어났을 것임을 의심치 않고, 그 점에 있어 감사하다.


한국, 캐나다, 프랑스인들의 온도 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기도, 또는 틀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가까운 이를 대하거나 자신에게 중요한 을 위해 일어설 때 우리는 모두 같은 온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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