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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펜 설아 Aug 20. 2023

한국, 캐나다, 프랑스 - ㅇㅇ의 표현

손 인사, 포옹, 아니면 뽀뽀...?!

캐나다에서는 포옹, 허그 (hug) 문화가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나 가족과는 일상적으로, 또는 직장동료들이나 심지어는 상사라도 때에 따라 자연스레 허그를 한다. 반가우면 반가울수록, 고마우면 고마울수록, 축하하면 축하하는 만큼, 위로해주고 싶으면 위로해주고 싶은 만큼 길게, 꼬옥 품에 안는 것은 그저 당연한 것이다. 캐나다에서 자란 나는 그렇게 허그하는 것이 몸에 익었었다.  

너무 반가운 사람을 만났거나 격하게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내 맘에 차는 허그의 정도. 이미지 출처: Tani Eisenstein / Unsplash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의아했던 점이 이거였다: 가족, 사촌 동생들이나 한국에 사는 (대부분 유학생활을 했거나 이민을 접고 귀국한)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맘에 당연히 보자마자 안았는데, 뭔가 성에 안 차는 허그였다. 뭐랄까, 나는 더 힘을 주고 꼭 안고 싶은데 뭔가 비어있는 것 같은 - 공기 반 포옹 반 느낌. 그렇게 내게 허그를 받은 친구 한 명은 웃음을 터트리며 캐나다를 떠난 지 하도 오래되어 포옹하는 게 더 이상 익숙지가 않다고 했다. 재미있는 문화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한국을 가면 난 상대가 너무 반가워서 맘을 다해 안아주고 싶더라도 그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살짝만 안고 놓아준다. 캐나다 기준으로 보면 그저 비즈니스 적이고 형식적인 허그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프랑스, 보르도에 도착 후, 나의 허그문화는 어느 정도 포용되는 듯했다. 그도 그럴게, 가까이 지내던 직장 동료들도 영어권에서 와서 그들도 허그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 뚜렷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프랑스에 도착하고 며칠 후, 직장 동료이자 빠르게 친해진 친구 한 명이 자기 파리지앙 남자친구가 보르도에 왔다며 함께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 다른 친구들과 여럿이 모여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약속장소에서 기다렸고, 조금 늦은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는데... 도착한 친구는 먼저 내게 와 늘 그랬듯 몸이 으스러지게 안아주었다. 문제는 그 뒤 - 그녀의 남자친구가 우리의 포옹이 끝나자마자 내 얼굴 쪽으로 가까이 오는 거 아닌가. 깜짝 놀라서 뒷걸음을 치는데도 얼굴을 주욱 내밀더니 내 양 볼에 뽀뽀를 하더라. 그때 느꼈던 느낌은 "???" 이 쯤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볼 뽀뽀는 캐나다에서도 가까운 친구들끼리만 가끔 하는 것이기에. 그 모습을 본 내 친구는 웃음이 터져 내게 여기서는 이렇게 인사를 하는 거라고 괜찮다고 해주었고, 이 얘기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웃음거리로 남아있다.


볼 뽀뽀. 프랑스어로는 bisous(비주)라고 한다. 비주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한 뽀뽀가 아닌, 정말 그저 양 볼 옆에 입술을 스치듯 대고 가볍게 하는 인사인 것이다. 재미있는 건, 모임에 가게 되면 모든 사람이 각자 차례대로 비주를 하며 'Salut, ' 'Coucou, ' (영어로는 'Hey' 정도) 하고 인사를 나눈다 - 모르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인사 뒤에 자기 이름을 대면서. 가족과 친구 사이에선 당연하고 직장 동료들이나 상사까지도 많이 축하하거나 고마운 일이 있을 때 비주를 나눈다. 이런 문화는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고 정부에서 비주를 자제하라고 당부해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그도 얼마 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비주문화가 아무리 형식적이더라도 뭔가 정겨워서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나도 가끔은 비주가 피곤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임이 끝나기 전에 먼저 집에 가거나 한다면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비주를 하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취했거나 아픈 경우엔 하지 않고 그냥 가기도 하지만, 기본 예의는 그렇다. 그래서 너무 피곤하거나 귀찮을 때엔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둘러대고 대강 손 인사로 퉁친 적도 있긴 하다, 실은. 하지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포옹의 레벨이 나뉘는 것처럼 비주도 그렇다. 반가우면 반가울수록, 친하면 친할수록 입술이 볼에 닿는다. 이성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것도 나에게 하는 비주로 알 수 있다. 썸남 썸녀와의 비주는 입술이 서로의 볼에 꽤나 진득이 닿는다 (조금은 촉촉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다 연인이 되면 남들에겐 보통 비주를, 연인에겐 입술에 뽀뽀를 하는 것으로 대체가 된다.

 

난 비주를 프랑스에서 1 년 정도 살면서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친구와 비주 하는 걸 다른 프랑스인 친구가 보더니 웃으며 내가 비주를 하는 척만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나처럼 상대의 양볼에 그냥 입만 내밀어 스치는 게 아니라 입술 자체적으로(?) 쪽쪽 소리를 내주어야 한다며. 나도 나름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프랑스 문화권에서 자라고 몸에 밴 거랑 대강 보고 흉내만 내는 건 딱 보기에 티가 나나보다.




올해로 프랑스 생활 11년 차, 어느 정도 비주 선수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자연스레 쪽쪽 소리도 내고, 감정이 격할 땐 진하게 비주 하고, 남자친구에겐 당연히 입에 뽀뽀한다. 그리고 남자친구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에게 비주를 받을 땐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하지만 가장 맘에 차는 건 역시 몸이 아스라지게, 길게 품는 허그이다. 품 안에 안고 안기면 상대의 맘이 고스란히 전해짐과 동시에 몸에 가득히 묻어나는 포근함이 아늑하고 정겨워서. 그렇기에 프랑스에서도 난 가까운 이들과 비주 후 허그를 해주고는 한다 (한국말로도 좋은 건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으니). 맘 같아선 엄마, 아빠, 동생, 또 한국 가족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비주 허그 콤보를 해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좀 쑥스럽고 어색하다. 그래서 뭔가 좀 아쉽다, 매번. 아마 마음만 더 커져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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