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이란 개념은 분명 한국, 캐나다, 프랑스 세 나라에 모두 연관되어 있지만, 현재의 나의 집은 프랑스, 파리임을 시나브로 인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11 년째 - 이렇게 여기서 보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더욱 또렷이 식별할 수 있는 집은 아마 이곳이지 않을까.
프랑스에서 보낸 어른시간은 내게 어릴 때부터 발생한 나의 틈새를 인지하고 보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로 인해 난 이 나라와 도시를 점차 깊숙이 사랑하게 되었다. 여기서 일궈낸 인연들과 삶, 눈 닿는 곳마다 수없이 시야를 채우는 낭만,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 - 한국과 캐나다처럼 불같기도, 따스하기도 하며 동시에 지극이 프랑스다운 그런 나의 집. 그렇게 프랑스 이곳에 일궈낸 나의 집에 애착하게 되면서 동시에 나의 '다른 집, ' 한국과 캐나다를 더욱이 연모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 집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디서든 익숙한 것을 찾고 그것을 기반으로 항해한다면. 낯선 듯해도 어느 곳에나 낯익은 것들은 존재한다. 또한 어디에나 존재하는 불편함도 점차 넓게 바라보면 어떻게든 견뎌내 진다. 어떤 나라든, 문화든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일침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가 보다, '한국, 캐나다, 프랑스 중 어디가 제일 좋아?'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은.
나에게 틈새는 한국, 캐나다, 프랑스 사이에 위치해 단 하나도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자 동시에 그 모든 나라가 나의 나라이기도하다는 의미이다. 한편으로는 세 나라에 흩어져 있는 가족에게 받은 사랑, 또 그들을 향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흠모는 끊임없다. 그렇기에 난 앞으로도 세 나라를 죽 사랑하며 그 사이사이 틈틈이 속한 나 자신도 사랑할 것이다.
지구 어디서라도 올려다보는 하늘은 같은 하늘이듯, 틈새도 그렇다. 어떠한 틈새에서 살아가던지 우리 모두는 행복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나의 자리, 틈새에서 열심히 사랑하고 행복함으로써 나의 부족함과 불편함은 그다지 중요치 않아 진다.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 없이 주욱 여기 나와 함께하던 행복이 있고, 설사 다른 곳으로 향하더라도 난 아마 항상 행복할 것이다.
어떤 틈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나요? 당신의 틈새에서 마음을 공허하게 하는 것은, 또 그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절대적인 행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틈새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틈새가 있기에 절대적인 행복이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자기 자신의 틈새,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직시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우린 어떤 부족함을 감지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우리 모두가 서로의 틈새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그로 인해 서로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