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04화

개구리 2

by 김소희

한 달간 함께 일을 하게 된 고미 팀장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격식 있는 모자를 쓰고 따뜻한 목도리도 하고 집을 나섰다. 얇은 긴팔 차림으로 입고 나온 고미 팀장은 나와 만나자마자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가 우리나라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해서 몇 가지 음식을 알려줬더니 불고기 음식점에 데려왔다. 불판 앞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데 고미 팀장의 티가 점점 진해졌다.

“제가 땀이 많아서요.”

멋쩍은 듯 웃으며 아예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버렸다. 그의 조상에 대해 얘기하다가 추운 지역에서 살았던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고미씨와 같은 색의 털을 가진 곰은 없어요. 간혹 아주 밝은 회색 곰이 있기는 한데 드물어요. 종족만큼은 다양하게 섞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세상에 모르는 동물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유란드가 다른 곳에 비해 더 다양한 동물이 산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좀 더 개방적인 문화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같은 종족의 동물이 사랑에 빠지면 무시당하거든요.”

고미 팀장은 어머니에게서 종족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판다인데 완전히 같은 동물이 아님에도 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종종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만약 북극곰과 결혼하고 싶다면 우리나라에서 하세요. 거긴 그런 인식이 아예 없거든요. 오히려 같은 종족끼리라면 더 안심하는 편이에요. 도태되고 있긴 하지만 혹여나 개구리 피라도 섞이면…”

“개구리가 왜요?”

문화가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이마저도 다르다니 신기함을 넘어서 의아했다. 우리나라에서 개구리가 가진 의미에 대해 설명해 줬다. 말하면서 가슴 한쪽이 불규칙하게 아린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깊은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아, 그래서 상록씨가 목도리를 두른 거군요, 이 날씨에.”

동공이 길을 잃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저는 도롱뇽입니다.”

뜨악한 표정으로 연신 죄송하다는 그의 말보다 이미 다 젖어버린 손수건이 눈에 띄었다. 금방이라도 그 손수건을 낚아채 그의 코에 쑤셔 넣고만 싶었지만 콧구멍을 여러 번 벌렁거리며 참았다.

“괜찮습니다. 같은 양서류라 포유류인 팀장님께서 헷갈리실 수도 있죠.” 개구리 같은 지능이라면.

“화 풀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 유란드에서는 개구리 인식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개구리가 워낙 많아서 대리님께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해버렸네요. 정말 죄송해서 어떡하죠.”

그러니 개구리 같은 말이나 하고 앉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이곳에서 개구리 인식은 좋은가요?”

“좋다기보다는 다른 동물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죠. 동물이니까요.”

“하지만 개구리잖아요.”

“아무리 개구리여도 헤엄칠 의지만 있다면 모두가 응원해 주는 게 당연한 거죠. 아니, 당연하지 않을까요. 아니…”

자신의 혀를 탓하며 횡설수설하는 그를 보자니 앞으로의 한 달이 걱정되기만 했다. 어쩌면 그의 조상 중에 개구리가 수두룩한 건 아닐까? 그가 운 좋게 개구리가 아닌 조상의 종족만 물려받아서 북극곰으로 태어난 거다.


화려한 공작새가 길에 나타나자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를 훔쳐봤다. 아름다운 색조의 깃털을 가지런하게 모은 채 길가를 두리번거리는 공작새에게 순록 두 마리가 다가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는 공작새가 거절하는 대답으로 끝이 났다. 그는 시청 앞 광장에서 동물들을 제치고 무대 위로 올라가더니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고미 팀장과 함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사들고나왔는데 공작새는 아직 그 무대 위에서 꼿꼿이 서있었다. 어느 순간 그가 꼬리 깃을 펼쳐 화려한 자신을 뽐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다 한 늑대를 두고 동물들이 길을 갈라섰다. 무대 위에 있는 공작새는 여전히 구애의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한숨 소리와 웃음소리가 공존하는 군중들에 압도되어 늑대는 가지런한 치아를 감추며 낮게 으르렁댔다.

“불쌍해서 어쩌나.”

“그러게요. 제발 받아주면 좋겠네요.”

“저 구애를요? 그럼 둘 다 정신 나간 거지.”

고미 팀장이 한참 자신의 춤사위에 빠져있는 공작새를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늑대에게 소리쳤다.

“도망쳐요!”

소리에 깜짝 놀란 늑대는 앞발까지 써 가며 저 멀리 사라졌다. 나는 당황스러워 고미 팀장을 바라봤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저 킬킬대기만 하는 그를 보니 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어디 다시 한번 춤춰봐!”

누군가가 소리쳤다. 늑대가 도망친 길을 공작새가 그대로 걷고 있었다. 동물들은 그의 깃털을 건드려가며 환호와 조롱을 퍼부어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그의 눈빛은 허망하고 비어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눈빛이었다.

“정도가 심하지 않나요?”

보다 못한 내가 고미 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개구리!”

옳지 못한 일을 제지했다고 개구리 소리까지 들을 일인가. 기분이 확 나빠져서 뭐라 하려는 순간 그가 뒷말을 덧붙였다.

“거기는 개구리가 소외받는 나라라고 했죠? 여기서는 새들이 구애하는 행위가 비슷한 격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제야 이 상황들이 이해가 갔다.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개구리의 존재와 새들의 본능. 갖고 태어난 것을 부정당하는 새들은 힘들겠구나. 있는 그대로를 부정당하는 개구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가 즐겁기만 한다면 새들의 그 행위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당연한 거죠. 다른 동물의 본능이 당연하듯이.”

나름의 복수를 한 것 같아 통쾌했다. 말로는 흥미롭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고미 팀장 덕분에 그 주제는 끝이 났고 일 얘기로 넘어갔다. 따뜻한 햇빛에 괜스레 목이 더워 목도리를 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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