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03화

개구리 1

by 김소희

“개굴-하고 울어봐.”

병아리들이 깔깔대며 나뭇잎을 흔들어 댔다. 저들과 크기가 비슷한 개구리 한 마리를 두고 놀리고 있었다. 싱그러운 털빛에게 겁먹은 불쌍한 초록 개구리는 눈빛마저 그들과 다르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전부터 외로웠을 법한 눈빛이었다.

“같은 동물을 괴롭히면 안 되지.”

지나가는 어른 개구리가 한 마디 했다. 까만 중절모에 선글라스, 포근해 보이는 목도리를 칭칭 감은 중년의 개구리. 병아리들은 어른 목소리에 겁먹었다가 개구리의 피부를 보고 기세등등해진다.

“개구리가 말도 할 줄 아네. 너도 개굴-하고 울어봐!”

이미 도를 지나친 아이들의 언행에 중년 개구리는 혀를 한 번 차더니 그냥 지나쳐 갔다. 나는 목에 둘러진 두꺼운 목도리를 아무렇지 않은 척 고쳐 맸다. 괴롭힘을 당하는 개구리가 알아서 잘 빠져나오길 바라며 지나쳐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상에서 ‘개구리’라는 말이 제일 싫다. 누군가는 가볍게 장난치며 쓰는 단어지만 누군가는 저급한 말로 취급하는 가장 흔하고도 치욕스러운 말이다.


“상록 대리님, 지난달에 들어온 인턴 말인데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옆자리 다람 주임이 말을 걸었다.

“걔 좀 이상해요. 생긴 건 악어인데 하는 건 완전 개구리 같아. 일 잘할 것 같아서 기대했는데 하나를 시키면 세 개를 실수한다니까요. 머리가 빈 건지 돈을 벌기 싫은 건지. 정규직 계약은 이미 물렀고 곧 제 발로 나갈 것 같아. 나랑 내기할래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작은 입도 짜증 나는데 한 마디 할 때마다 턱턱 의자를 쳐대는 저 커다란 꼬리가 도무지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인턴이랑 같이 일을 안 해봐서 모르겠네요.”

“한 번 같이 일하면 대리님도 학을 뗄걸요. 대리님한테 친한 척하던데 다 받아주지 마요. 혹시라도 우리 얘기하면 그거 다 무시하세요. 거짓말이니까.”

미적지근한 표정으로 곤란하다는 의사를 비췄다.

“아, 같은 파충류라 마음이 쓰이나 봐요.”

“저는 양서류입니다.”

“개구리도 양서류 아니에요? 대리님은 개구리 안 같은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킬킬대며 꼬리를 부르르 떤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내 엉덩이도 움찔거린다. 꼬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그도 느끼면 좋겠다. 통통한 꼬리를 잡아서 비틀면 비슷한 느낌이 나려나…. 그렇다. 나는 꼬리가 있다. 나는 개구리가 아니다. 그도 나보고 개구리와는 다르다고 표현했다. 따라서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개구리가 아니다.


출장 경비 지원에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하다 머리가 아파졌다. 압박을 느낄 때면 괜스레 숨쉬기 힘든 듯한 거짓 호흡 곤란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힘겹게 탕비실로 갔는데 앨리 인턴이 커피를 타고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가 잔에 커피 세 스푼, 설탕 두 스푼을 넣는 걸 발견했다. 그가 카페인에 약하다는 건 -커다란 꼬리의 수다쟁이 덕분에- 다른 팀원인 나까지 알고 있다. 인턴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건 미호 과장뿐이다. 그의 취향은 커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지나치려는 앨리 인턴에게 답인사 대신 문을 막아섰다.

“미호 과장님?”

깜짝 놀란 표정은 의심쩍은 눈빛으로 바뀌어 나를 향한다.

“그냥 추측이었는데…. 미호 과장님은 커피 둘, 설탕 셋이야.”

골똘히 생각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미호 과장님 커피인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이다.

“아까 미호 과장님이 시키는 거 지나가다 들었어.”

그제야 안심하더니 이내 얼굴이 붉어진다.

“또 실수했네요….”

“그건 나 줘. 커피 마시려고 했는데.”

미안한 표정의 인턴을 보니 무언가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다. 그의 뒤에서 쓴소리를 건네는 건 부당한 일이다. 몰래 하는 조롱은 점점 기어 나와 그의 면전에 대고 소리친다. 앨리 인턴이 나를 의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왜 이 동물은 그런 개구리 같은 행동으로 스스로의 삶을 도태시키는 거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록 대리님. 이건 제가 마실게요. 제가 한 실수를 남에게 지울 수는 없어요.”

개구리 같은 짓이나 하면서 한껏 가식적인 말을 내뱉는 걸 보아 자기가 개구리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타입 같다.

“그나저나 대리님, 곧 유란드로 출장 가신다면서요? 이 회사는 몇 년 차부터 해외 출장 보내주는 거예요?”

어리석기 그지없다. 헛된 희망에 차 눈을 반짝여봤자 목적 없이 허공을 찌를 텐데. 사람마다 다르지-라는 의미 없는 대답을 하곤 인턴 손에 들려있는 커피를 들고 나왔다. 애매하게 단맛이 지독하게 쓴맛을 극대화한다. 다람 주임과 같은 의견을 갖고 싶지는 않지만 개구리 같은 놈이 맞다.


자동문을 지나 처음으로 햇빛 아래 발을 디디니 낯선 향기가 훅 끼쳤다. 상쾌하고 달달한 향기를 쫓아 앞으로 나아가는데 내 앞에서 개구리가 원숭이와 안고 있다. 눈이 촉촉한 원숭이가 개구리 볼에 뽀뽀까지 하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낯선 향기가 주는 신선함이 가시기도 전 마주한 충격적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 문만 바라보던 젊은 개구리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싱긋 웃어주고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택시가 멈추고 정장을 입은 개구리가 헐레벌떡 짐을 꺼내다 지갑을 떨어뜨렸다. 지나가던 말이 지갑을 발견하고 개구리에게 건네주었다. 감사 인사를 하는 개구리에게 말은 농담을 건네며 짐 꺼내는 것을 도와줬다. 이상하다. 비일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도 눈을 흘기거나 피해 가는 사람이 없다. 소리치는 사람은 더욱이 없다. 개구리인데도?


숙소에 돌아와 간단히 짐을 풀고 난 뒤 겨우 샤워를 했다. 꼬리가 간지러웠지만 세게 긁지는 않았다. 떨어지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짧고 뭉툭한 꼬리 탓에 놀림을 받고 자랐다. 그렇지만 난 꼬리가 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뿌예진 거울을 닦고 이를 닦았다. 피곤한 탓인지 얼굴이 더욱 넙데데해 보이고 입도 더 커 보였다. 갑자기 트림이 올라와 입을 틀어막았다. 트림을 할 때면 이상한 소리가 올라온다. 가령 ‘아훅’이라든가 ‘애옹’이라든가 ‘개울’…. 덕분에 치약 거품을 조금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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