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이름은 안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보다 어렸다. 서로의 나이를 말하면서 놀랐던 건 각기 다른 이유였다. 나는 여느 동양인처럼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고, 그녀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별을 좋아하고, 좋은 천체 망원경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낯선 생명체와의 사랑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다. 천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별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 나이에 내가 뭘 했나 떠올려보면 아무리 대단했던 성취라도 안나의 꿈보다는 작아 보였다. 그래서 더 어른처럼 느껴졌다. 낭만적인 구석을 가진 따뜻한 어른. 아빠 같은 어른이 되길 바랐던 나는 안나에게 동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안나는 한국을 잘 몰랐지만 나와 친해지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드라마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색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던 안나가 어느 날은 언니라고 불러 깜짝 놀라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손윗사람을 언니라고 부르는 걸 듣고 나를 언니라고 불러본 것이었다. 서로의 나이를 인식하며 대화하지는 않았기에 안나가 동생이라는 걸 까먹을 때쯤이었다. 서툰 발음으로 천천히 언니, 하는 게 듣기 좋아 계속 언니라 부르라고 장난을 쳤다. 내 본명보다 언니가 발음하기 편했는지 진짜로 이름 대신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린 점점 가까워졌고, 언니라고 부르는 걸 사랑스럽게 여기는 걸 눈치채고 나서부터는 다시 언니 대신 내 이름을 불렀다. 왜 이제 언니라고 부르지 않냐는 물음에 아껴 놓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괜히 서운했지만 이름을 부를 때 더 서툰 발음이라 귀엽기도 했다. 아끼고 아낀 언니 소리는 내가 삐질 때마다 안나의 입에서 나왔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그 호칭은 화를 푸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처음으로 함께 한 잠자리에서 들은 언니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을 식게 만들어 앞으로 잠자리에서 그 단어는 금지라는 약속을 했다. 그녀의 매력적인 모국어가 나를 더 뜨겁게 만들었고 우린 각자의 언어를 뱉으며 사랑을 즐겼다. 계절도 모르게 열정적이었지만 다시 봄이 오기 직전 나는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꼭 다시 만나자고 구체적인 약속을 하길 원하는 내게 그녀는 운명이라면 다시 만날 거라는 김새는 말만 늘어놨다. 낭만을 쫓는 사람은 모두 그런 건가 싶었다. 결국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거면서 운명 같은 아득한 단어를 내세워 누군가의 삶에 얽매이는 걸 피한다. 이번이 마지막 출장이라 거짓 약속을 하는 아빠처럼.
그럼에도 나는 안나에게 지독한 낭만이었나, 언니를 찾아 그녀는 한국으로 왔다.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과 다른 도시에서 취직을 했기에 동성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부모님께 안심이 되었다. 남자친구는 안 사귀냐는 성화에 알아서 잘 만나고 있다든가 친구를 남자친구인 척 속인다든가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오늘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물어보기 전까지는 그동안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으니까.
까만 옷을 입어 더 비슷해 보이는 한국인들 사이에 외국인 한 명은 눈에 확 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문화가 아님에도 한국에 온 세월만큼 익숙해진 신발 벗기는 안나에게 낯선 것도 아니었다. 안나와 현석은 아빠에게 인사하러 갔고, 현석은 깔끔하게 절을 두 번 했다. 인사까지 마친 현석을 관찰하더니 안나가 어색하게 무릎을 접었다. 하지만 무릎은 대지 않은 채로, 그리고 손만 이마에 댄 채로 굳어버렸고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나의 등을 잡고 절하는 시늉만 하도록 도와줬지만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했다. 이미 안나와 안면이 있는 엄마는 그만하면 됐다며 안나의 손을 잡았고 딱딱한 영어로 땡큐 한 번, 따뜻한 한국어로 고맙다고 여러 번 말해줬다. 현석 앞에서는 지금까지 엄마가 속아 넘어갔던 그 남자친구라는 걸 못 알아챘는지 와줘서 고맙다는 상투적인 말밖에 하지 않았다. 안나가 진짜 애인임을 밝히면 엄마의 호감은 누구를 향할까. 극명하게 드러나는 태도 차이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말해줄 생각도 없었지만 엄마로서 딸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챌까 무서워 둘을 떼어놓고 싶었다. 사랑이든 슬픔이든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나의 감정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으므로.
안나를 자리에 앉혀두고 현석과 함께 음식을 가지러 갔다. 이모님들이 안나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음식을 푸고 있었다. 음식 나르는 일을 도와주는 친척 동생은 안나보다 현석에 관심이 있었다. 하나둘씩 결혼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연애에 관한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던 나였기에 남성의 등장은 이목을 끌만 했다. 더군다나 장례식에 방문했던 내 친구들 중 현석은 유일한 남자였고 그 유일한 사람과의 특별한 관계를 묻고 싶어 하는 듯했다. 현석을 남자친구로 오해하든 아니든 상관은 없었지만 굳이 내 입으로 먼저 꺼내는 건 좋지 않은 수였다. 다행히 이곳은 이모부, 그러니까 우리 아빠의 장례식이었고 가벼운 궁금증을 풀어낼 자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정도로 동생은 철이 들어있었다. 한 명의 눈빛은 무시할 수 있었지만 다시 자리로 돌아갈 때 마주한 다수의 눈빛은 외면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남자친구’ 현석을 궁금해하는 건지, 안나를 궁금해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외국인은 익숙해도 장례식에 찾아온 외국인은 처음 보는 듯 작게 말해도 들리는 목소리로 피부가 어떻고, 눈 색깔이 어떻고, 쓰고 있는 언어가 영어인지 아닌지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 오빠가 대성통곡할 때의 기분이 찾아올 것만 같아 얼른 안나에게 음식을 주었다. 전에도 먹어본 음식들이었지만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드디어 나도 첫 숟갈을 떴다. 기석이 아저씨네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은 이미 식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나가 온 이상 다른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안나 옆에만 있고 싶었다. 아빠 옆에만 있고 싶었다. 다른 모두가 없는 곳에서 아빠 옆에 혼자서만 있고 싶었다. 그래서 안나 옆에만 있고 싶었다.
“젊은이가 영어를 잘하네. 정안이 남자친구?” 뒤늦게 오신 친척 중 한 분이 우리 테이블 옆에 앉아 말을 걸었다. 현석이 있어 영어로 대화하던 걸 들었는지 그걸로 말을 붙인다. 결정을 기다리는 듯 현석이 나를 쳐다봤다.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이들은 그저 나의 친한 친구들이 되는 거고, 그러면 나는 더 중요한 어른들 대접을 하러 가야 한다. 남자친구라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위로해 줄 가장 적합한 사람일 테고, 그러면 안나와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짧은 고민을 마치고 현석에게 고갯짓을 했다. “예, 정안이 남자친구 김현석입니다.” 안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나에게 물을 따라주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현석이 내 거짓말 속 애인이 될 때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앞에서 직접 목격하니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안나를 살피던 와중 소문이 났는지 내 남자친구를 구경하러 몇 명의 어른들이 왔다. 남자친구가 있는 줄 몰랐네, 결혼은 언제 해? 무슨 직업이야? 무례한 질문을 무례하다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어른 된 도리로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속내를 한 명이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안나는 한국어를 능숙하게 말하는 건 어려워해도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게 보여 어떻게든 어른들을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현석이 돈 잘 벌어요, 같은 멍청한 대답을 내뱉었다. 가만히 있어도 터져 나오는 게 사랑인데 거짓말을 늘어놓아서라도 감추어야 한다니. 누구를 위한 거짓말일까. 나를 위한 건 절대 아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시처럼 나를 찔러왔으니까. 현석의 어쩔 줄 모르는 표정보다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비참해하는 안나가 느껴져 가슴을 쳐댔으니까. 남자친구 현석의 앞에서 안나는 그저 다르고 신기한 외국인, 말도 못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단역 배우 1이었다. 숨 쉬듯 투명한 차별에 안나는 익숙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당하는 것도 싫은데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건 더 싫기 마련이다. 호흡이 또 가빠져와 엄마를 돌보러 가는 척 자리를 빠져나왔다. 상주석에 갔더니 엄마가 지친 목소리를 짜내어 현석에 대해 물어봤다. 아빠한테 인사시켜라. 남편도 아닌데 왜?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상주석도 빠져나왔다. 엄마 앞에서 거짓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밝히기는 무서웠다. 아빠를 잃었다는 슬픔도, 안나를 사랑하는 감정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드러내는 순간 엄마의 낯선 감정을 내가 마주해야 되고, 그걸 소화시키는 데에는 또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테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안나가 일어서 신발장으로 향했다. 급하게 다가가 손을 잡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빠르게 내려가버린 안나를 쫓아가 밖으로 나왔다. 대차게 내리는 빗 속에서 안나의 우산을 찾았고 그 안에서 극의 위기는 시작됐다.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돼? 왜 너는 숨기는 것밖에 못해? 나를 사랑하는 건 맞아?
당연히 너를 사랑하지.
안나의 언어로 뱉는 사랑 고백도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까 봐 작게 소곤거렸다.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곳에 있고 싶지 않아.
안나, 아빠가 죽었어. 지금 꼭 그래야겠어?
슬프긴 해? 슬퍼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거기에 있는 거야?
슬퍼. 슬프고, 사랑해. 사랑하니까 슬퍼. 나도 안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다. 안나를 안고 싶었다. 안겨서 울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아빠를 이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지 보여주고 싶었다. 안나가 지금 느끼는 소외감을 평생 감수해 왔다. 낯선 곳에서 자발적으로 외로웠던 아빠를 떠올리며 살아왔지만 그게 내 정당하지 않은 외로움의 이유인 줄은 몰랐다. 그간 마땅찮은 이유를 세어가며 탓을 미뤄왔다. 허공을 쏘아대던 화살이 드디어 과녁에 맞은 느낌. 중앙을 관통해 저 멀리 나아갈 정도로 큰 깨달음이었지만 정작 탓할 사람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슬펐고,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어져 슬펐다. 그러나 드러내는 순간 불편한 공기층을 하나 더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너무 어릴 때부터 깨달았다. 나는 존재하지만 나로서 존재할 수는 없었다. 느끼고 있지만 보여줘선 안 되는 감정. 털어내기 위해 상처 주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이기심이었다. 슬퍼하고, 화나고, 사랑하고, 외로운 것들이 이미 나를 잠식한 상태에서 한 번 더 참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나 기어코 삐져나왔을 때 다른 누군가를 감염시키기 마련이었다. 부드럽게 달라붙어 내가 겪는 것과는 다른 고통을 선물했다. 그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걸 경험하고,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자아에 붙으면 새로운 고통이 탄생한다. 딸의 슬픔을 목격한 아버지의 미안함, 그리워하는 자식을 위해 숨겨왔던 어머니의 외로움, 가족의 눈물이 가득한 상실의 장소에서 버티는 나의 아픔처럼 타인은 감히 공감할 수 없는 고통. 나는 슬펐고, 슬프고, 슬플 것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감정을 숨겨둘 자리가 부족해서 머리털로도 새는 것만 같았다. 우산을 빠져나와 젖어가는 어깨와 머리칼이 점점 무거워진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심장이 소리친다. 쿵, 쿵, 아픈 울림에도 흔들릴 수 없었다. 무감각한 얼굴은 아무것도 배출하지 않는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과 진심도 말하지 못하는 입. 계속해서 심장이 소리친다. 쿵, 쿵. 아빠도 없는 이 세상에 안나마저 보낼 수는 없었다. 연출가가 예상하지 못한 극의 결말은 있을 수 없다. 안나의 손을 잡고 장례식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 우산 속에서 격한 대화를 한 결과는 비에 젖은 생쥐 꼴이었지만 함께 아빠 앞으로 갔다.
아빠, 안나를 사랑해. 당연하게도 사랑해.
안나의 언어로 고백했다. 엄마가 가만히 우리를 쳐다봤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 이게 나인 걸 어떡해.
누군가의 언어로 고백했다.
엄마의 눈에 차마 보이지 못하는 감정이 담겨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싶은 건 안나를 사랑한다는 감정, 아빠를 잃었다는 슬픔이다. 고백은 후련함을 가져와 주진 못했다. 대신 눈물을 내렸다. 아빠 앞에서 진정으로 울어본 지가 얼마만인지. 시계의 초침은 오랫동안 톱니바퀴를 밀어냈다. 동력이 있음에도 자꾸만 비껴가는 바늘. 닳고 닳은 톱니가 빠져 고장 나버린 초시계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걸까. 움찔하며 일정하게 맴돌던 눈금 사이가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공간이었음을 깨달은 건 과연 오늘이었나. 사라져 버린 톱니를 찾으며 눈물을 가리키는 바늘. 나의 초침은 아빠의 톱니를 밀어내 기어코 눈물을 쏟아냈다.
평생을 그리워했어. 왜 나를 떠나갔어. 왜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어. 어디로 가버렸어. 같이 울어줘….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2층에 퍼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순간 어떤 이도 호흡이 가빠져오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건, 보일 수밖에 없는 건 나의 진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