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01화

안나 1

by 김소희


안나, 아빠가 죽었어.


부고 소식을 안나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친구가 몇 없기도 했거니와 내게 필요한 사람은 안나였다.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삼켜야 했던 슬픔은 그녀와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발현됐다. 안나와 있을 때면 따뜻했다. 그래, 따뜻한 낭만이 있는 사람들. 닮은 점이라고는 사실 하나뿐인 두 사람 사이에서 몇 번이고 확인하려 노력했다. 안나, 널 보면 아빠가 떠올라. 아빠, 안나는 아빠와 닮은 사람이야. 다른 곳에서 출발한 물길이 서로 강에서 만나고,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는 돌다리가 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흘러가는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나를 덮치는 물결도 버티다 보면 어느새 잠잠해졌다. 그렇게 있으면 됐다. 물과 같아서 흐르고 흘러도 다시 나에게 찾아왔으니까.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강물의 끝에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깨닫기 두려웠다. 바다는 작은 돌다리가 지탱하기에 너무 깊고 넓기에. 그럼에도 말라버린 강물을 느끼려면 직접 찾아가야 했다. 토해내야 했다, 나의 진심을.


상주석에 멍 때리는 척 앉아있기도 질린다. 나를 가엾어하는 얼굴이 보기 싫어 허공에 초점을 맞추고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짓는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은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익숙한 아저씨들 소리가 들려왔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대신 영정 사진을 마주했다. 시야에 걸친 엄마의 붉은 눈이 버거워 이내 자식의 도리를 하러 나섰다.

“오셨어요.”

기석이 아저씨가 말없이 안아 주셨다. 빗물에 얼굴이 닿는 게 싫었지만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 후에 떨어져 악수를 청했다.

“밖에 비가 많이 오죠?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네가 하지. 정환이는?”

“할머니 모시러 갔어요. 엄마는 저기 있어요.”

어깨를 다독이는 뜨끈한 손바닥들이 싫지는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흘릴 눈물이 있는지 이모가 새 휴지를 박스 채 쥐어주고 있었다. 아저씨들을 데리고 아빠 앞으로 갔고 몇 명은 엄마와 함께 울었다. 오랜 친구에게 건네는 돌아오지 않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럴 거면 모임에 자주 오지 그랬냐, 애들이 다 컸지만 그래도 제수씨 혼자 두고 가면 어떡하냐, 울음은 커져 갔다. 비난인지 넋두리인지 울음인지 모르겠는 말들이 겹쳐졌고 나는 연극을 보는 것처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배우들만 바뀐 채 몇십 번은 재공연 된 연극. 연출자의 마음으로 커튼콜의 타이밍을 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무릎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울타리가 되어 줬던 아저씨들에게 처음으로 위로의 손길을 건넸고 다독임이라는 신호로 이번 극은 막을 내렸다. 배우들은 나를 따라 백스테이지로 자리를 옮겼다. 장렬한 연극의 끝에는 육개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정환은 언제쯤 올까.

술이 이미 올려져 있는 상 앞에서 아저씨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웃음으로 가볍게 술잔을 거절하고 서둘러 육개장을 옮겼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니 배가 고파졌다. 아빠 얘기를 제외하곤 할 말도 없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화두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기석이 아저씨 딸 얘기나 하자고 마음먹고 내 육개장을 담아 옆에 살포시 앉았다.

“정환아!”

아저씨 중 한 명이 오빠 이름을 불렀다. 벌써 한바탕 눈물바다였는지 잔뜩 부운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오빠가 들어왔다. 알 수 없는 곡소리를 내뱉는 할머니 옆에서 눈물을 참는 건지 이를 앙다문 오빠가 안쓰러웠다. 불과 세 시간 전만 해도 내가 운전해서 가고 싶었는데…. 영정 사진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싶었다. 오빠의 팔에 간신히 기댄 할머니가 신발을 벗자마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오빠도 할머니를 끌어안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식장이 조용해지고 아주 작아 보이는 인간 두 명을 모두가 집중한다. 거대한 성인 남성 안에 파묻힌 작은 노인.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가 2층을 메꾼다. 합을 맞추듯 상주석에서 엄마와 이모의 울음소리도 같이 커진다. 여기저기서 작은 울음이 터지고 안타까움에 혀 차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모두가 인간 두 명을 집중했고, 동시에 모두가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내 눈은 다시 허공을 바라본다. 육개장을 먹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서.

“정안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대답은 필요 없었으므로 조용히 일어나 인간 더미로 다가갔다. 오빠 품에서 꺽꺽 거리는 할머니를 일으켜 방석이 있는 상주석으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를 마주한 엄마도 꺽꺽 거리며 뒤집히듯 울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상을 같이 치러야 하나. 임종을 또다시 접하고 싶지 않아 오빠를 데리러 갔다. 신발장 옆에서 바닥을 치며 오열하는 그가 다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그대로 지나쳐 밖으로 나가버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호흡을 가빠지게 하고 몸을 가만둘 수 없게 했다. 의미 없이 자갈을 걷어차며 주차장 구석에 주차된 차에서 담배를 꺼내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불 붙이기를 시도하던 차 누군가 어깨를 건드렸다.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된다면 그건 바로 오늘일 거라 예상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조신하던 막내딸이 담배를 입에 대다. 꽤나 좋은 그림이다. 애연가인 아버지를 느끼고 싶어서 그랬나-.

“밖에 나와있었네.”

예상과 달리 나를 알아본 건 현석이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현석을 바라보기도 전에 그의 뒤에 있을 안나를 찾았다. 어두운 밤에도 밝을 수 있는 눈동자가 나를 담았다. 자신의 라이터를 찾아 내게 건넸지만 불을 붙이는 대신 안나를 껴안았다. 진득하던 가슴이 평온해지고 다시 배가 고파져왔다.

괜찮아?

내가 사랑하는 언어로 다정하게 물어본다. 이 순간 나는 5년 전 우리의 도시에 있다.


지나치게 붐비지는 않지만 외국에 있음을 실감하게 할 정도의 밀도. 성당을 중심으로 가늘게 퍼진 골목길을 몇 번이고 돌아도 매번 낯설었다. 가게들은 보통 작았기에 바깥의 창문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일 수 있었지만 이 도시의 소상공인들은 홍보에 관심이 없었다. 전시한 상품은 가게 주인 마음이었고 그것들은 볼품없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좋았다. 호기심 많은 나는 직접 들어가야 어떤 걸 파는 가게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약 열 달의 시간 동안 이 작은 도시의 모든 가게들을 들어가 보려면 부지런해야겠구나. 방 안에 누워 무기력할 시간은 없겠구나. 빵이 유명한 도시답게 골목마다 작은 빵집이 있었다. 온통 초록색인 외벽에 담쟁이덩굴이 자연스럽게 둘러진 건물은 시내 구경 3일 차에나 눈에 띄었다.

빵만 가득 진열된 카페에 들어가니 고소한 버터 냄새와 좁은 계단이 보였다. 봄이라고 해도 아직 쌀쌀한 바깥 날씨와는 대조되는 따뜻한 공기가 버터 냄새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문에서부터 시작해 창문을 따라 카운터까지 디귿자로 빵이 진열되어 있었다. 천천히 빵을 구경하고 마지막 도착지인 카운터까지 왔지만 어디서도 트레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쟁반 위에 유선지 한 장, 집게 하나가 익숙한 한국인에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빵을 손으로 집어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카페 직원이 말을 걸었다. 외양뿐 아니라 하는 행동까지 외국인임을 광고하는 나에게 영어로 대해주는 건 이 직원이 처음은 아니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었지만 오늘부터는 최대한 이 나라의 언어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서툰 언어로 트레이를 찾는 내게 그녀는 매력적인 모국어로,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1층에 자리가 있어. 그녀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1층에는 빵과 카운터, 주방만 있을 뿐 테이블은 없었다. 웃으면서 1층에-라고 또박또박 말하며 위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나를 직접 데려다줬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나라는 0층부터 세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2층이 1층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역시 서툰 언어로 주문을 했고, 친절한 모국어로 대령해 준 빵과 차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기억은 이렇게 재생된다. 촬영 장비를 가득 담은 승합차에 다행히 조수석 한 자리는 비어 있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늦잠을 자고, 아침밥 전투를 벌이며 통학 버스 시간을 놓쳐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빠도 나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속아주며 의미 없는 아침밥 전투에 참여한다. 엄마만 속이 터지는 바쁜 아침에 오빠는 금세 집을 나서고 이어서 엄마도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며 출근길에 나선다. 조용한 집안에 남은 우리는 언제 늦장을 부렸냐는 듯 하하 호호 함께 준비를 끝마치고 아빠의 멋있는 까만 차에 올라탄다. 언제나 오빠에게 뺏기는 조수석을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며, 아빠와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는 달콤한 시간. 길면 반년도 못 보는 날이 많았기에 한순간 한순간 꾹꾹 눈에 담고 가슴에 저장한다. 추억은 이렇게 상기된다. 어떤 촬영을 했는지, 어떤 동물을 봤는지 말해주던 아빠의 목소리는 학교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줄어들 줄 모른다. 해가 바뀌면서 시시해진 동갑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아빠와 차에 앉아 내 영역 밖의 신비한 세상을 탐험하는 게 더 즐겁다. 10분 남짓한 시간은 아빠의 대장정을 다 듣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이 아침 방송은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다 평소처럼 학교 앞에 도착했을 때 아빠가 장난스러운 눈짓으로 핸들을 꺾으면 추가 방송이 이어진다는 신호다. 내일이면 아빠가 다시 집에 없다는 의미이고. 시즌의 마지막 회차는 진행자도, 청취자도 아쉬우므로 학교 주변을 두 바퀴는 더 돌며 엄청나진 않은 교훈과 함께 막을 내린다. 아쉬움을 떠올리기도 전에 휘몰아치는 이야기와 특별히 주차까지 하고 안아주는 아빠의 품이 앞으로 있을 긴 이별을 버티게 해 준다. 이미 등교가 끝난 학교 운동장을 아빠 손을 잡고 거닐 때, 교무실에 들러 조례를 놓친 이유를 아빠의 늦잠이라 설명할 때, 교실 층 계단에서 마지막으로 아빠를 안아줄 때까지 눈물은 가슴에 담아둔다. 그렇게 일교시가 끝나기 전까지 고이 담아두다 쉬는 시간이 찾아오면 혼자 화장실에 가 잔뜩 농도가 짙어진 울음을 짜낸다. 배출할 때를 놓친 눈물은 양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뱉어내야 하므로 어렵게, 어렵게 짜내어 몸속 농도를 알맞게 맞춘다. 10살이 터득하기에 좀 이른 방법이었지만 교실에서 대놓고 울다 아빠가 학교로 불려 와 함께 울어버리는 건 그것대로 힘들었다. 부모의 눈물은 가장 낯선 것이어야 할 나이에 슬픔보다 당황스러움이 커져갔고 그게 당황스러운 건지도 몰랐던 나는 다양한 감정을 가지는 게 혼란스러웠다. 아무도 몰래 화장실에서 울어야 오로지 슬픔만 느낄 수 있다. 나의 눈물로 아빠가 힘든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슬프지 않은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혼자 우는 법을 배웠다.


한국어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익숙한 수업이어도 외국어로 듣는다는 건 배의 노력이 드는 것을 넘어 자는 시간까지 뺏겨 버렸다. 잘 몰라도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듣고 말하는 데에 익숙해지겠지. 하지만 나에게 시간은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익숙해질 때에 이곳을 떠날 텐데 ‘언젠가’를 기약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유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쉬운 과목들만 시간표에 넣었다가 마지막에 욕심으로 바꾼 수업 하나가 큰 걸림돌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개념도 단어부터 다시 알아가야 하는데 새로운 개념을 배운다는 건 무모한 선택이었다. 좋아하던 전공을 마음대로 공부할 수 없어서 버거웠다. 바보가 되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아직 이곳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으므로 애써 위로하며 시내 구경을 나섰다. 알아갈수록 낯설어지는 이 도시와 친해지려면 익숙한 장소를 반복해서 찾아가야 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덩굴 벽 카페를 찾아왔으나 입맛이 뚝 떨어진 상태라 커피만 시켰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온도 잠시, 나를 바라보던 여성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이곳 사람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미성년자와 성인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고 저들은 필히 아직 어린 학생들일 것이다. 나를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도 피하지 않다가 킥킥대며 무어라 소곤거렸다. 가져온 책을 꺼내 들고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느껴지는 시선에 눈길을 줘버렸다. 눈을 찢던 아이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를 매만지는 척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웃어대는 소리에 머리가 어질 하고 분노가 차올랐지만 그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언어로 내가 느끼는 모멸감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한국어로 부당함을 표현해도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를 동양인이라 차별하는 사람들 앞에서,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동양인의 언어로 대응을 하는 게 무서웠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인종 차별을 하는 것이라 위안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낮은 자존감으로 채워진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부족했다. 저 학생들에게, 그리고 이곳의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내 모습을 자꾸 상상하게 됐다. 작고 별 볼 일 없는 무능력한 동양인 한 명.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물러터져 동양인으로 엮여버린 아주 작은 외국인 한 명.


토론 수업이 거의 없었던 한국 대학교와는 달리 이곳은 토론이 수업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좋아하는 주제도 내 의견을 잘 표명하지 못하는데 어쩌다 어려운 주제가 나오기라도 하면 그저 다른 이들의 발표를 듣고 고개만 끄덕거리며 알아듣는 척을 했다. 아무 말도 없는 나에게 생각을 물어오면 ‘이 주제는 참 어렵네. 너네 말이 맞는 것 같아.’ 혹은 ‘이 주제는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어려워서 표현을 하기가 힘들어.’ 등의 회피하는 말만 늘어놓을 뿐 어떻게 이해를 했고, 어떤 감상이 떠올랐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오늘 수업에서는 야생 동물을 촬영할 때 벌어지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두고 토론을 했다.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주제였지만 이번 주 수업 자료인 책에 관련된 이야기가 몇 번 등장했고, ‘도덕’과 ‘기준’을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놓칠 수 없는 토론 주제였다. 아빠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 좋은 발표를 할 수도 있었지만 초등학생 수준에 겨우 미치는 언어 능력으로는 내가 아는 지식을 드러내기 힘들었다. 같은 그룹의 학생들은 나를 경청하기 위해 눈을 열심히 마주쳤고,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들려오면 갸웃거리며 추가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감이 떨어져 버린 상태에서 추가 설명이 필요할 때마다 나의 능력 부족에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아빠가 촬영 감독인데…,’ ‘아빠가 이런 말을 해줬는데…,’ 반복해서 말하는 이 문장들은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을 표현할 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나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 활동 속에서 아빠만 자꾸 불러오다 보니 더욱 아빠가 그리워졌다. 아빠의 이야기만 그대로 늘어놓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얼른 아빠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듣고 싶었다. 내게 가장 확실한 위로는 아빠의 조언이었으니까.


한국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전화를 걸지 못했다. 시차 때문에 통화가 자유롭지는 못해도 이렇게 늦은 밤이나 아침, 혹은 잘만하면 오후에도 연락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타국에서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모습을 굳이 아빠가 잘 시간에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참았다가 내일 해야지. 조금만 더 참고 내일 신나는 목소리로 알려줘야지. 아빠가 보고 싶었다. 고민 상담에 적격인 한국 친구들도 있었지만 아빠에게서 듣는 낭만적인 인생철학은 나의 심란한 인생을 잠깐이라도 다 덮을 만큼 따뜻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식물들 사이에서, 미디어로만 접했던 자연 현상 속에서, 원하던 동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직접 겪을 순 없어도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곤 했다. 어떤 날은 그날의 날씨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날은 그 순간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아빠의 능력은 그랬다. 내가 어디에 있든 자신이 생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갈 수 있었다. 내게 외국의 인상은 그랬다. 아빠가 보내주곤 했던 찬란한 세상. 이렇게 적나라한 외로움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빠도 이럴 때가 있었을까. 혼자 힘들어하고 혼자 위로하며 혼자 삭였던 날도 있었을까. 어쩌면 혼자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날의 내가 화장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울어버리곤 내게 아름답던 추억만 전해줬을지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 공간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슬퍼한다고 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더욱 낯선 슬픔을 목격하게 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눈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외로웠던 마음이 아무도 없는 곳이니 울어도 된다는 안심을 주었다. 이미 나는 작고 불쌍한 동양인이므로 여기서 눈물 몇 방울 흘린다고 해서 불쌍함의 정도가 깊어지진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트인 공간에서 울었더니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신경 쓸 사람은 없으니 더 울어버렸다. 농도가 짙어지기도 전에 뱉어낸 눈물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

소매가 몽땅 젖어 휴지가 필요할 때쯤 누군가가 내 테이블에 빵을 올려놨다. 자주 시켜 먹었던 딱딱한 작은 빵이었다. 놀랐지만 울고 있는 눈을 보여줄 자신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진정부터 했다.

괜찮아?

이 나라의 언어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순간. 얼굴을 보지 않아도 자주 들었던 목소리라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번을 제외하고는 내 주문을 받았던 직원이었다. 나의 슬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창피함이 들어섰지만 다정한 물음을 무시할 수는 없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봤다. 매혹적인 눈동자는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메인 목소리로 괜찮다고 대답한 뒤 감사의 인사도 전했다. 직원은 알았다며 빵은 선물이라고 말하고 내려갔고 더 이상 이 장소에 있을 수 없겠다 싶어 허겁지겁 빵을 입에 밀어 넣은 뒤 짐을 챙겨 내려갔다. 자리로 와서 주문을 받고 계산도 직원이 직접 찾아와 하는 게 이 나라의 문화지만 여기는 층이 많아서 그런지 계산만큼은 나갈 때 카운터에서 해야 했다. 자신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온 나를 보고 직원은 놀란 눈치였다. 마트에 가야 해서-라는 거짓말을 하니 끄덕이곤 계산을 해주다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온다.

곧 일이 끝나는데 나랑 같이 마트에 갈래?

마트에 진짜 갈 생각은 없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빵을 급하게 먹어 다정함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고, 방금 한 질문이 내게 닿을 마지막 다정인 것 같아 놓치고 싶지 않았다. 15분만 기다려 달라는 말에 이미 자리를 정리하고 온 나는 갈 곳을 잃은 채 빵 진열대를 둘러보며 서성거렸다. 안 그래도 좁은 곳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고 방해되고 싶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겠다 전한 뒤 카페를 나왔다. 아직은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절로 상쾌해졌다. 내가 무엇 때문에 슬펐는지,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잊어버릴 수 있었다. 바로 옆 핸드크림 가게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정각보다 이르게 카페 앞으로 가자 이미 일을 마치고 나온 직원이 나를 찾고 있었다. 가버린 줄 알았다며 안심하는 표정으로 맞이하던 목소리, 눈빛, 발음 모두 내 몸속 기관 어딘가를 간지럽혔다. 주변에 가까운 마트가 있었지만 더 싸게 파는 마트를 향해 우리는 조금 먼 길을 떠났다.

keyword
팔로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