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Sep 27. 2021

소원 노트를 써 보세요.

 한동안 연락을 안 하던 사람한테는 선뜻 연락을 하기가 힘들다. 어느 날 카톡 친구 목록을 넘기다가 몇 년 동안 연락을 안 하던 친구가 보여 망설이다가 ‘안녕?’이라고 보냈는데 바로 읽고 답이 왔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며칠 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꽤 오랜만에 만나서 밀린 수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친구가 나를 만나 제일 처음 한 이야기가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야, 내가 얼마 전에 책을 읽었는데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쓰래. 그래서 내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썼다. 근데 너한테 연락이 딱 온 거야. 신기하지?”


“오, 신기한데. 그럼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 이렇게 쓰는 거야?”


“그렇지, ‘이번 1등은 내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소원’과 ‘계획’을 구분하는 나의 기준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다. 할 수 있는 것의 비율이 낮을수록 ‘소원’에 가까워지다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어지면 완벽하게 ‘소원’ 카테고리로 들어간다. 

 친구를 만나고 와서 나도 소원 노트를 준비했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게 되었다’ 같은 형태로 노트에 적고 실제로 이루어진 것에는 밑줄을 그어 소원성취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했다. 사소한 것까지 다 써서인지 생각보다 이루어진 것이 많았다. 노트에 적은 소원이 쌓일수록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가 명확히 보여 재미있고 노트를 보는 맛이 있었다.


 개강하기 전에 나는 늘 이런 소원을 쓴다.

‘이번 학기에 좋은 학생들을 만나서 행복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설레는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로 만나는 이상 싫다고 안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두려움이 훨씬 크다. 그래서 개강 전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매 학기에 이런 소원을 쓴다.  

 ‘좋은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행복한 학기’가 어떤 학기를 말하는 것인지 그 의미와 기준은 조금씩 바뀐다. 직전 학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전 학기에 나를 힘들게 한 학생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었다면 ‘좋은 학생’의 기준은 한없이 낮아져서 웬만하면 ‘좋은 학생’이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 학기는 ‘행복한 학기’의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반대로 학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학생들과 잘 맞고 수업이 즐거웠다면 다음 학기에 기대치가 높아진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데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한동안 질척거리며 지난 학기를 그리워한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지금까지 내가 만난 학생 수를 세어 보니 천 명이 훌쩍 넘는다. 좋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하기 힘든 학생도 있었다. 물론 나와 성향이 안 맞는 학생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자신과 잘 맞는 교사를 만나고 싶을 것이다. 그런 성향의 차이 외에 어떤 선생님이 담당해도 힘든 학생들이 있다. 교사나 다른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무례해서 수업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거나 단체 수업인데도 자신에게 맞춰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학생을 만나면 매일 아침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 학생 자체가 가진 문제라서 나도 방법이 없다. 그저 그 학기가 빨리 끝나기만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이 일을 한 덕분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라서 싫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사람 때문에 하고 싶어 지고 사람 때문에 하기 싫어지는 일이다.


 소원 노트에 쓴 문장을 보면 특정 시기에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때 나에게 가장 간절한 것을 소원 노트에 자꾸 쓰게 되어서 내 마음이 아주 잘 보인다.  

 소원 노트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는데 앞으로도 쓸 것 같다. 기능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소원을 비는 주술적인 기능과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불안감을 더는 기능, 자신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는 기능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첫 브런치 북을 엮어 볼 계획이 있었는데 며칠 전에 완성했다.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도 응모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므로 소원 노트에 썼다.

'내가 쓴 책을 재미있게 읽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전 16화 공부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