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가르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왠지'라는 표현을 가르쳤는데 교재에 '왠지 그 사람이 싫어요'라는 예문이 있었다. '왠지'의 의미를 설명했을 때 회사원 학생이 그 예문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 그 사람이 싫은 이유는 분명히 있어요. 말하는 사람도 이유를 알지만 말하지 않는 거예요."
수업료는 내가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때도 학생의 말이 맞는 말 같았는데 더 살아 보니 공감이 많이 간다. 이유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나에게 '왠지'는 '자기 기만'일 때가 많다.
솔직한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솔직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솔직해지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서 그걸 해 내는 사람이 대단해 보이고 좋아 보인다.
어떤 일에 대해 내가 '왠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항상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싫거나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을 때 '왠지'라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지나칠 수 있고 모를 수 있지만 나는 나를 아니까 '왠지'라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슬쩍 지나가려는 것이 보인다.
얼마 전에 친구가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덜 의식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장남이라서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의 눈, 친척들의 눈이 의식되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고 애썼고 항상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보다 내 눈이 먼저였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 기억보다는 내 눈에 차지 않아서 괴로웠던 기억이 더 많다.
나는 나에게 참 잘 보이고 싶은가 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면 좋겠고, 더 유능하고 마음이 넓고 착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안 좋은 면이 드러나지 않도록 '왠지'로 잘 싸서 은폐를 시도하곤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는 스스로에게 뜨끔해지는 질문을 해 봐야겠다.
이게 정말 '왠지'가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