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시간은 기묘했다. 석훈과 지냈던 모든 시간이 허상이었던 것처럼 회사와 집을 오갔고 이따금 J를 만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소파에 누워 책을 뒤적이던 J가 재미없다는 듯 테이블 위로 책을 대강 내팽개치며 말했다.
“요즘 좋아 보이네. 만나는 사람 있어?”
“글쎄, 없는 것 같은데.”
“애매한 대답은 뭐야? 수상쩍게.”
“나야 항상 수상쩍지.”
J가 심드렁하게 웃으며 내가 마시다 남긴 위스키를 들이켰다.
“술 더 없어?”
“그게 마지막 잔이야.”
“너희 집 오는 길에 보니까 괜찮은 바 생겼던데, 나가자.”
하늘은 물을 탄 듯한 푸른빛과 보라색이 뒤섞여있었다.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그곳은 고동색 나무로 만들어진 바 테이블이 전부였고 메뉴판 대신 원하는 술 종류를 말하자 웨이터가 술 몇 병을 가져와 코르크 마개 냄새를 맡게 해 주었다.
나는 깔바도스를, J는 피트위스키를 주문했다.
J가 최근 만난 여러 명의 여자 이야기를 했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와 여자가 떠나고 술집은 텅 비었다. J의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재즈음악만이 허공을 떠돌았다.
잔에 남아있는 깔바도스를 마시고 카운터로 가 계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