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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Aug 21. 2024

재의 고통 EP. 12

이후의 시간은 기묘했다. 석훈과 지냈던 모든 시간이 허상이었던 것처럼 회사와 집을 오갔고 이따금 J를 만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소파에 누워 책을 뒤적이던 J가 재미없다는 듯 테이블 위로 책을 대강 내팽개치며 말했다.

“요즘 좋아 보이네. 만나는 사람 있어?”

“글쎄, 없는 것 같은데.”

“애매한 대답은 뭐야? 수상쩍게.”

“나야 항상 수상쩍지.”

J가 심드렁하게 웃으며 내가 마시다 남긴 위스키를 들이켰다.

“술 더 없어?”

“그게 마지막 잔이야.”

“너희 집 오는 길에 보니까 괜찮은 바 생겼던데, 나가자.”

하늘은 물을 탄 듯한 푸른빛과 보라색이 뒤섞여있었다.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그곳은 고동색 나무로 만들어진 바 테이블이 전부였고 메뉴판 대신 원하는 술 종류를 말하자 웨이터가 술 몇 병을 가져와 코르크 마개 냄새를 맡게 해 주었다.

나는 깔바도스를, J는 피트위스키를 주문했다.

J가 최근 만난 여러 명의 여자 이야기를 했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와 여자가 떠나고 술집은 텅 비었다. J의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재즈음악만이 허공을 떠돌았다.

잔에 남아있는 깔바도스를 마시고 카운터로 가 계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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