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척준경(1)
고려 시대 아니 어쩌면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무위를 지닌 인물을 꼽자면 바로 척준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명 한반도 최고의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척준경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의 고려 무장 '김신'의 모델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tvN <도깨비> 공식 홈페이지
어쩌면 소설에서나 가능할 일들을 이루어낸 그의 업적은 정사인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생생히 숨을 쉬었던 그 역시 고려 시대 '별무반'을 조직해 여진을 정벌한 윤관의 이름 아래 가려져 있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방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척준경은 어린 시절부터 글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예를 익히는 등 이른바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가출 혹은 방황의 시기에 우연히 고려 11대 문종의 셋째 아들인 계림공(왕희)의 집까지 가서 그의 시종 노릇을 하게 되는데, 이 계림공이 훗날 왕(숙종)이 되며 척준경 또한 그를 따라 추밀원(고려시대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및 군기를 맡아본 국왕의 비서기구)의 관리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9년 동안 일하던 그는 고려 동북쪽을 담당하던 병마사 임간 밑의 말단 관리로 임명되는데, 이때가 한창 여진족들이 국경을 넘어 고려의 땅을 침범하던 시기였다. 마침내 1104년 여진족이 정주성을 공격해 오자 이를 얕보았던 임간은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웠으나 대패하고 쫓기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척준경은 임간에게 말과 무기를 달라고 요구하는데, 이걸 보아 그는 무관도 아니었고, 말과 무기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정말 말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상황이 급했던지라 임간은 이 말단관리의 건방진 요구를 들어주는데, 이때부터 척준경의 신화가 시작된다.
척준경은 후퇴하는 고려군 사이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여진족의 장수 2명을 죽이며 여진족의 추적을 물리치며 고려군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 부탁하여 무기와 갑옷입힌 말을 얻어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구출했다. 그 후 교위인 준민과 덕린과 함게 활을 쏘아 각각 한 명씩을 거꾸러뜨리자 적들이 물러났다. 척준경이 퇴각하자 다시 여진족 1백여 기가 추적해 오자 다시 대상인 인점과 함께 적장 두 명을 사살하였다. 적들이 망설이는 틈을 타서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왔으며 이 공으로 천우위 녹사참군사를 제위 받았다.
<고려사> 127권
이처럼 뛰어난 무위를 선보인 척준경은 왠일인지 오히려 투옥 당하는데 학자들은 아마 임간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자신에게 건방진 요구를 했던 척준경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한다.
윤관의 초상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
그러나 이런 척준경의 활약을 알게된 윤관은 그를 감옥에서 꺼내어 여진족 정벌에 나서게 된다. 사실 윤관은 이미 1104년 숙종의 명에 따라 여진족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한 후 '별무반'을 조직하여 다시 여진족 정벌에 나선 상황이었다. 윤관은 여진족에게 고려가 잡아두었던 허정과 나불 등을 돌려 보내겠다고 통보하였고, 이에 여진족이 400여 명을 보내자 이들을 섬멸했다. 윤관의 17만 대군에 놀란 여진족은 동음성으로 숨어들어갔고 윤관은 이를 격파했다. 그러나 석성으로 들어간 여진족이 의외로 수성에 능하여 고전을 하게 된다. 더이상 시간을 끌면 다른 여진족들이 뭉치게 될 것을 두려워하던 그때, 척준경이 나선다.
"죄를 지어 죽을 몸이었던 저를 구해주신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척준경은 홀로 칼과 방패를 들고 성벽을 기어올라가 성벽 위에 있던 여진족 수십 명을 베었고, 이것을 본 고려군은 사기가 올라 마침내 성을 함락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역사서에 기록된 척준경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진족 역시 만만한 족속은 아니었다. 약 8천여 명의 적은 군사로 시찰을 나갔던 윤관은 길을 우회한 여진족의 기습으로 1천여 명 밖에 남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때 함께 있던 척준경은 10명의 결사대를 준비해 길을 뚫기 위해 나섰다.
그의 동생이었던 낭장 척준신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척준경을 말렸지만,
“나는 한 몸을 나라에 바쳤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늙은 아버지를 부탁한다.”
라고 말하며 적진에 돌격을 감행한다.
병목 지형을 믿고 깊숙히 정찰을 나간 윤관은 우회로를 통해 침투한 여진 대부대의 기습에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고립되었다. 부사령관인 오연총이 화살에 맞았고, 윤관 역시 위기에 빠진 때에 척준경이 결사대 10명을 이끌고 활로를 뚫으려 하자 낭장 계급으로 함께 전투에 참여한 동생 척준신이 이를 말린다. 척준경은 "나는 한 몸을 나라에 바쳤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너는 늙으신 아버님을 잘 봉양해라."라며 돌격한다.
이렇게 척준경이 윤관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유는 윤관이 먼저 자신을 알아주고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96권
척준경이 여진 군사들 10여 명을 해치우고 악전고투를 벌이며 시간을 끄는 도중 마침내 최홍정과 이관진이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하였고, 윤관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척준경 역시 부상 하나 없이 살아돌아왔다. 그리고 도망치는 여진족을 쫓아가 36명의 목을 더 베었다.
이제 윤관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너를 자식처럼 생각할 테니, 너도 날 아버지처럼 생각하거라"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윤관이 패잔병을 수습하여 영주성으로 물러나자 며칠 후 여진족의 알새가 2만여 명을 이끌고 영주성을 공격해 왔다. 이미 한 차례 위험을 겪은 고려군은 기세도 꺾였고 병력이나 군량도 부족한 상태였기에 성안에서 버틸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척준경은 "우리가 나가지 않고 안에서 버틴다면 적병은 더욱 늘어날 것이며, 우리의 군량은 더 부족해 질 것이다. 만약 지원군마저 제 때에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나가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마침내 척준경은 결사대를 모집하여 성을 나섰고, 적병 19명을 베며 여진군을 몰아내었다. 그는 피리를 불며 성으로 돌아왔고, 고려의 장수들이 그의 손을 잡고 절하며 감사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척준경은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나 보여줄 법한 무위를 선보이며 패배가 당연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다음 시간에는 척준경의 또다른 무용담과 함께 이러한 그의 이름을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지 서술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