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벼움이 필요해

잘 달리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by 행복 한스푼

걱정이 눈송이처럼 소복소복 쌓였다. 바닥 저 밑에서 자신감은 이리저리 뒹굴거렸다. 나를 웃게 했던 달리기가 점점 부담감과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이유는 달리는 횟수와 시간이 확연히 줄었고 자꾸만 미루게 되면서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잘하고 싶은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4월 20일, 이순신 백의종군 하프 마라톤 대회가 또 코앞이다.


대회에 나갈지 안 나갈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결국 나가지 않겠다고 결정했고, 남편에게도 내 의견에 반대하지 말라고 비장하게 통보했다. 의외로 남편은 쿨했다. 말리지도 않고 그러라고 했다. 자기 혼자 잘 뛰겠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붙잡고 다독일줄 알았는데 예상밖이라 당황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말하고 나니 한결 홀가분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왜 그렇게 마음졸였나 싶었다.


접수비를 돌려받으려고 얼른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발 빠른 치타처럼 부담감에서 쏜살같이 도망치고 싶었다. 설렘을 반영하듯 마우스를 잡은 손이 떨려왔다. 머리로는 돌려받을 계좌번호, 이름 등 접수 취소 절차를 시뮬레이션했다.


말랑말랑한 장밋빛 미래에 도파민이 솟구쳤다. 배너에 “성원에 감사합니다. 접수 마감되었습니다.”라는 문구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나쳤다. 환불 요청을 보니, ‘접수 마감일 전까지만 가능’하다는 글을 보았다. 두둥! 마감이 끝났으니 환불 기간도 끝난 것이다. 기쁨은 삽시간에 한숨과 함께 절망으로 바뀌었다. 내 얼굴은 흙빛처럼 변해갔다.

‘하~ 신이시여! 또 쌔가 빠지겄네(힘들겠네). 빠지겠어.’

잠시 좋다가 말았다. 결국 나는 완주를 해야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실, 3월에 있었던 수원국제경기마라톤도 환불 기간이 지나 울며 겨자 먹기로 뛰었었다. 힘들겠지만 완주만 하자고 결심했고 딱 그만큼 하프를 달렸다. 이순신 백의종군 마라톤은 조금 나아진 실력으로 발전된 모습을 꿈꾸었는데. 역시 물거품이 될 것 같다. 또 완주만을 기약해야 한다니 씁쓸했다.


그런 자포자기한 마음에도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댔다. 겁이 나고 무기력했던 마음을 후루륵 털어낸 자리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해야 했다. ‘small win(작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습관)’을 생각했다. 사소한 작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지킬만한 난이도라 하나씩 처리하는 짜릿함이 있었다. 마치 오늘 하루 부단히도 애썼음의 흔적같았다.


커다란 절벽을 만나면 한 번에 넘을 수는 없다. 다만 잘게 더 세밀하게 쪼개어 계단을 만들면 시간은 걸리지만 가능하다. 실행에 옮기기 쉽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가속도가 붙는다.


나에게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 필요했다. 그냥 30분만 뛰고 오자는 마음, 딱 그만큼 실행하면 됐다. 5km만 달리자는 마음이 7km를 넘어설 땐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걸 깨닫는다. 못 달릴 때는 천국의 계단에서 30분만 땀 흘리자고 방향을 틀어도 좋다. 1730개의 계단을 오르며 나는 잠시 천국과 지옥을 맛봤다. 러닝 머신에서 걷다 뛰다 반복해도, 실내 자전거와 방송 댄스로 그날의 분량을 채워나가도 된다.


괜찮다. 나는 자잘한 근육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달리기에대한 끈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뭐 달리기로 밥 벌어먹고 살것도, 엘리트 선수가 될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저, 나이면 된다.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스스로를 달달 볶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면서 하면 된다. 나의 풀코스 완주가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지길 바라지, 눈물과 피땀, 혹독한 고통으로만 채워지길 원하지 않는다. 평정심을 가지고 나의 속도대로 나아가면 된다. 행복한 걸음들이 모여 나의 풀코스는 완성되어 가있다.

웃어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즐겨라. 나는 완성되어 가고 있으므로.

감사하라. 심장이 터질 듯이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달리기에진심이라지만게을러진나를반성해

#신청취소는재빠른치타처럼

#뿜뿜뿜설랬다가절망감을맛본신청취소

#쿨한남편날말리지도않았네

#30분만이라도달리거나1730개천국의계단오르기

#풀코스완주를언제나상상해신나지만오지게겁나지

#쌔가빠지도록또완주해야겠지

#평정심을가지고나의속도로질러

#때론가벼운마음가짐이필요해몸도가벼워졌으면

#통깨처럼달달달스스로볶지않기


사진: UnsplashEvi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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