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 하프마라톤 (4월 20일)
빗방울을 살짝 머금고 있는 듯,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다. 기온이 초여름 날씨까지 올라갈 거라는 기상 예보에 잔뜩 긴장했다. 대회 3일전, 마지막 점검차 9시 30분에 달렸다. 강렬한 태양에 숨이 턱턱 막혀 오징어구이가 되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힘듦을 내가 지고 있는 것처럼 지쳤다. 나는 더위와 땀에 몹시 취약하다는 것을 확인 사살했다. 계획했던 거리도 채우지 못하고 10.3km로 마무리해서인지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다행인 건, 어제의 비도 그쳤고 구름이 낀 날씨로 출발할 수 있음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8시 30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나와 남편은 화장실을 가고, 테이핑하며, 몸을 풀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회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도 관찰했다. 각자의 티셔츠에는 몇 km를 뛸 것인지 색깔과 함께 큼지막한 이름이 쓰여 있었다. 강아지에게도 배번을 달아 함께 뛰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도 몇 보였다. 유독 눈에 띄는 건 녹색의 풀코스 주자들이었다. 언제쯤 나도 풀코스 배번을 달고 뛸 수 있을지 내심 부러웠다. 나에겐 하프 거리도 만만한 코스가 아니니까. 언젠가 이 하프도 잘 요리해 먹을 정도로 실력을 쌓으면 풀코스를 도전해 보겠노라 작은 다짐을 한다.
미리 스마트 워치를 눌러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절전 모드가 실행되었다. 출발선을 향하여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기다리는 30초 동안 몹시 당황했다. 남편에게 조금 뒤에 출발하자며 빨리 스마트 워치를 다시 켰는데 출발점을 지나기도 전에 실수로 미리 켜버렸다. 다시 멈추고 출발선을 조금 지난 다음 재시작을 눌렀다. 당황했지만 다시 마음을 잡았다.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나의 페이스로 달리겠다고.
사람들은 나를 앞질러 계속해서 지나쳤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나가도 조급한 마음이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출발 전 사회자가 아마추어는 처음에 달리다가 나중에 걷는데, 프로는 처음에는 천천히 가지만 반환해서 더 힘을 내어 달린다는 말을 했다. 물론 나는 프로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절대 걷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에 힘을 비축하며 아껴야 했다. 남편도 조금 앞서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천천히 가라며 말하다가 과호흡 오지 않도록 묵언 수행했다. 남편이 먼저 가면 그냥 쿨하게 보내주겠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나의 페이스로 묵묵히 갔다.
남편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페이스를 맞춘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무한반복했다. 문뜩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페이스를 맞추느라 남편은 자신의 속도로 달리지 못한다. 기록도 단축할 수 있고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기회인데 말이다. 앞질러 가다가도 뒤를 보며 속도를 늦추기를 반복한다. 나의 실력이 남편을 발목 잡게 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또 금요일에 갑자기 시골에서 친정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맛있는 걸 대접하려 애썼고, 현금 50만 원을 뽑아서 수입이 없어진 부모님께 드리라며 살며시 건네기도 했다. 나보다 더 나의 부모님께 살갑게 잘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나의 속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꼈다.
터널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고래 고래 소리지르기도 했다. 8km를 알렸던 팻말이 9km를 가르킬 정도로 1km를 조금 넘은 길이었다. 문득 서로가 맞지 않지 않아 괴로웠고, 오해했으며, 힘들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부단히도 그리고 치열하게 서로의 다름에 다투었던 질풍노도 말이다.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왜 그리도 힘들었는지. 물론 아직도 이해되지 않고, 지나친 간섭과 잔소리에 서로를 구속하기도 한다. 어찌 됐든 그 시간의 견딤을 통해 우리는 터널을 마주해도 다시 화해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얻었던 것 같다.
10km를 지나 반환점을 돌아올 때는 이제 갈 길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희망이 보였다. 다시 기나긴 터널을 지나 2~3명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맞은편 아직 반환을 하지 않은 사람도 확인했다. 물론 몹시 적었다. 나보다 먼저 반환하여 우수수 무더기로 지났던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다. 급수를 하며, 교통지도를 하며, “화이팅”해주시는 분께 수줍게 “화이팅”으로 답변했다. 특히나 이름을 크게 불러주시며 파이팅 해주시는 분께는 더 감사했다. 그렇게 서로가 응원을 주고 받으며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장거리를 연습하지 못한 탓에 15km부터는 살짝 걱정되긴 했다. 다행히 내리막길이 이어져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오르막길을 왔다는 뜻이라서 순간 내가 기특하다는 생각도 했다. 잘 달리지는 못하지만 쉬지 않고 달리고 있구나하고. 하지만 점점 날씨가 맑아지다 못해 더워졌다. 지금 하프를 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런 더위를 이겨내며 3시간 이상을 더 달린다는 건 상상하기 싫었다.
4km 남았다는 표지판에 400m 운동장 트랙이 생각났다. 이제 4000m를 조금씩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던 거리가 3km부터는 갑자기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특히 은행나무길을 들어섰는데 출발선이 보이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져야 할 피니쉬라인이 안보이니 힘을 내던 페이스를 다시 낮췄다. 거의 다 와서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저 두 사람을 따라잡아야지 했다. 한 명은 겨우 잡았다. 나머지 한 명은 마지막에 전력 질주로 달아났다. 아무리 달려도 끝날 것 같지 않은 마지막이 이제 곧 50m이다. 후~ 드디어 마음 놓고 쉴 수 있음에 기뻤다. 턱턱 숨이 막혀 힘들었지만 완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해냈다는 뿌뜻함이 있었다.
남편은 마지막까지 질주하더니 피니쉬라인에 멈춰 나를 기다렸다. 마지막 5km부터 자꾸 질주하라며 잔소리를 해댔지만, 그 잔소리를 이겨내며 나는 꿋꿋하게 내 페이스로 뛰었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 페이스대로 줄기차게 갔다. 다만 언젠가는 힘이 남아 전력 질주할 날을 그려봤다. 다 달리고 나니 조금 아쉽기는 했다. 약간 힘이 남아있는 걸 보니 좀 더 열심히 달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수와 완주 메달을 받으며 벤츠에 앉았다. 한참 동안 완주했구나라는 생각에 작은 성취감에 젖어 있었다. 짐을 찾으러 간 남편은 오뎅을 두 컵을 가지고 와서 먹고 있었다. 그때 사회자는 풀코스 여자 선두가 60대라며 말을 이어갔다. 순간 남편과 나는 눈이 마주치며 “반성하자.”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달리고 싶다. 기록을 떠나 대회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탄탄하게 쌓아야 한다는 건 항상 느끼는 바다. 남편과 함께여서 더 좋았다. 나의 페이스메이커 남편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결심도 지긋이 해본다. 특히나 완주 메달의 이순신 각인이 참 마음에 들었다.
우린 합쳐서 풀코스를 뛰었다. 언젠가 각자 풀코스를 완주 할 날을 또 다시 상상해 본다. 이제 열심히 꾸준히 달릴께! 더워진 날씨 탓에 새벽 달리기와 근력을 많이 쌓아야 할 것 같다. 내일은 리커버리런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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