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짐을 가득 실어 잉글랜드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넣어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가 벌써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매일매일 바쁜 일상 속에 겨우 며칠을 빼어서 곧 졸업을 앞둔 아이 대학교를 찾아갔다. 3년간 아이에게 추억이 가득한 잉글랜드 Durham대학교. 아이도 졸업 전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 번 와 주기를 원했고 나도 이제 아이가 없으면 다시 방문할 일이 없을 도시일 것 같았다.
특히 3년간 아이를 멋지게 신앙적으로도 성장시켜 주시고 맛난 한식도 매주 먹여 주신 한인교회에 고마운 분들도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싶었고 몇몇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아이와 단 둘의 시간들도 가질 겸 비행기를 타고 뉴캐슬로 향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였지만 취미로 친구들과 재즈밴드를 만들어 자주 공연도 하고 한인교회 회장도 하면서 아이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작년엔 그렇게 당당히 대기업에 면접을 보더니 여름 인턴에 뽑혀 10주간 인턴쉽을 마친 후 올해 졸업을 한 직후 그 회사에 정직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영국에 와서 제법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낳은 나의 첫아들. 나에겐 여전히 애기였던 아이가 어느덧 초등학교 중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코로나 시기에 대학을 합격하더니 벌써 졸업을 하고 취업을 앞두고 있다. 멋진 스케이트를 타고 너무나도 순조롭게 잘 깔린 아스팔트 도로를 쌩쌩 달리듯 아이는 아주 멋지게 달려 나갔다.
이제 졸업논문을 제출하고 졸업을 하기까지 남은 3~4주정도의 시간들.
아이는 좋아하는 재즈 밴드 공연들을 하면서 마음껏 피아노를 연주하며 마지막 대학생활을 아주 즐겁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졸업을 하고 2주 뒤 아들은 런던 중심가로 가서 제대로 사회인이 되어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만나 대학가를 돌고 저녁도 먹고 예쁜 커피숍에 들어갔다. 나랑 아이는 예전부터 서로 티키타카 말도 잘 통했다.
런던에 방도 구했고 이제 연봉이 어떻게 되고 앞으로 미래엔 어떻게 성장해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하는 아이에게 난 미리 엄마로서 나름 준비해 온 멋진? 조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난 정말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런던 방값은 렌트비가 너무 어마어마하게 비싸잖아. 그리고 매년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니 차라리 이제 우리 온 가족이 런던 집 사기 프로젝트로 공동계좌를 열어서 함께 돈을 모으자. 그리고 모기지로 집을 사고 다음엔 다른 곳에 부동산 투자도 함께 하자."
이런 말을 신나서 나열하기 시작하는데 아이는 내 생각과는 달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
" 엄마, 난 벌써 내 연봉에 세금을 땐 가격으로 일주일 생활비, 그리고 투자나 적금 들기, 학자대출금 갚기 등등 엑셀로 정리를 다 해 뒀어. 그리고 공동 계좌를 만드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내 동생은 아직 대학도 안 들어갔는데 공동계좌를 만들어 함께 투자를 하고 공동명의로 부동산을 사게 된다면 나중에 우리가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할 때도 복잡해질 것 같아. "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이제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멀리 대학을 보내고 매년 방학 때 몇 주씩만 집에 왔던 아들이 이렇게 성장해 버린 줄 몰랐다.
그때부터 난뭔가 버벅대기 시작했다.
그래, 공동계좌는 포기했다. 사실 아들의 논리적이고 맞는 말?로 졌다.
지금까지는 돈을 벌어 열심히 아이를 서포트해 줬지만 이제부터는 점점 나이가 들어갈 남편과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승승장구를 해 나갈 아들과 함께 힘을 합치면 뭔가 우리 가정도 작은 스노볼에서 큰 스노볼을 만들 수 있을 것같았던 꿈같은 미래는 한방에 부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