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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iO May 17. 2024

생각 바꾸기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지 말고 순간순간의 시간들을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지 했는데 요즘 나의 삶이란.. 글쎄.

요즘의 난?  아침이 오면 빨리 일이 끝난 오후를 기다리고 월요일이 되면 주말을 기다리는 삶.

그래, 그냥 시간을 주섬주섬 마구 담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는 기분이다.

거기다가 가끔씩은 그냥 평화롭게 하루가 지나는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 눔의 영어가 가끔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오늘 같은 날은 더 기분이 다운된다.  단지 내 영어 발음이 안 좋아 상대방이 못 알아듣거나 혹은 상대방이 후다닥 빨리 말한? 지내들끼리는 잘 통하는 슬랭에 내가 순진한 울 강아지 마냥 갸우뚱거리며 잘 못 알아들은 것뿐인데 그게 내 학력과 지식, 내 경험, 나이를 그냥 싹 다 송두리째 무시당하고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상대방은 신경도 안 쓰고 아마 기억도 못 하겠지만 순간적으로 본인들도 모르게 나온 답답하다는 표정, 실망, 무시 등의 표정을 너무나도 재빨리 캡처해 버린 나에게는 그 순간의 장면이 하나의 사진이 되어 뇌리 속에 박혀 버린다.


화장실을 가서 고개 주욱 쳐들고 한숨을 푹 내리 쉰다. 이 나이를 먹고 어린애처럼 눈물 글썽대는 게 너무 속상해서 고개를 천장 쪽으로 한껏 지켜든 채 중얼거린다.

" oo야, 좀 있다 집에 가면 네가 젤 좋아하는 블랑 맥주 마시자"

(내가 젤 좋아하는 블랑 맥주가 영국에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몇 주 전에 론칭이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나 자신을 내가 젤 좋아하는 보상으로 다독거려 주고 화장실을 나와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웃으면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민자의 삶.

난 한국이 힘들어서 싫어서 떠난 것도 아니다.

영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 나라에 온 것도 아니다.

단지 일본 유학하다가 사랑에 빠진 남자가 하필 이 영국 시골에서 온 남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어땠는가?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가끔 영국에 살면서도 복잡한 거리를 지나다 보면 딸아이한테  "여긴, 왜 이렇게 외국인들이 많아?" 하고 중얼대기도 한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쓰고 한국음식만 해 먹다가 바깥에 쇼핑을 가면 나도 모르게 여기가 영국인지 한국인지 별 관심도 없이 헷갈릴 때도 많다)

결혼 초기에는 얼마나 당당했던지 영국에서 NI넘버(National Insurance number는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같은 세금을 관리하고 피고용인들의 최저임금 제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번호이기 때문에 한국의 주민번호만큼 중요하고 합법적으로 일을 할 때도 이 번호가 꼭 필요하다)를 받아야 한다길래 받으러 가서 담당자가 나의 영어에 대한 레벨을 물었을 때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쇼핑하고 테스코 가서 장 보고 하는데 문제없는데 영국 사는데 더 필요한 게 있나요?"

넘 당당했던지 심사관도 웃으며 더 이상 별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 (요즈음엔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한데 20년도 훨씬 지난 예전에는 관공서에 직접 가서 신청을 했었다.)


영어로 의사소통만 되면 너무나도 당당했고 내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이제 내 발음에 좀 익숙해지라고 더 짜증을 냈던 내가... 그래 내가 그랬다. 상대방은 한국말은 아예 못 하는데 내가 이 정도 영어하면 정말 난 대단하다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한 내가..

문제는 돈이라는 걸 받고 영어를 써야 하니 입장이 확 달라졌다.

영어를 못 하는 게 아주 나의 큰 단점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어쩌겠어?

돈 주는데.

그러니,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예전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할 필요성이 없으면 몰라, 그렇다고 매일 할 일 없이 놀 수도 없잖아?

요즘은 나랑 같이 놀아 줄 한국인 친구도 없는데.

그리고 누가 영국에 살라고 떠밀었니?

네가 선택했고 이 일도 네가 선택했잖아.

그러니까,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이상 생각을 바꾸자.


그래,
매 시간당 돈 받고 영어 배운다 생각해.
 가끔 못 알아들으면 어때?
돈 주는데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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