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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귀를 막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야 현실자각은 나의 정신과 마음을 강하게 후려칩니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한순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큰 잘못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원망만 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자갈길인데, 꽃길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길에 맞게 잘 가고 있었는데 나는 왜 꽃에 물도 주지 않느냐, 왜 예뻐해주지 않느냐, 왜 햇빛도 쐬어 주지 않느냐며 원망했습니다.
당신과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다른 것을 알지 못했다.
현재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꽃길이 아닌 길로 들어와 당신이 꽃길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나의 꽃길은 예전에 끊겨 이제 그 길은 통행금지가 되었고, 자갈길만 통행가능한 길이였습니다.
내가 서 있는 길이 자갈길인 것을 이제 알았는데 그 길로 계속 가야 할지, 여기서 멈출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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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난 날 우리만의 밴드를 만들었었죠.
1년이 지나자 1년 전 올렸던 사진이나 글이 있다고 알려주는 알림은 작성자인 저에게만 오는 건가요? 당신에게도 가는 건가요? 물어보면 될 것을.. 이 간단한 질문조차 하기가 어렵다니.. 제가, 우리의 관계가 한심합니다.
어떤 것은 알림이 오고 어떤 것은 알림이 안 오는 거 같긴 한데..
작년 오늘 올린 글에 달린 당신의 댓글이 참 다정하고 사랑이 느껴지네요.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온도차가 느껴집니다.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아 무겁게 느껴지네요.
오늘은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생일선물이 제 마지막 선물이 되었네요.
작년에는 오랫동안 선물을 생각하고 준비하였지요. 사랑과 정성이 정말 많이 든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한 가지 선물만 생각했으므로 오프라인 매장을 돌지도 않았고, 제가 먼저 받아 선물포장을 해서 우체국에 다시 가는 수고도 하지 않았으며, 직접 만든 카드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신에게 보낸 향수의 향이 어떤지도 모릅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인기 있는 향수를 하나 골라 보냈으니까요.
당신에겐 정성이란 것은 선물을 싼 포장지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포장지는 쓰레기통으로 가고, 선물만 남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전엔 목도리 같은 것을 떠서 선물하곤 했었죠.
그 목도리를 선물하기까지 어떤 선물을 할지. 어떤 색으로 할지, 어떤 모양으로 할지를 고민하다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떠서 선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선물을 받은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쇼핑 갔다 생일이란 것을 문득 알고 산 가격표가 달린 선물을 좋아했습니다. 정성과 사랑은 가격표가 없어서 값진 것이 아니라 가격표가 없어서 홀대받기 일쑤지요.
어차피 받지 못할 생일선물을 할 필요가 있냐고 누군가 물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선물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보낸 선물메시지를 보고 당신도 나의 기분을 느꼈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못 느꼈다면 할 수 없고요.
정성이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생일이니까 하나 던져준 거 같은 그런 선물은 선물이 아닙니다. 최소한 나 에게는요..
오늘의 선물:향수
항상 부담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당신에게 머무르지 않고 날아가버리는 향수를..
정성 들이지 않으면 기대하지도 않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도 않고, 실망하지 않으면 포기할 것도 없고, 포기할 것도 없으면 헤어질 것도 없었을 것을..
사랑하면 정성 들이고 싶고,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를 저버리면 실망하게 되고, 실망은 포기를 부르고, 포기는 이별을 부른다.
기대란 것이 나를 더 사랑해 주고, 나를 더 바라봐 주길 바란 것인데 그것이 욕심은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