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하일기 20 도강록 정축일01]

연암의 다정한 성품과 상세한 묘사, 그리고 실용적 태도

by 백승호

7월 1일 정축일

새벽에 큰비가 내려서 하루 더 머물렀다.


1. 정진사, 주주부, 변 군, 박래원, 그리고 상방의 양식을 담당하는 건량판사乾粮判事 주부 조학동趙學東 등과 함께 지패紙牌로 심심풀이 삼아 술값 내기를 했다. 그들은 나보고 패를 다루는 솜씨가 서툴다고 자리에서 쫓아내면서, 가만히 앉아서 술이나 마시라고 한다. 속담에서 이른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라는 것이다. 슬며시 화가 나기는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옆에 앉아 투전판 구경도 하고 술도 남보다 먼저 따라 마시니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與鄭進士, 周主簿, 卞君, 來源, 趙主簿, 學東, 上房乾粮判事, 賭紙牌以遣閒, 且博飮資也。 諸君以余手劣, 黜之座, 但囑安坐飮酒, 諺所謂, 光但喫餠也。 尤爲忿恨, 亦復柰何。 坐觀成敗, 酒則先酌也, 非惡事。


2. 옆방에서 가끔 부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늘고 부드럽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뭔가를 하소연하는 듯했다. 마치 제비와 피꼬리가 노래하는 소리 같다. 아마 주인집 아주머니인 것 같았는데, 분명 절세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담뱃대에 불을 붙이러 간다고 핑계를 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쉰도 넘어 보이는 부인 한 명이 문 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생김새는 볼썽사납고 추하기도 했다.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내가 대답했다.

"주인 덕분에 홍복洪福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일부러 오랫동안 담뱃재를 털어내면서 차림새를 살펴보았다. 쪽 찐 머리에는 꽃을 가득 꽂고, 금팔찌에 옥귀걸이에 붉은 분을 살짝 발랐다. 몸에는 검은색 긴 옷을 걸치고, 은 단추를 촘촘히 달아서 여몄다. 발에는 풀, 꽃, 벌, 나비가 수놓은 신발을 신고 있다. 전족을 하지 않았고, 궁혜弓鞋를 신지 않을 걸로 봐서 아마 만주족 여자인 듯하다.

時聞間壁婦人語, 聲嫩囀嬌愬, 燕燕鶯鶯, 意謂主家婆娘, 必是絶代佳人。 及爲歷翫堂室, 一婦人五旬以上年紀, 當戶據牀而坐, 貌極悍醜。 道了「叔叔千福。」 余答道 「托主人洪福。」 余故遲爲, 玩其服飾制度。 滿髻揷花, 金釧寶璫, 略施朱粉, 身着一領黑色長衣, 遍鎖銀紐, 足下穿一對靴子, 繡得草花蜂蝶。 葢滿女不纏脚, 不着弓鞋。


3. 주렴 안쪽에서 처녀가 나온다. 스무 살가량 되어 보이는데,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갈라서 위로 틀어 올려 묶은 걸로 보아 처녀임이 분명하다. 생김새는 씩씩하고 사납지만 살결은 희고 깨끗하다. 쇠 양푼이에다가 수수밥을 한 그릇 수북하게 퍼 담았다. 그리고 양푼에 물을 부어서 서쪽 담벼락 아래의 접이 의자인 교의交椅에 앉아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뿌리가 몇 자나 되는 파를 잎사귀째로 장에 찍어 밥 한 술, 반찬 한 입 번갈아 가며 먹는다. 목에는 달걀만 한 혹이 달려 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도 얼굴에는 조금도 수줍어하는 기색이 없다. 아마 해마다 조선 사람을 봐와서 익숙해진 탓이리라.

簾中轉出一個處女。 年貌似是廿歲以上。 處女髻髮中分綰上, 以此爲辨, 貌亦傑悍, 而肌肉白淨。 把鐵鏇子, 傾綠色瓦盆。 滿勺了薥黍飯, 盛得一椀, 和鏇瀝水。 坐西壁下交椅, 以箸吸飯, 更拿數尺葱根, 連葉蘸醬, 一飯一佐。 項附鷄子大癭瘤, 噉飯喫茶, 略無羞容。 葢歲閱東人, 尋常親熟故也。


4. 정원은 넓이가 방 수백 칸이나 되었는데, 오랜 장맛비에 진창이다. 시냇가에서 가져온 조약돌은 강물에 씻겨 닳아져 있었는데, 마치 바둑돌이나 큰 방울새의 알처럼 생겼다. 애초에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모양과 색깔이 비슷한 것을 골라서 문간에 봉황새 모양으로 깔아 두고 문 앞이 진창이 되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허투루 버리는 물건이 없다는 것을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庭廣數百間。 久雨泥淖, 河邊水磨小石如碁子大黃雀卵者, 本無用之物, 而揀其形色相類者, 當門處錯成九苞飛鳳, 以禦泥淖。 其無棄物, 推此可知。


5. 닭은 꽁지 깃과 깃털, 양 날개 사이의 솜털은 족집게로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뽑아서, 이따금 고깃덩이만 남은 닭이 뒤뚱거리며 걸어 다녔다. 그 꼴이 너무 더럽고 추악해서 차마 똑바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鷄皆毛羽脫落. 一如抽鑷, 往往肉鷄蹁跚, 醜惡不忍見。


이 부분은 <열하기기> 행계잡록에는 없고 이본인 <일재본>과 <법고창신재장본>에는 있다.

(닭의 깃털을 모두 뽑아 버리는 이유는 닭의 성장을 돕고, 또 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여름이 되면 닭에는 검은 이가 생겨서 꼬리와 날개에 붙는다. 그러면 반드시 콧병이 생겨서 입에서는 누른 물을 토하고 목에서는 가래 끊는 소리가 난다. 이런 증상을 계역雞疫이라 한다. 그래서 이런 증세를 막기 위해 미리 깃털을 뽑아서 깨끗한 기운이 통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 꼴이 너무 더럽고 추악해서 차마 똑바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해설]

1.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선 시대의 고전이다. 그는 청나라 사행 길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 문명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열하일기』는 상황이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적재적소에 속담이나 해학적인 요소를 넣어 긴장된 분위기를 웃음으로 풀어준다. 또한 실용적 관점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나 생활양식을 바라보는 태도를 견지한다.


2. 인간사 속 유머와 자기 풍자

인간사 속 유머와 자기 풍자를 하는 여유는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암은 동행들과 지패로 심심풀이 술값 내기를 한다. 그러나 패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결국 판에서 쫓겨나고, 대신 술이나 마시라는 말을 듣는다. 이 상황에서 연암은 순간 불쾌함을 느끼지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여유로운 마음과 건강한 자아를 가진 다정다감한 사람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남보다 먼저 술을 따라 마실 수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쓴다. 즉, 자신이 배제된 경험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즐길 거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연암의 여유와 건강한 자아를 잘 보여주며 연암 문학 전반에 흐르는 해학 정신을 드러낸다. 인간사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조차 풍자로 승화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열하일기』를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요소라 할 수 있다.


3. 타인의 삶을 향한 깊은 공감

연암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에게 향한다. 그는 청나라에서 만난 상인, 농민, 아이들, 심지어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세밀히 관찰했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존 방식을 기록하며, 그것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공감의 언어’로 다정다감하게 풀어낸다. 이는 당시 지배층 지식인들이 쉽게 가질 수 없었던 태도였다. 인간의 우열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존엄을 지닌 존재로 바라본 그의 시각은 오늘날에도 울림을 준다.


4. 사회 비판과 문명 비판의 통찰

연암의 글은 시대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움도 지니고 있다. 그는 조선 사회의 낡은 제도와 부패한 관료들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청나라의 발달한 상업과 기술을 보며, 조선이 왜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는지 묻는다. 농업만을 중시하고 상업을 천시하는 조선의 사고방식은 민생을 피폐하게 할 뿐이라는 비판을 곳곳에 남겼다. 이는 단순한 외국 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조선 사회가 지닌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결과였다.


5. 세계 인식의 확장과 보편성

연암은 조선의 울타리를 넘어선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는 청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그 속에서 배우고 수용할 점을 찾았다. 유럽의 과학기술과 사상도 접하며, 인류 보편의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이는 조선 지식인들에게 ‘세계’라는 차원을 새롭게 열어 주었고, 동시에 문명 간 교류와 상호 이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열하일기』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탐구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 개인의 여행기를 넘어선 인류 보편의 기록이다. 그의 유머와 자기 풍자는 인간사에서 불편한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보여주며, 타인의 삶을 향한 공감은 인간 이해의 본질을 일깨워 준다. 또한 사회 비판과 문명 비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세계 인식의 확장은 폐쇄성을 넘어 열린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결국 『열하일기』는 시대를 초월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연암이 남긴 해학과 사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생생한 울림을 전한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탐구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는 지혜를 얻는 일이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9화[열하일기 19 도강록 을해일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