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연재18》
사람은 손이 두 개입니다. 인생길 걷는 동안에 다들 이미 손에 큰 놈이라 생각되는 개구리를 한 손에 한 마리씩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더 큰 개구리가 눈에 띕니다. 어떻게 해야 그 개구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주관식 대답은 너무 어려우니 객관식으로 질문을 드릴게요. 1번, 손에 개구리를 쥔 채로 어떻게든 잡아본다. 2번, 작아 보이는 걸 놓고 빈손으로 큰 개구리를 잡는다. 당신은 어떤 답을 선택하실 건가요?
맞습니다. 저도 2번을 선택합니다. 대부분 2번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잡은 걸 놓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인간은 가진 걸 빼앗기는 것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웬만한 자기확신이나 믿음이 아니고서는 이미 잡은 걸 놓고 새로운 걸 잡는 것에 베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한테는 달항아리가 보화 감추인 밭이자, 값진 진주였습니다. 처음 볼 때부터 이것저것 따지고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전 재산을 팔아 샀습니다. 양손에 잡은 개구리가 크니 작니 계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손에 개구리를 모두 내던지고 달항아리를 잡았습니다.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고 벌거숭이로 거리로 달려 나간 아르키메데스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적었던 시가 있습니다.
《진짜 보물》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한 농부는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다
동네 구석탱이 음지의 돌짝밭을
아내는 농부에게 '참 지맘대로 산다'고
친구들은 '나 같으면 그런 밭 안 산다'고
참 바보라고 비아냥거리며 놀렸다
누가 뭐라든 농부는 밭에 묻힌
보물 생각만 하면 행복했다
어느 날 농부는 아내와 친구들을 밭으로
데리고 가 묻힌 보물을 보여 주었다
아내는 농부에게 '설령 그것이 보물이라 해도
어떻게 파낼 거냐, 또 많은 돈이 들겠다'며
친구들은 '그게 보물이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부정적인 말로 비웃으며 마음을 할퀴었다
농부는 그제서야 알았다
진짜 보물은 전 재산을 팔아 산
보물 묻힌 밭이 아니라
보물 묻힌 밭을 알아 본
제 눈이었다는 것을
30년 군 생활을 중령으로 마치고 공군을 떠난 지 1년 반이 됐습니다. 한때는 대령 장군을 꿈꾸던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달항아리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3년 반 조사를 받았습니다. 제대 후에도 1년을 조사받은 것입니다.
약 5개월 전 방첩부대 수사관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를 무혐의로 종결했다는 전화를 받고 많이 놀랐습니다. 군인에게 국가보안법 위한 혐의는 간첩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로부터 3일 뒤에 무혐의 결과서를 등기로 받았습니다. 30년 국가를 위해 충성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몸담았던 조직에서 나를 의심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다시 3일 뒤에 생각을 바꿨습니다. 역지사지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인 월급으로 평생을 모아도 달항아리 하나를 살 수 없는데, 국보보다 더 좋은 달항아리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면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방첩부대에서 보면 내가 고정간첩이거나 북에서 공작금을 줘서 뭔가 엄청난 일을 획책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다행히 해외여행을 한 번 나가본 적도 없고, 통장에 목돈이 들어 있은 적도 없었으니 조사하던 수사관들도 많이 당황했겠지요. 혹시나 하고 그걸 3년 반을 제대하고도 일년이나 숨어서 지켜봤을 것입니다. 30년 군 생활을 탈탈 털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문제가 없이 마무리됐다는 것은 내가 정직하게 잘 살아왔다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달항아리는 장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법으로 보자면 국내 골동품업자가 중국 상인에게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그 달항아리를 매입했습니다. 그 국내업자에게 달항아리를 나는 구매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묘에서 돈이 목적인 고객과 사장으로 만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호형호제가 되었습니다. 동생이 달항아리에 미쳐 있으니 형이라는 사람이 중국으로 나가서 달항아리를 구해와서 사온 가격에 외상으로 주었습니다. 문화재 환수라는 동지적 사명감으로 달항아리를 환수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람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나의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의 일은 이 형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세상을 얻는다."는 이 말을 달항아리 환수를 통해 절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게꾼이고, 물건의 가치는 동생이 판단해."
아직도 그 달항아리 값을 다 지불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쁜 동생입니다. 원가 외상으로 준 것을 아직도 못갚고 있으니 말입니다. 거기다가 동생 때문에 형은 평생 받지 않아도 될 방첩부대의 내사를 1년간 받았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형과 동생의 관계는 더 돈독해 졌습니다. 환수해 온 달항아리도 국가에서 KS 인증을 붙여 주었으니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로 느껴집니다.
한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참 많습니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천지빛깔입니다. 그럴 때 당신은 그 억울함을 어떻게 푸십니까?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친구에게 하소연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하소연이 비수로 날아온 적은 없으십니까?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은 더 큰 상처가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충고를 남겼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 동안 나에게 힘이 되었던 달항아리가 바로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입니다. 죽절입술 귤피문둥근달항아리라 이름붙인 17세기 달항아리입니다.
오랜 세월 천대받았던 달항아리입니다. 흙이 좋은 것도 아니고, 유약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토기 비스무레하게 생겨서 그 누구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누가 알아줬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도 이 달항아리를 봤을 때 첫 느낌은 덜 읽은 귤을 보는 것같았습니다.
온몸에 귤껍질의 잔구멍들이 쫙 깔려 있습니다. 모래가 많이 섞인 태토로 구워졌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유약도 얇게 입혀져서 내용물이 스며들게 만들어졌습니다. 태토도 유약도 안좋고 기술력도 많이 떨어진 달항아리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대체불가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시기가 17세기 중반입니다. 17세기 달항아리는 세상에 단 3점있습니다. 대나무뿌리를 닮았다 하여 죽절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매우 희귀한 입술입니다. 둥근달항아리로 좌우를 비교해 보면 배의 볼록함이 확연히 다릅니다. 한마디로 매력이 철철 넘치고 뚝뚝 꿀 떨어지는 달항아리입니다. 하얀 진주가 대세인 땅에 흑진주가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신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사람에게 위로받지 못하는 그 마음을 사질토에 잔구멍투성이 달항아리가 다 받아 줍니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 존재 자체로서 가치있는 나를 대면하게 해줍니다. 흑수저로 오래 살아와서 인지 흩어진 마음의 질고를 스폰지같이 빨아들입니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나는 사도 바울을 좋아합니다. “나의 나 됨은 주의 은혜”라는 그 고백이 매일 심금을 울립니다. 가을에 꽃 피우는 가을꽃에게 봄부터 “너는 왜 다른 봄꽃같이 꽃을 피우지 않느냐?”며 닦달하는 세상입니다.
각자 꽃 피우는 시기가 다릅니다. 자기와 다른 것에 참지 못하고 안달난 이 세상에 더 이상 상처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무슨 꽃인지, 언제 꽃 피우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몰라줬던 17세기 달항아리가 어느 날 내 눈에 띈 것처럼 나를 그렇게 인정해 줄 귀인을 만날 것입니다. 내가 이 달항아리에 그랬듯 나를 한결같이 귀하게 인정해 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오늘도 날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이끄시는 그 분을 믿기에 “나의 나 됨은 주의 은혜”라는 고백을 되뇌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달항아리는 나의 천국입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서 보화 묻힌 밭과 값진 진주를 샀습니다. 당신도 당신만의 천국을 발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손에 잡은 개구리를 내던지고 새로 발견한 큰 개구리를 붙잡기 바랍니다.
가을꽃인 나는 봄꽃이라 우기는 세상을 따르지 않습니다. 언젠가 때가 차면 늦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 오늘 소개한 달항아리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