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원색적인 순간을 담다
나의 드로잉에는
인물에 가까운 형태의 선인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외 배경에도 선인장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자 나타났다.
이전 <조금 축축한 마을>에서 언급했던 의미와 동일하다.
처음, 나는 드로잉 경험을 통해 걱정과 근심(물)을 품고 가시를 통해 자신을 방어하며 살아가는 우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사막 위의 선인장 처럼
펜데믹 이후 대화가 단절된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만든 선인장은 감정에 진솔하고 싶어 했다.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 말하고 싶어 했다.
작년 11월
제물포의 한 카페를 놀러 갔다가 내부에 인테리어처럼 설치된 굉장히 많은 선인장을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가시가 돋고 기다란 형태뿐만 아니라
짧고 동그라기도 했고, 꽃이 피기도 했고, 아주 작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했다.
분위기가 꽤 신비롭기도 했다.
사람 얼굴 중에 같은 사람 거의 없듯이
선인장도 그랬다.
이는 저마다 다른 얼굴을,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가시가 돋아난 형태 또한 다르고 다양했다.
날카롭게 날 서있는 모양도 있고
털처럼 복스럽기도 하고
매력적인 생김새는 계속 관찰하게끔 이끌었나 보다.
그러던 중 가장 내 눈을 오래 머물게 한 녀석은
꽃을 활짝 핀 작은 선인장이었다.
선인장도 꽃이 있었다.
외벽 구석에서 어떻게 피게 되었을까
선인장에서 어찌 이렇게 이쁜 꽃이 필까
여러 생각이 날 멈춰 세웠다.
나도 나의 꽃을 몰랐을 수도 있다.
선인장의 꽃의 꽃말은 "불타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따라서 나는 수분이 최소화되는 사막의 모습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 비유하고자 했다.
수심이라는 단어에 물의 속성을 느껴
근심과 연결했듯이
저마다 감추고 살고 있는 만큼 언제 감정이 잔뜩 메말랐는지도 모르는 상태 말이다.
물의 확보를 위한 사막 식물의 피나는 자기 변신은 지금의 사막 식물인 선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선인장은 수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잎의 광합성 기능을 줄기로 옮기고
잎을 가시로 만들어 방어 무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줄기는 저수 조직으로 채워 물을 저장하도록 하였다.
상처받기 익숙한 사람은 없지만
대화도 소통도 점점 더 단절되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각자 상처받기 두려워 날카롭게 변해가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건조한 모래땅에서 사는 식물들은 서로 간에 간격을 유지하고 있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물 때문이지만 식물이 유지하고 있는 간격은 곧 ‘생명의 한계선’이라고 했다.
이 생명 한계선을 넘어 뿌리를 뻗게 되면 그 옆의 식물과 싸워야 하고 결국은 둘 다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매일 모두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개개인이 서로 다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에게 물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뿌리를 생명 한계선 밖으로 뻗어서는 안 된다. 이런 작은 규칙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유사해 보였고 더더욱 흥미로웠다.
가시처럼 보이지만
털이 돋아난 형태의 선인장도 있었다.
이를 모상체라고 했고 최근 제작하고 있는 선인장 조형물은 위 형태에 가깝다.
표피는 광선의 반사량을 높여 몸의 온도를 낮추는 기능이 있었다.
수분이 부족한 건조한 곳에서는 수분 손실을 방지하고, 비가 내릴 때는 짧은 시간에 물의 흡수를 도울 뿐만 아니라 초식동물의 공격을 막는 데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었다.
가시는 공격이 아닌 방어 수단이듯이
이를 상징하는 선인장의 가시 표피 모양 또한 다양했다.
비를 기다릴 수도 있고
비를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건조한 사회에서 혹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과 유사했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는 식물도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