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삶원색 1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야 Aug 12. 2022

미운 아기 오리 일기

나의 가장 원색적인 순간을 담다




인연인데 스쳐가는 것이 더 아플까

악연인데 끈질긴 것이 더 아플까


검은 머리가 빠지는 것과 흰머리가 남아있는 것처럼

연은  질겼고 간결했다.


어느 날 미운 사람이 귀여웠다.




짧은 영상 하나가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의 영상 한 부분,

한 대사였다.


이옥섭 감독이 미국 여행을 하던 중 탔던

2층 버스에서 어떤 여성이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여성 때문에 나는 강한 냄새가 불편했으나

만약 그 여성이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바라보니까 싫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다르게 말하면 연민을 갖고

서로 생각해보면 편할 것 같다는 의미였다.


내게도 미운 사람이 참 많았다.

그만큼 적도 많았다.

어쩌면 나 또한 어떤 이에겐 미움받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런 나는 습관적으로 타인을 만날 때

나의 적을 소개한 적도 있었다.

그런 주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 적을 많이 둔

"나"의 문제를 스스로 언급한 셈이었다.


 "밉다"라는 감정은 애증과 가까웠다.

그만큼 많이 좋아했기에 그 마음은 곧 증오로 번진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미운 사람을 제일 잘 아는 사람도 나였고, 싫은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까지도 다 알 정도였다.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려라

이 말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나의 글 속 주인공이나 소재 혹은 인물로 작업에 등장했을 때 매력적으로 나타날 인물이었다.


그 뒤로 대상의 행동이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사랑까진 힘들더라도 동정한다면 쉬울 수도 있다.

작은 거 하나씩 거슬리고 신경 쓰다 보면

결국 누구보다 날 서게 되는 사람은 나였다.

그들의 행동은 결국 결핍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화 속 미운 오리는 자신이 오리인 줄 알고 지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김새와 목소리 행동으로 오리의 무리에서 끊임없이 미움을 받았다.


오리 또한 그들이 미웠을 것 같다.

결국 아름다운 백조가 되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들을 다시 보게 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내가 오리가 아닌 백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 여유를 갖고 싶었다.

나의 영역을 적절히 세우고 지킬 줄 아는 힘을 가지게 된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진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싫으면 싫은 채로 내버려두던 내가

비로소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 또한 모두에게 대입되긴 어려웠다.

타인은 마치 거울 같았다.


생각보다 상대방이 이기적이고 비상식적일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악인이고 가해자인 줄 알았던 상대는 겪어보니 결핍이 있는 환경적인 피해자 이기도 했다.

나 또한 사소한 이유와 단순한 느낌으로

상대를 싫어하는 합당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멀리서 지켜볼 줄도 알아야 했다.

나를 너무 상황에 집어넣지도, 상대를 끼워 넣지도 말고 한 박자 다른 시선에서 바라봐야 했다.


억지스러운 상대에게 지칠 때

이해하는 일이 억울하기도 했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본다면

결국 세상에 미운 오리는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