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원색적인 순간을 담다
살다 보면 유독 그런 날이 있다.
뭐든 안되고, 안 풀리고, 처음부터 잔뜩 뒤엉킨 것 같은 엉망진창의 하루 말이다.
시계가 고장 나서 하필 알람이 늦게 울린 출근길
지하철 타러 가는 입구를 막아 놓은 바람에 뒤늦게 타게 되었고 내려서 배차간격이 꼬여 환승 버스를 놓쳤다. 급히 출근했으나 내릴 때 버스에서 넘어지거나 가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는 등 엉망이었다.
그래도 커피 한잔을 선물 받았다. 그럼에도 커피보다 아침에 일어난 우당 탕탕이 내 머릿속에 하루 종일 맴돌았고 퇴근길도 염려될 정도였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머피의 법칙"이라고도 했다. 최근, 관련 기사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제목이 제법 흥미로웠다. 잼 바른 빵은 왜 항상 잼 바른 쪽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라는 제목이었다.
그 글은 운이 아닌 과학적, 수학적 원리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임을 계산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은 개인차라는 말했었다.
결국 언젠가는 나 이외 다른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단어에 반대하는 "줄리의 법칙"또한 있었다. 많이 알려진 머피에 비해 줄리의 법칙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 또한 많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다소 부정적인 편이다.
부정을 받아들이는 기준 또한 제각각이다.
어딘가 모르게 날 잡아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기억은 강했다.
되게 재미난 이미지를 본 적 있다.
나는 무교였기에
성경에 관한 내용은 전혀 무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 "세라프"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천사라는 숭고하고 고귀한 모습과 달랐다.
거대한 눈과 털 등 굉장히 이질적인 형태였다.
악마는 인간을 유혹하기에 오히려 익숙하고 아름다웠다. 이후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내 삶에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무언의 경고 같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 대부분은 내 후회와 연결된 깨달음이었다. 이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런 생각의 씨앗이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형태였다.
얼마 전,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하늘을 무너뜨릴 것 같은 천둥 그리고 번개가 한참이었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지개가 예쁘게 펼쳐졌다.
아까의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미소처럼 심심한 위로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기억이란 그랬다.
어쩌면 대체 불가다.
부정적인 면모를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내 행복의 순간이 더없이 작아지고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 잠깐의 무지개처럼
비가 오고 나면 분명 해가 맑아지는 순간은 있었지만 우리가 몰랐을 수도 있다.
며칠 전에 쌍 무지개를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기차 안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 미쳐 보지 못했다. 피곤해서 잠들었기에 보지 못했다.
그래도 너라는 내 다른 행복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뭐든
무지 개 같은 상황일지 모르지만
결국 무지개 같은 상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