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포르투갈의 H/L
포르투갈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곳,
리스본 벨렝지구, 그중에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할 때 자주 보게 되는 사진은
포르투의 동루이스 다리나, 포르투의 야경,
주황색 지붕이 줄지어 선 전망, 벨렝탑, 에그타르트, 호카곶 정도다.
(실제로 구글에 '포르투갈 여행'을 검색해 보면
제로니무스 수도원 사진은 좀처럼 뜨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관광지였다.
말하자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코스.
그래서, 긴 줄을 보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줄이 길다는 후기를 보고 오픈런을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줄이 더 길었다.
12월인데도 햇살은 뜨겁고, 무엇보다 유럽 특유의 그 냄새.
파리(Paris) 보다 더 진한, 코를 찌르는 지린내가 진동했다.
코로 숨 쉬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
임산부인 아내와 이 줄을 30분 이상 서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다른 데 보고 돌아와서 줄이 줄면 들어가고,
그대로면 포기하자고 마음먹고 뒤돌아서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분이 다가왔다.
“저희가 표를 더 사버렸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싸게 드릴게요.”
싸게는 무슨, 웃돈을 얹어서라도 당장 사야지요.
그렇게 포르투갈에서 만난 두 번째 천사를 만났다.
(첫 번째는 지하철을 잘못 탄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 포르투갈 아주머니.)
두 분 덕분에 우린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줄도 없이,
힘도 안 들이고, 쏙 입장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보실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그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N의 상상력으로 추측해 보건대,
포르투갈 관광청은 다양한 인종의 ‘잠입 요원’을 고용한다.
그리고 줄을 보며 포기하려는 관광객에게
표를 은밀히 건넨다... 는 시나리오.)
이유야 어찌 됐든, 포르투갈 여행의 신이 도왔는지
우린 평생 놓쳤을 수도 있는 제로니무스를 마주하게 되었다.
수도원 내부의 계단을 올라, 정원을 내려다보는 순간
게임 속 CG 같은, 윈도우 바탕화면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색감, 그 조화. 청량하고 고요했다.
이 정도 풍경이면 수도원에 몇 년 갇혀 살아도, 할만하겠다.
이 날따라 유난히 푸르렀던 하늘아래
햇살에 금빛으로 빛나던 건물, 그리고 초록 잔디까지.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어떤 명화보다도 더 완벽한 조화였다.
지금은 수도원 기능은 없고, 관광지이자 박물관으로만 운영 중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조각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벽과 기둥의 문양과 조각만 봐도 하루는 금방 갈 것 같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의 정수라고 여겨진다.
마누엘 양식은 포르투갈판 고딕 양식으로,
돛줄, 닻, 산호, 십자가, 구슬 같은 바다와 항해, 식민지 개척의 상징을
잔뜩 새겨 넣은 스타일이다.
왕실의 부, 제국의 힘을 대놓고 자랑하는 석조 자수정 같은 건축이다.
제로니무스 대항해시대의 상징이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한 이후,
마누엘 1세는 그 업적을 기려 이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인도 무역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 그걸 건축물에 퍼부었다.
이게 사치가 아니면 뭐가 사치인가.
포르투갈이 잘 나가봤자 얼마나 잘 나갔겠어?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 수도원을 꼭 보길 바란다. 사치의 끝판왕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로 옆에는 파스텔드 벨렝
에그타르트의 원조 집이 있다.
여기 타르트는 내가 먹어본 에그타르트를 넘어,
내가 먹어본 디저트 중에서 가장 맛있다.
포르투갈 근처만 가더라도 들리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
오바가 아니라, 진짜 진짜 맛있다.
그동안 에그타르트의 개념을 바꿔버린 맛이다.
여행의 신이나 포르투갈의 천사를 만나지 못해,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들어가지 못했다면,
여기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위안받길 바란다.
이곳은 유명한것 대비 기다리는 시간은 적다.
날이 좋으면 포장해서 밖에서 먹어도 된다.
글을 쓰는 지금, 배부른 상태이지만 10개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에그타르트를 먹고 힘을 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본다.
바로 그 유명한 벨렝탑!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후 벨렝탑 관련 내용은 다음화에서 계속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