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만나다

by 강신명

고적함이 별 헤는 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로 했습니다

천 개의 문을 지나고

천 개의 언덕을 지나고

천 개의 다리를 건넜습니다·

문을 지나다 고양이가 따라왔고

언덕을 지나다 토끼가 따라왔고

다리를 건너다 거북이가 뒤를 따랐습니다

고양이의 뒤는 토끼가 따라왔고

토끼의 뒤는 거북이가 따라왔고

거북이의 뒤는 파도가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무작정 누웠습니다

밤하늘이 물결치는 별빛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심장이 물장구를 치자

은색 꽃멸치가 구름처럼 모여들더니

달무리 위로 올려주었습니다

내려다본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뒤척이던 잠자리가 보이고

미처 끄지 못한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기다리는 젖은 얼굴도 보였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다급해졌습니다

그때 시동 켠 별 하나가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눈을 뜨니 고양이가 여전히 보였습니다

천상의 꽃이 피면 천 개의 문을 지나

다시 만나자며 사라져 갔습니다

비로소 어둠 이겨낼 간극에

내일을 맡긴 꿈이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