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서류 더미에 눌려
삐걱대는 서랍을 힘들게 열었다
박힌 활자를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강물
거센 바람이 불더니 눈이 오고
빗물에 젖어 찢겨 나간다
쌓이는 것들은 다 풍경을 만든다
수첩 속에 갇혀 있던 흔적은
차가운 물살이 되어 밀려오고
시공을 오르내리며 걷는 길마다
발자국이 보인다
선명할수록 버리기 힘든 기억
다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먼지 같은 일상이 빼곡하게 맺혀 있다
단추를 채우면 풀어야 하듯이
잃은 것과 정비례 하는 앞날이었다
어차피 다 싣고 갈 수는 없는 배
무엇을 위해, 어떻게 남겨 둘 것인가
포기하기 위한 선택이
허공을 유영하다 내려앉는다
한참을 서성이며
고여 있는 미련을 다 쏟아 내자
먹이를 기다리던 서랍이
손을 길게 뻗어 햇살을 다시 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