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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명 Nov 16. 2024

덕수궁 돌담길에 비가 내리면


덕수궁 돌담길엔 

흔들리는 것들이 모두 모인다     


거리를 당차게 구르던 웃음도  

가로등 흐린 불빛에 얼굴 가리던 

한 송이 장미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찾느라

축축한 하늘 더듬고 있다     


은밀한 숨결마다 속살 감춘 채 

휘파람 장단 맞추던 하이힐 소리     


너의 시간을 지나 나의 시간이 된

오늘이 바람개비를 돌린다     


스며드는 한기에 

커다란 창 앞, 젖은 낙엽이 빼곡히 붙어 있는 

낯익은 카페에 앉는다

가장 빛바랜 잎을 떼어 찻잔에 띄운다      


사랑을 목숨처럼 이어가던 그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기 뒤로 측은히 

나를 쳐다보는 올렌카*     


먼 길 떠나는 듯 묵직한 가방이

낙엽 소리를 울리며 지나간다     


온종일 거센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비를 습관처럼 자꾸 털어내고     

넘지 못한 길은 빗속에 흔들리다 또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 안톤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 여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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