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2
등산동아리 가입 후 첫 등산을 함께 하게 된 둘의 주말아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지한의 밝은 표정에서 시작된다. 약속한 시간, 지유가 손을 흔들며 그에게로 다가온다.
"일찍 왔나 봐~많이 기다린 거 아냐?"
"방금 왔어요. 오늘 날씨가 등산하기 딱이죠 선배~"
"너 날씨요정이구나? 울 동아리 등산 갈 때마다 날씨가 안 도와주는데 특별한 날이다 너!"
지유는 지한의 손을 잡고 즐거운 표정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며 동아리회원들이 모이기로 한 수락산 입구에 시간 맞춰 도착하며 그때쯤 잡고 있던 둘의 손은 놓아진다. 10분남짓 지났을 무렵,
"선배 우리 언제 출발해요?"
"아직 도착 못한 팀원들이 있어서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지한의 표정이 살짝 굳으며
"혼자 가는 등산도 아니고 다 같이 이동하는데 출발시간을 지키는 건 예의죠. 늦으면 선발로 먼저 출발하고 도착하는 데로 올라오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나름 사정이 있겠지, 30분까지만 기다려보자. 매번 시간은 정확한 애들인데 웬일로 늦지? 난 오히려 걱정된다~문자 해봐야겠어"
지한은 시간을 보면서 기다려보기로 한다.
30분이 다되어서야 지유와 동기인 팀원들이 숨차하며 도착한다.
"아~미안. 오다가 지하철을 잘못 탔지 뭐야. 서울토박이도 이런 실수를 한다."
"이그 그러게. 내려올 때 뭐 먹지~하고 멍 때렸구나? 우리 늦었어. 얼른 출발하자."
10명 남짓한 팀원들의 등산이 시작되었다.
등산 내내 한참을 말이 없던 지한이 신경 쓰여 지유가 묻는다.
"수락산 어때? 입구는 원만한데 올라 갈수록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들이 많아서 등산로가 좁아져. 게다가 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오랜만에 산 오르니까 힘들지?"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저보다 더 뒤처져있는 팀원도 있는 거 보니 오히려 힘이 나는 듯요?"
숨이 살짝 가빠지는 산 중턱까지 올랐을 때였다.
쨍했던 푸른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비구름으로 하늘이 덮이더니 살짝 불던 바람의 강도가 점차 세지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가 금방 쏟아질 것 같아. 오늘 날씨 좋을 거라 했는데... 역시 우리는 비를 몰고 다니는 동아리답다. 더 올라가면 바람도 거세고 비 오면 미끄러우니까 위험해. 이쯤에서 하산하자"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던 지한은 옆에 있는 지유에게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출발시간을 정했으면 늦지 않게 지켜야지.
그랬으면 올라갔다가 내려올 시간이잖아.
그리고 등산을 계획했으면 그날 가능한 상황까지 다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가다가 애매하게 내려오는 상황을 만든 건 출발부터 잘못된 거지."
지유는 지한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네가 출발부터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이해하는데
계획이라는 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 아니야?
날씨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계획해서 날을 잡았지만 급작스럽게 이렇게 된 거고. 그것까지 모조리 아침출발이 늦었다 단정 짓는 거야?"
지한의 말하는 태도에 화가 난 지유는 하산하던 걸음을 멈춰 서서 걸어가는 그의 뒤에서 언성을 높인다. 지나쳐가던 지한이 내려가던 방향을 바꾸고 그녀를 향해 역으로 올라오며,
"선배, 제 말이 틀렸어요? 그럼 선배 말 데로 다는 억지라 하더라도 아침에 출발시간 안 지킨 건 맞잖아요."
"잠깐만. 목소리 좀 낮춰서 말해. 다른 팀원들 들어야 좋을 것 없으니까. 게다가 다 선배들이야. 너도 들었다시피 사정이 있었잖아. 일부러 지하철 잘못 타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약속 안 지키는데 선후배가 따로 있어요? 선배는 늦어도 되고 후배는 욕먹어도 되고요? 처음 오는 길이면 시간보다 더 일찍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헤맬 거 생각 안 해요?"
계속되는 지한이와 실랑이에 지쳐가던 지유를
동기생이 빨리 가자며 서둘러 하산을 재촉한다.
내려가는 내내 그녀의 상식적인 인간관계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지한의 생각과 말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음에 표정이 굳은 채로 입을 닫는다.
산을 급히 내려온 팀원들은 배고픔과 비를 피하기 위해 파전골목으로 들어가 붐비지 않는 식당을 골라 들어간다.
"파전엔 막걸리지!"라고 말하는 동아리 회장의 외침에 모두들 환호함과 동시에 첫 잔에 막걸리를 가득 채운다.
"비를 부르는 동아리를 위하여"라는 회장의 선창과 함께 다 같이 건배로 식도를 막걸리로 적신다.
같은 테이블에 마주하고 앉은 그 둘이지만 등산하면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잠시 내려놓고
팀원들과 함께 섞여가지만 불안해 보이는 지한의 눈빛은 내내 지유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