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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Oct 27. 2024

꿈의 의미

중학생 시절, 어머니가 내 꿈에 대해 물었을 때, 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단 한순간도 그 꿈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근데 대체 왜 지금 난 공업수학 강의를 들으며 꿈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현실은 꿈과는 다르다. 어머니는 공부방을, 아버지는 공무원인 집에서 언제쯤 돈을 벌 지도 알 수 없는 글을 쓴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늘 글을 쓰고 싶었던 아이는 글 대신 숫자를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꿈은 현실이 아닌 이상으로 남았다.


이과를 선택하고 공대에 갔다. 군대를 갔다 와서 이제는 글을 쓰자 마음먹고서도 대학 공부는 공부만을 하기에도 시간이 벅찼다.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수학 공식을 억지로 외우며 어디에 쓰는 지도 알 수 없는 개념들을 학습하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선택한 과에서 했던 공부에 노력이란 단어를 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언제쯤 난 글을 써서 성공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취업을 해야 한단 생각에 펜을 잡았다. 꿈 없는 인생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난 결국 뭘 하고 있는 걸까. 난 도대체 왜.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내가 동경하던 많은 '주인공'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했단 말을 한다. 난 결국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저 사람들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고 꿈을 위한 선택을 했을까. 요즘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결국 이것조차 변명의 구실로 남을까 걱정하며.


꿈을 가진 걸 저주했던 순간이 있다. 결국 꿈 때문에 난 평범한 삶 속에서도 이렇게 갑갑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 내 길을 찾아놓고 그걸 걸어가지 않는 자신을 비난하면서 이 레일 위를 벗어나 내 길에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일상의 모든 게 잘못됐단 느낌이 피부에 맞닿는 공기처럼 매 순간 나를 맴돌고 내 안을 채웠다.


그럼에도,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 있게 꿈을 잊을 수 있더라도 난 이상에 고통받는 지금을 선택할 것이다. 이건 내 길이니까. 이 고통 끝에 결국엔 꿈을 이룰 것이라고 난 확신하니까. 그 확신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간다. 그 고통이 만든 오늘은 결코 의미 없는 하루가 아닐 것이다. 매일을 그렇게 믿으며 살아간다. 꿈에 의미가 있다면 그건 결국 꿈을 가진 내가 만들 의미겠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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