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믿었다.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네가 아닌 계절을 사랑했다.
봄의 따스함을 사랑했다. 여름의 강렬함을 사랑했다. 가을의 선선함을 사랑했고 겨울의 고요함을 사랑했다. 하지만 계절은 무릇 바뀌는 것. 사랑은 짧았고 그렇기에 그리웠다. 평생을 사랑할 순 없었다. 내가 사랑한 건 계절이었다.
사랑은 계절을 넘어가지 못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건 계절이 바뀜과 같이 그 모습을 바꿨다. 봄이라 믿었던 미소는 생각보다 뜨거웠고 여름이라 믿었던 사랑은 점차 식어갔다. 가을이라 믿었던 너와의 마지막은 차가웠다. 마치 사랑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난 널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네 모든 걸 사랑했다면 차가운 네 모습까지 사랑했을까. 언제부터 나는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걸까. 난 누군갈 사랑해 본 적이 있긴 한 걸까. 이제 와서는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설렜던 게 대체 언제였는 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난 누군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계절을 붙잡는 게 무슨 소용일까. 언제부턴가 사람을 붙잡지 못하게 됐다. 오고 가는 것이 사람이고 관계라면 정이란 사라지는 게 당연한 것이니 누군갈 떠나보내는 데에 익숙해지려 했다. 그렇게 사라져도 상관없을 관계만을 고집했다. 계절마다 사람이 바뀌었다. 계절마다 사람이 떠나갔다. 모든 게 흘러가듯 바뀌어만 가는데 나만이 바뀌질 않았다.
계절을 사랑하지 못하게 됐다. 계절은 변한단 걸 알기에. 그 공백을 채운 건 허전함과 외로움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계절들을 더는 붙잡지 않았다. 몇 번의 계절을 보냈을까. 몇 명의 사람이 떠났을까. 밤공기가 꽤나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쌀쌀함에 외투를 챙기며 너를 생각했다. 다시 돌아온 계절에.
난 널 사랑했다. 계절을 사랑하듯 너를 사랑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한 땐 악몽이라 생각했고 한 땐 그리움이라 생각했던 너를 다시 맞이한 이 계절에 사랑이라 불렀다. 일 년 만에 여는 편지가 아직 향수 냄새를 품고 있듯 나는 아직 사랑을 품고 살았나 보다. 역시 난 계절을 사랑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