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했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하늘이,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간다고 느껴졌던 어린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금 더 커서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까지 내 인생엔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요즘 들어선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처음부터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되진 못했구나.
끝없이 차오르는 자기혐오. 거울을 볼 때마다 난 이 세상에 눈곱만큼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하루. 결국 내가 또 모든 걸 망치지는 않을까,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날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난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조차 갖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내 삶에 의미란 게 있을까.
누굴 만나도 조연이 될 뿐인 삶이었다. 무시받고 놀림당하는 게 점점 익숙해졌다. 아이러니하게 거기에 익숙해질수록 주변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의 분위기를 맞추게 됐고 그런 만남 속에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깎아내어 사람들을 만났고 결국 난 내 형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난 어째서 살아가는 걸까. 사람을 밀어냈다. 혼자 남게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난 그저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단 의미까지 잃을 뿐이었다. 누구보다 비참한 몰꼴로 누구보다 비참해지기 싫어했던 나.
꾸미는 데 관심을 가졌고 운동을 하며 옷을 사기 시작했다. 그건 나를 꾸미려는 것이 아닌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내겐 자신이 없었다. 나를 둘러싼 것들로 나를 감추고 조금의 용기라도 얻는 순간 추한 내 모습에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날. 난 결국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무너짐이 쌓인 요즘 난 살아갈 의미조차 알지 못하게 됐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거라면 꿈 없이는 난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우린 어째서 사는 걸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삶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날에 사람을 만났다. 누군가에게 힘이 돼 주고 싶었고 네가 행복해지길 원했다. 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고작 그런 생각이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혼자 살지 못하는 나를 원망했는데, 어쩌면 사람이란 건 처음부터 다른 사람 없인 아무것도 아닌 게 맞나 봐. 그러니 난 혼자 살지 못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는 건가 봐. 살아갈 의미 같은 게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 그건 이 세상이 당신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결국 사람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