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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3. 2024

어떤 오지랖

삼백 예순두 번째 글: 쓸데없는 호의는 넣어두세요?

최근 10년째 선생님들의 생일날 깜짝 파티를 하곤 했습니다. 이 발칙한 일을 생각해 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누군가의 생일날 아무도 모르는 채 지나가는 현실이 안타까웠거든요. 어쩌면 가장 축하해야 할 날에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령 제 생일 때 더 큰 축하와 파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정작 제 생일은 봄방학 기간인 2월 말이라 아무도 챙긴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동료 선생님들의 조촐한 생일 축하 파티도 할 수 있고, 그 작은 일로 인해 서로 간의 유대감은 더 깊어질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사실 파티라고 해 봤자 별 것도 없습니다. 지금 같으면 동학년 선생님이 여덟 분이니 마실 수 있는 캔음료 여덟 개와 3만 원 내외의 작은 케이크 하나를 준비하는 게 전부입니다. 생일 당일 아침에 약간 번거로운 것만 빼면 그 정도 준비하는 건 제겐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10년 동안 그렇게 해왔습니다.


생일을 맞이한 분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준 제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뿐만 아니라 잠깐의 축하 자리를 통해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게 더 컸습니다. 저에 대한 감사의 표현보다도 모두가 함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더 큰 기쁨이었으니까요. 그것이 동학년 선생님들 중 가장 연장자인 저의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동학년 부장 교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면 더 명분이 생기는 일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요즘 들어 이게 저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5월에 한 선생님이 정중하게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부담스럽다고, 자신의 생일에 케이크를 준비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는 데다, 이미 앞서 두 분의 생일 파티를 한 뒤라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저는 그게 타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선생님의 생일 이후 내일 또 다른 선생님의 생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분 역시 똑같은 내용으로 제게 요청하더군요. 두 번이나 같은 일을 겪고 나니 이 조촐한 파티가 '호의'가 아니라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타인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일은 좋은 뜻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비용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 것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듯합니다. 타인이 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건 간에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젠 압니다. 다만 왜 이걸 이렇게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인지 그것이 그저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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