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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an 22. 2022

사랑이라는 이름의 덫

러브홀릭 포비아의 메커니즘에 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치환'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하게 '바꾸어 놓는다'를 뜻하지만, 수학적 의미로는 어떠한 수식의 순열을 다른 순열의 배열로 바꾸어 전개하는 것을 뜻한다. 다소 해괴한 발상이지만 물리학을 사랑으로 치환하게 되 공학은 결혼이 될 것임은 명해 보이는데, 과연 천문학을 이혼으로 치환하게 수렴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이것은 논리나 사고방식 따위의 절차나 단계를 거스르는 '비약'과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 이것을 전개하려면 그럴싸한 메타포의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하다.


  물리학은 현상의 근본 원리를 찾아내려는 학문인 반면, 여타의 자연과학들은 물리법칙에 의해 형성된 각종 자연현상 그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은 모든 자연과학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이 인공구조물(철탑이나 교량, 또는 건축구조물)을 바라볼 때 구조물에 작용하는 외력과 중력, 그에 대응하여 구조물을 지지하고 있는 재료의 고유한 강성이나 재료의 원자간 결합과 배열의 재배치에 따른 미시계의 거동을 떠올리거나, 혹은 지점의 반력과 장력으로 인한 벡터의 평형을 우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공학자들은 같은 구조물을 보더라도 물리학자들의 미시적 사고 범위를 포괄하여, 구조물의 안전성을 포함한 환경요인과 보다 경제적 시공방법까지 설계 변수를 확장하여 훨씬 폭넓게 고민한다.

  물리학자가 구조물의 고유한 강성이나 강체의 구성요소 같은 근본 원리와 적용 가능한 원칙만을 생각하면, 공학자는 구조물에 사용된 재료의 적합성과 구조물이 건전하게 지속 가능한 설계수명의 설정은 기본이고, 시공기간에 해결이 되어야만 하는 복잡한 책략들 이를테면, 재료의 조달 경로와 검증된 공법에 따른 품질보증 서류 따위 들을 챙겨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관계자들제기하는 소송을 대비해야 함은 필수이며, 그 이외 발생 가능한 각종의 민원처리 방안까지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는 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공학자의 견지에서는 흔한 설계인자 이며 빤한 일상의 루틴에 불과하. 결국 물리학자가 구조물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원칙들을 준용하여 기획하고 더욱 구체성을 담보하여 하자요인과 수많은 예측불허 상황까지 공학자는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 완벽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물리학이 사랑이라는 불투명성을 지닌 애매모호한 맹목적 요소라면, 공학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구체적 결실인 결혼으로 치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스개스러운 억지가 아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항성, 행성, 성운, 우리 은하와 외부 은하에서 일어나는 각종 자연현상을 수학, 물리학 등의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천문학은 그 범위에 있어서 가히 어느 분야의 학문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천문학은 다른 학문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대상들을 다룬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후덜덜하게 100억 광년 정도의 천체를 주무르는 것은 여반장이다) 넓은 의미의 천문학은 지구를 포함해서 우주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관측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학문에서 아마추어들이 학자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허다하지만, 천문학에서 만큼은 예외의 경우로 취급이 된다. 모든 학문을 통틀어 순수 아마추어 학문이 전공에 깊숙이 접근하여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쳐온 역사를 지닌 것이 바로 천문학이기 때문이다.

  현재 천문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천문에 관련한 용어는 오래전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만든 것에서 유래되었고, 저 유명한 갈릴레이도 공식적 직업이 수학자였기 때문에 그때 당시의 주류 과학자들은 갈릴레이를 아마추어 천문가로 취급한 역사가 있다. 본시 직업이 성직자였던 코페르니쿠스 역시 아마추어에 속하고, 돕소니안식 망원경은 아마추어 천문학자 존 돕슨이 개발했다. 하여튼 천문학 분야에서는 예로부터 프로패셔널한 전문가보다는 아마추어가 판을 친다.


  사랑의 속성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 개념의 명명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적 배려와 긍휼에 근거하므로 순수함지향하는 영역으로 구분 함이 마땅하다. 비록 궁극의 절대적 가치를 지녔다고 한들 생존의 필수요소가 아니라서 그까짓 거 없어도 당장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결혼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 험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며 행복하건 불행하건 먹고 살아야 하는 테마가 최우선의 명제이므로, 냉정한 프로페셔널의 영역으로 취급함이 얼추 당위성이 있음 직하다.


  100억 광년쯤은 우습게 취급하는 천문학은 아마추어가 그 바닥 학자들의 탐구 역량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음을 전제로 따지자면 이혼으로 치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광막한 암흑에서 밑도 끝도 없이 무한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우주의 속성과, 자르던 풀어헤치던 결박되어 있던 매듭과의 결별로 거듭 팽륜하는 회한의 갈등이 매우 닮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함부로 견주어 비교할 수 없는 사랑과 결혼과 이혼(결별)은 당초 없음에서 비롯하여, 지금 있거나 있었음으로 회절하고 반복하여 수축하거나 팽창해가는 일련의 범우주적 사건임은 자명하다.


  켄타우르스 성운 어느 별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관측한 지구의 크기는 안개 입자보다 작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잘난 지구인들이 애써 물리학과 공학으로 버무려놓은 하찮은 인공구조물 따위는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아예 인식마저 불가능하겠지만,  희뿌연 먼지 속의 푸르른 한점 지구가 거대 적색거성으로 변한 태양에 잡아 먹혀 소멸하는 시점까지, 거기에 올망졸망 서식하고 있는 지구인들은 전혀 실체가 없는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의 덫에 포박되어 끝내 탈출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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