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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n 13.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5(9.일체동관분9)

현재는 그 속에 미래와 과거가 모두 들어가 있는 관념이다.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음이라


이름뿐인 마음을 또다시 현재와 미래로 나누어서 친절하게 한 번 더 가르쳐주신다.


이 지구 역사상 우리 중생들에게 이렇게 자상하게 가르쳐주신 분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원효대사님이라고 하겠다. 대자대비심을 가진 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마음을 시간에 따른 관념으로 세분하여 가르쳐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시간관념에 매여 존재하고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마음과 현재의 마음과 미래의 마음, 또 그 마음들이 펼치는 현상을 다르게 보는 것이 우리 중생심(衆生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중생들에게는 과거심이나 미래심이 똑같은 것이고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가 똑같다. 


미래(未來)는 곧 과거(過去)이고, 과거(過去)는 곧 미래(未來)이다.


미래는 과거의 재판(再版)에 지나지 않고, 과거는 미래의 초판(初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를 향한 희망이나 꿈, 소원 등 앞날을 생각하는 일체의 마음이 망념(妄念)이다. 

따로 없는 미래를 생각하니 허망한 마음이 아닌가?


왜 그런가?


바로 인과(因果)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과거에 지어놓은 인(因), 즉 업(業)에 따라 나타나므로 우리가 꿈꾸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순수한 미래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연장선이 곧 미래이고 미래의 결과가 곧 과거인데 어찌 미래를 과거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現在)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와 다른 모든 대상을 접하는 그 찰나(刹那)를 곧 현재라고 생각하는데, 찰나라는 것은 우리가 두뇌로는 인식할 수 있는 시간 개념이 아니다. 이름이 그냥 찰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그 속에 미래와 과거가 모두 들어가 있는 관념이다.


그러므로 상(相)의 변화에 따른 인식을 시간의 관념으로 삼고 그 시간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은 허망한 것이 되고, 생멸(生滅)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게 만든다.

여기서 도(道)의 세계에서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시간관념에 자기 자신을 붙여놓지 않은 것을 뜻하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과거와 단절된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자기와 별개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답 역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과거의 일체 모든 의식과 마음으로부터 단절되고 텅 빈 마음을 유지하면 그 속에서 새로운 마음이 또 싹트게 되는데, 이때 싹트는 마음이 바로 순수한 미래가 된다.


그러므로 자기 인생에 새로운 차원의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면, 자기 마음을 일단 과거와 분리시키고 공심(空心)을 잘 유지하면 된다.


공심(空心)을 잘 유지하는 동안은 자기가 마치 멍한 바보가 된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지나면 새로운 자기 자신이 탄생한다. 이른바 제2의 출생인 셈이다.


과거심과 현재심과 미래심이 그런데, 그 마음들로 얻을 수 없다고 하신다.


지금까지는 대개 복덕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느니 못 얻는다느니 얻을 것이 없다느니 하는 등등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무엇을 얻을 수 없는지 언급하지 않으신 것이 또한 특징이다.


앞에서 보면 오안(五眼)과 불세계(佛世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해도 되지만, 여기서는 색(色)과 공(空)에 존재하는 그 모든 일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보면 더 정확하다.


중생심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무엇이든 얻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돈이든 사랑이든 쾌락이든 지식이든 깨달음이든 하여튼 그 무엇이든 얻고자 하는 마음이다.

과거에 얻고자 했던 마음이 곧 과거심이고, 현재에 얻고자 하는 마음이 곧 현재심이고, 미래에 얻고자 하는 마음이 곧 미래심이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고 더구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마음으로는 그 어떤 것이든 더더욱 얻을 수 없다고 하신다.


얻을 것은 어디로 가고, 얻고자 하는 마음은 또 어디로 가버렸는가?


나오는 곳을 알아야 간 곳을 알 수 있을 터인데 그것마저 막막한 것이 우리 중생이다.


왜 그런가?


마음은 밑 빠진 독이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도대체  무엇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 독에 무엇을 넣었다고 차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밑으로 쑥 빠져버린다.


이른바 무엇으로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곧 착각이고 망심(忘心)인 것이다.


과거도 빠지고 현재도 빠지고 미래도 빠진다.


과거에 늘 그래왔건만 그 잘못된 습성만이 남아 현재도 그러고 있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독에 들어가는 그 순간의 쾌감에 매달려 무엇이든 얻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가 쑥 빠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고통스러워하며 잡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힘이 다 빠지면 마침내 귀신이 되고 만다.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단지 자기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 허망함에서 오는 우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밑 빠진 독은 깨부숴버리는 수밖에 없다.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찬란한 불성(佛性)의 대광명(大光明)이 그대 전부를 채우고 나아가 온 법계(法界)와 만중생(萬衆生)을 밝혀주게 된다.


그러므로 진짜 미래라도 맞이하고 싶으시면 바보가 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진짜 얻고 싶으시면 진짜 바보가 되어야 함이다.


진짜 바보는 얻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는 바보다. 그래서 바보인지 그 이름이 바보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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