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4(18.구경무아분6)

금생에 깨달은 사람이 내세에 어떤 이름의 부처로 지낼지 수기를 주신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약유법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여어내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이실무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須菩提 若有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然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 然燈佛 與我授記 作是言)


여어내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釋迦牟尼)


수보리야, 만약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음일 땐 연등불이 곧 나에게 수기를 주면서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니와,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므로 이 까닭에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하시니라


부처님이 수기를 주실 때는 이미 상대방이 아(我), 인(人), 중생(衆生), 수자(壽者)의 사상(四相)이 없을 때이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음일 땐 수기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신 것을 보면, 수기를 주셨다는 것은 이미 상(相)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미 깨달은 부처라는 뜻인데, 추가로 왜 수기라는 것을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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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금생에 깨달았다고 치자.


그럼 당장 아라한(阿羅漢)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우리가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그런 대우주신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또 실제로 아직은 많이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내세에 태어나서 대각(大覺)을 하면 그때는 부처라는 명호가 붙게 된다. 대각(大覺)은 덩치가 커지는 것을 뜻한다. 즉, 내세에도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시방삼세(十方三世)를 다 아는 부처인 것이다.


그래서 연등불 처소에 있는 선혜(善慧) 시절에는 석가모니불이 사상(四相)이 사라져 해탈을 했어도 그 당시는 그냥 깨달은 사람일 뿐, 부처라는 명호는 붙지 않는다. 우리가 석가모니불의 수많은 해탈한 제자들을 아라한이라고 부름으로써 석가모니불과 차이를 두지 않는가?


그때 연등불이 내세에 태어나면 어떤 이름의 부처로 지내게 되는지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다.


수기(授記)는 내세에 깨달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다.


여기서 보면 싯다르타는 출가하여 수행을 열심히 해서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부처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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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깨달은 사람과 여래는 어떤 차이가 있길래 수기가 주어지고 또 내세에 어떤 부처라는 명호가 붙을까? 많은 차이가 있지만 핵심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깨달은 사람은 아직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몸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주어지는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몸에서 생기는 운명과 더불어 시공(時空)의 구속에서 오는 많은 부자유는 일반 중생과 차이가 없다.


둘째, 덩치가 다르다. 깨달은 사람은 중생을 벗어나고 불성을 찾았으니 여래와 구성성분은 완벽하게 똑같다. 청정심으로 광명과 자비심과 지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덩치에 따른 힘이 아직은 여래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셋째, 능력 발휘에 한계가 있다. 아직은 몸과 모순으로 이루어진 세간(世間)의 질서, 그리고 인과법이 작용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만큼 그런 것들로 인해 자기 존재의 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한다고 해도 인간세상에 먹히기 쉽지 않다.


기타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만 크게는 이런 이유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모시는 본래여래(本來如來)를 비롯한 불보살(佛菩薩)님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


깨달은 사람은 이 지구의 보물이고 인간세상에서는 신으로 받들어질 자격이 있지만, 아직 제대로 보물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할뿐더러 그 빛을 발하는데 한계가 있다. 깨달은 사람은 몸을 벗어야 비로소 우주의 보물이 되고 대광명을 발한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진정한 축복인 것이다. 참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깨달은 사람의 죽음을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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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기가 설사 깨달아도 여래(如來)와 비교하면 한참 아직 모자라는 존재임을 오히려 알게 된다. 이것은 진정으로 깨달아야 그렇게 된다. 그래서 사이비들은 자기가 노골적으로 부처나 신이라고 떠벌리고 현혹시킨다.


그러니 알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성철스님이 깨달아 부처가 되고 나서도 늘 부처님께 108배를 하신 이유는 우리의 죄업장을 대신 참회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이유들도 숨어있는 것이다.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수행자들은 그 환상을 깨어야 한다.


깨달으면 금생에 일단은 내면의 악(惡)이 완전히 소멸된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을 최대한 활짝 꽃 피운 인간, 상(相)의 의식에서 벗어난 순수한 인간이 될 뿐이다. 그런데 아직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으니 여래와 비교하면 약간의 힘과 지혜와 능력만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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