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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뿐사뿐 걷기 Oct 24. 2021

일단 나와서 걷습니다.

마흔 육아일기 05

 “수술밖에 없습니다” 


척추 MRI 결과를 보여주는 의사가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듯 간결하게 말했다. 마치 감기약을 처방하듯 단순 명료하고 가벼운 말투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실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수술이요?”


 “전방 전위증이 맞고요. 여기 뼈가 앞으로 밀려 나왔잖아요. 그 아래 디스크가... 다른 디스크처럼 이렇게 하얗게 보이는 게 정상인데 까맣잖아요. 타이어로 치면 퍼진 거예요. “ 


수술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내 표정을 본 의사는 당장 수술하자는 건 아니라고 한 발 물러섰다. 먼저 주사 치료와 운동으로 치료를 진행해보자는 말로 상담은 마무리됐다. 의사 말만 듣고 주사 한 대 맞고 운동법이나 알려주겠거니 정도로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상담이 끝나자마자 신경 주사와 체외충격파, 도수 치료가 이어졌다. 한 번에 끝나는 치료도 아니고 앞으로 매주 한 번씩 3~4회는 이어질 예정이고 비용도 한 회에 각각 10만 원이 넘어가는 치료였다.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병원비를 ‘몰빵’하는 느낌이랄까?




 요통이 시작된 건 3년 이상 된 것 같다. 특별한 사고로 갑자기 생긴 통증이 아니다 보니 서서히 아프기 시작한 것이 만성이 되었다. 말 그대로 허리는 ‘고질병‘이라는 생각에 병원에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픈 거 잘 참으시나 봐요? 몇 년 됐을 것 같은데. “ 


감정이 실리지 않은 질문. 왜 이제 왔냐고 나를 질책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냐고 나의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건조하게 사실만을 확인하려는 의사의 질문에 나는 이번에도 딱히 할 말이 없어 실없이 웃으며 떠듬떠듬 대답했다.


 ”아... 예. 그런 것 같네요. 아픈지는 몇 년 됐어요. “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비수술적 치료를 한 번에 다 경험한 후 나는 ’ 환자‘가 되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허리가 아픈 사람이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받고 나니 나는 명백한 ’ 환자‘가 되었다. 내가 나를 환자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작은 통증에도 예민해졌다. 소파에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습관처럼 ’ 아이고 허리야~‘를 달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세면대에 허리를 숙였다 펼 때도 마치 압력으로 움직이는 느린 기계 장치처럼 서서히 허리를 폈다. 일상에서 자주 불편과 통증을 느끼면서도 그걸 무시하고 지냈다는 것이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가 힘들었다. 이제 와서 왜 그랬냐고 자책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운동뿐. 매일 아침 10시.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간단한 청소를 마치고 나면 무조건 집을 나선다. 우리 아파트 옆에는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다. 평소 운동을 하려면 근처 공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나름 절박한 상황에 처하고 보니 본질에 집중하는 단호함이 생겼다. 공원을 걷든 산책로를 걷든 똑같은 걷기라는 점. 오히려 공원까지 가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어 매일 걷기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무작정 걸었다. 스마트폰에 있는 건강 어플을 이용해 산책로의 거리를 확인했다. 편도 0.8km, 10분에 천 보 정도 걸을 수 있었다. 목표는 하루 만보 걷기. 혼자 걷기 대회 준비라도 하듯 산책로의 끝에 도착하면 차량 통행을 막는 차단봉을 반환점 돌 듯 돌았다. 반대편 끝에는 바닥에 정사각형의 돌이 박혀 있었다. ’ 동네 한 바퀴 돌기 6km‘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박힌 돌을 밟고 돌아서 다시 차단봉을 향해 걸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걷다 보니 같이 운동하는 사람을 알게 됐다. 아니 알게 됐다는 표현은 틀렸다. 내가 관찰하는 사람이 생겼다.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아주머니는 양쪽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 왼쪽 팔은 반쯤 안으로 접혀 있고 손목도 안쪽으로 꺾여 있었다. 쭉 뻗어 있는 산책로에서 아주머니의 몸은 정면이 아니라 옆을 보고 서 있었다. 그래서 앞을 향해 걷는다기보다는 옆으로 걷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머니는 아주 조금씩 전진했다. 얼핏 보면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옆에는 활동 보조사로 보이는 분이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는 마주 오는 아주머니를 지나쳐 갔다가 반환점을 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를 추월했다. 그 단조로운 반복 속에서 나는 점차 아주머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걷게 됐다. 한참 후에야 쉬고 계시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아주머니는 출발 지점에서 몇십 미터는 떠나와 있었다. 나는 내가 걸은 거리는 잊은 채 오늘 하루 아주머니가 걸은 거리를 가늠해보고 잠시 감격했다. 물리적 거리만 따져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미미한 성취 앞에서 파도처럼 일어나는 감정 때문에 나는 걸음을 잠시 머뭇거렸다. 



 

 어느 날은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후에는 그치는 비였다. 오후에 걸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생각을 멈추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벼운 우산을 골라 들고 집을 나섰다. 저만치에서 아주머니가 모자만 쓴 채 걷고 계신 게 보였다. 안개가 날리는 것 같은 가랑비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또 몇 차례나 아주머니를 앞질렀다. 그 사이 빗방울이 더 굵어지며 제법 쏟아졌다. 바닥만 보고 걷다 우산에 맺힌 물을 털며 무심코 앞을 봤는데 노란 비옷을 입은 채 제자리걸음을 하듯 서서히 움직이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존재가 너무 갑작스럽고 또 거대하게 다가와서 나는 순간 숨이 멎었다가 이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당시 나는 좀 우울했다. 마흔셋의 나이에 벌써 허리뼈가 삐뚤어지고 MRI 화면에서 까맣게 처리된 사라져 버린 나의 디스크.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억울하고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빗속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걷고 계신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사나운 팔자 탓을 하던 나의 투정이 툭 끊기고 겸손한 마음이 차올랐다. 진지함. 아주머니는 삶을 만만하게 보지도 말고, 너무 겁먹지도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처럼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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