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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뿐사뿐 걷기 Oct 24. 2021

잠이 오지 않는 밤

- 마흔 육아 일기 1

  나이 들면 잠이 준다는 말은 거의 평생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 설마 나도 잠이 줄까?라는 의문 역시 평생 품어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자기‘를 좋아했다. 기온도 적당하고 하늘이 쨍하게 파란 날이면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마루에 누워 하늘을 감상하며 낮잠을 잤다. 어린 마음에도 ’이런 게 행복이구나 ‘ 느낄 정도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벅 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낮잠을 자고 나면 몸도 마음도 얼마나 상쾌했는지. 낮잠을 자도 밤잠을 자는 데 어려움이 없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다. 낮 동안 일 때문에 외출을 하고 집에 오면 급 피로가 몰려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도 모르게 ’ 아이고~’가 절로 나온다. 잠시 후엔 자연스럽게 쿠션을 당겨 베고 스르르 모로 눕게 된다. 반듯하게 눕지 않는 건 ‘누운 건 아니야’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좀 우습지만 낮잠을 자면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한다. 아무리 모로 누워도 순식간에 내려앉는 눈꺼풀을 막을 순 없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고 안쓰러울 정도로 의식이 애를 써도 소용없다. 불현듯 일어나 시계를 보면 기껏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있다. 어쩐지 정신적으로 패배한 것 같아 약간의 자책을 느끼지만 몸은 훨씬 가뿐해져 있다. 그리고 그 5분의 낮잠을 만회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 무슨 일이든 시작한다. 


  문제는 가끔 5분이 아니라 30분 이상의 낮잠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으슬으슬 오한이 느껴지는 날은 얇은 이불을 덮는다. 결과는 참패다. 무려 30분에서 1시간이나 낮잠을 자게 된다. 자고 일어나도 몸은 더 쳐지고 묵직하다. 이런 날은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아들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지만 어둠에 적응된 눈이 벽시계의 바늘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말똥말똥하다.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11시에 자려고 누웠지만 새벽 2시쯤 되면 포기하고 일어난다. 마치 자양강장제를 과하게 마신 사람처럼 나는 새벽 2시에 쌩쌩한 정신으로 책상에 앉으며 생각한다. ‘내일은 망했다......’ 


 어릴 때는 밤에 일기도 쓰고 메모 수준의 시나 소설을 끄적거리기도 하고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그때는 새벽에 잠들어도 다음 날 좀비가 되는 일은 없었으니까. 지금도 마음은 그대로다. 하지만 내 몸은 밤에 깨어 있는 걸 많이 부담스러워한다. 내일의 에너지를 당겨서 쓰는 느낌이다. 급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가불을 받긴 했는데 다음 달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는 기분이랄까.


  마흔셋의 내 몸은 그리 협조적이지 않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갈수록 나의 활동을 제한하고 축소시킨다. 제시간에 먹여주고 제시간에 재워 주지 않으면 마치 파업을 하듯 퍼져선 나의 일상을 헝클어트린다. 그럼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 빵빵한 젊은 몸을 만들면 되지 않냐고? 예전에 TV에서 몸짱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소개되는 걸 보며 재밌어했다. 70대의 나이에 50대의 근육과 체력을 가진 할아버지, 60대의 나이에 40대의 몸매와 피부를 가진 아주머니. 그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고 가꾸기 위해 했던 노력을 보며 ‘나도 열심히 운동해야지!’라고 다짐할 거라 예상했다면 오산. ‘나는 자신 없는데......’ 라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나랑 비슷할 거다. 그러니 그분들이 TV에 나오는 거다. 이렇게 나이 들수록 자기 합리화 기술만 늘어간다. 몸짱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이 체력을 유지하는 게 나의 최대 목표다. 문제는 늙어가는 몸과 늙지 않는 마음의 밸런스다. 




  작년에 일흔세 살이신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연세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시는 것 같아 가족들의 걱정하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못 들은 척 식사만 계속하셨다. 잔소리가 통하지 않자 너무 답답해진 나는 아버지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빠, 올해 나이가 몇인 줄 아세요?"  

"오십!!" 


  가족들이 한통속이 되어 벌이는 공격에 약이 바짝 오른 아버지는 눈에 힘을 주고 굳세게 말씀하셨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크게 한 번 웃어넘기면 되는 순간이었지만, 이 재미없고 진지하기만 한 딸은 계속 아빠의 나이를 언급하며 아빠의 늙지 않은 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가 오십이라고 대답하신 것도 많이 양보하신 거다. 어떻게 아냐고? 내 마음은 아직 스무 살이니까. 마음은 이팔청춘에 머물러 있어도 몸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이젠 내 몸과 타협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 내 몸이 허락해주지 않은 한 내가 원한다고 마음껏 잘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 잠이 오지 않는 밤, 책상에 앉아 마흔이 넘은 몸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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