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이다. 열한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육아 정보를 얻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은 고된 육아의 희로애락을 공감하는데 더 큰 즐거움이 있다. 처음에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나 울고 떼쓰는 아이, ADHD 혹은 심각한 강박증까지 있는 아이들의 자극적인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내 아이는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위안을 받기도 하고, 구경꾼처럼 남의 집 육아 현장을 들여다보며 당사자에겐 들리지도 않을 훈수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출연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공 아이가 보이는 문제 행동의 이면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원인이 숨어 있기도 했는데, 그 원인이 되는 성격과 기질이 나에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손이나 몸에 무엇이 묻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 기저귀는 땠지만 변기에 앉아서 변을 보지 못해 심한 변비에 걸린 아이, 본인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아이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문제를 가진 사례가 방송됐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이런 문제 행동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듣다 보면 ‘내가 그래서 이렇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몸에 로션 바르는 일이라면 질색팔색 한다. 로션이 처음 피부에 닿을 때의 차가운 느낌에도 깜짝 놀라지만 로션을 바르고 나서 끈적한 느낌은 기름을 뒤집어쓴 기분이랄까. 다시 뽀득뽀득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요즘에는 끈적임 없는 로션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로션도 바르는 즉시 끈적임이 없어지진 않는다. 결국 끈적임이 느껴지는 상태로 옷을 입어야 하는 게 곤욕이다. 그래서 심각하게 건조해지는 겨울이 아니면 로션을 바르지 않는다. 이렇게 마흔이 될 때까지 ‘나는 끈적이는 게 싫어’라고만 생각했는데 방송을 보며 알게 됐다. 내가 촉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촉각만 예민한 게 아니었다. 처음 경험하는 것, 낯선 것에 긴장을 많이 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심지어 요즘은 책에도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가끔이지만 어떤 책은 책 표지를 차마 넘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못 읽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신과 주변 환경을 컨트롤하려는 자기 통제력은 강하다. 나 스스로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했던 행동의 이면에 어떤 원인이 있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란 걸 마흔이 돼서야 알게 되다니. 아들 잘 키워보겠다고 찾아본 방송이었는데 거기서 나를 발견할 줄이야. 방송 시간만 되면 TV 앞에서 초집중하는 나에게 남편이 묻는다. 남의 집 아이 이야기를 왜 그렇게 열심히 보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나를 키우는 육아 공부 중’이라는 설명을 구구절절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썩소를 날렸다.
앞으로 발견할 나는 또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요즘 1일 1팩은 피부관리의 기본이라지만 여전히 얼굴에 마스크팩 붙이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끈적이고 축축한 마스크팩이 얼굴에 닿는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양심상 수분크림 하나를 겨우 바르면서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어쩌겠어. 나는 촉각이 예민한 사람인데 ‘. 대신 눈가와 이마에 자연스러운 주름이 협곡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괜찮지는 않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