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운 색으로 반짝이도록

전소영 그림책 <적당한 거리>

by 평온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 어떤 게 있나요?”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잎이 누렇게 변하는 반음지 식물을 무럭무럭 자라라고 햇빛 잘 드는, 베란다 최고의 자리에 모셔 두었다. 물이 많으면 뿌리가 녹아내리고 썩어 버리는 식물에게 “사랑해”라며 꼬박꼬박 물을 주었다. 대참사다. 베란다가 식물들의 장례식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꽃집에 가서 어디서나 잘 자라고, 내비둬도 살 수 있는 식물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는 잘 살펴야지. 얘가 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양지와 음지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적어 두고 지켜줄 거야. 내가 보기 좋은 자리에서, 내가 부은 만큼의 물을 마시면서 잘 자랄 거라 착각하는 초보 식집사는 이제 끝이야.


오늘의 그림책은 <연남천 풀다발>의 전소영 작가가 쓰고 그린 <적당한 거리>이다. 작가의 그림책들은 보는 순간 반하게 되고, 꼭 손에 놓고 싶은 구매욕을 자극한다. 책을 집에 들이는 순간, 식물들의 푸릇한 생명력이 같이 따라온다. 그래서 책장에 꽂지 않고, 액자처럼 세워두게 된다.

그림책을 펼치면, 집안 구석구석에 놓인 화분들이 모두 싱그럽다. 네 화분들은 어쩜 그리 싱그럽냐는 친구의 말에 작가(화자)는 말한다. 적당해서 그렇다고.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비좁은 흙에서 버텨낸 식물을 기특해하며 분갈이를 해 준다. 그에 맞는 손길로 잎을 닦아주기도,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관심이 지나쳐 뿌리가 물러지지 않게, 마음이 멀어져 말라 버리지 않게 ‘적당한’ 물을 준다. 더 단단해지게 가지를 잘라주고, 바람을 들여주고, 햇빛을 받게 해 주고, 필요한 때 거름을 준다.

그림에는 초록의 식물과 갈색의 화분과 흙, 분주한 손만 등장한다. 그런데도 바라보는 눈길이 얼마나 따사로울지 느껴진다. 내가 그러니까.

어떤 대상에 애정을 잘 주지 않던, 무심하고 무정했던 나도 조금씩 식물들에 애정이 간다. 출근하자마자 베란다에 오종종하게 모여있는 화분들을 먼저 유심히 바라본다. 줄기에서 조금씩 갈라져 나와 새 잎을 피우는 모습에 기특해서 미소가 지어진다. 겨우내 잎을 다 떨구고 말라비틀어져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나무에서 초록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나기 시작하면 제 할 일을 꿋꿋이 해 나가는 단단함과 건실함에 감동마저 느껴진다.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우리네 사이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하루하루, 자기 생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 텐데, 엄마인 나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고, 장전해 둔 총을 든 군인처럼 언제든 기회가 되면 잔소리를 발사한다. 내일 틔울 싹을 위해 흙 속에서, 나무줄기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애쓰고 있건만,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바짝 붙어 가르치고 조련하려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주는 것일 뿐....
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안다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기도 해...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야.

내가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중2 사춘기 딸. 밥 먹을 때만 얼굴을 빼꼼 보여주고, 다 먹으면 문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식물을 죽이는 가장 큰 이유가 ‘과습’이듯, 아이에게도 과한 관심은 독이 될 수 있단다. 아이에게 과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 과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 아이의 작은 방안에서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꾹 참고 있다.

잘 자라리라 믿는다. 바람도, 햇볕도, 비도 결국 다 자기의 몫. 그러면서 크겠지. 뿌리가 잘 자라도록, 원하는 세상으로 뻗어 나가도록 분갈이 잊지 않고, 혹시 병해충이 꼬이면 세심한 손길로 핀셋을 잡으며. 아이도, 베란다의 식물들도 잎맥이 선명하고 강해서 자기 다운 색으로 반짝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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